[현장리뷰] 섬세한 표현과 정열, 대관령에서 펼쳐진 '클래식 기타의 모범답안'

김진형 2023. 8. 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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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대관령음악제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 클래식 기타 공연
현악 사중주와 협연으로 스페인 정취 선보여
친숙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연주력 호평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협연도 눈길
▲ 지난 28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의 공연.

기타는 공감대가 넓은 악기이지만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클래식 기타의 레퍼토리는 부족한 편이다. 평창대관령음악제가 2021년에 이어 올해 클래식 기타 공연을 선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클래식 기타 곡을 들으면 클래식이 민중의 정서와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인식을 안겨준다. ‘작은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클래식 기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난 28·29일 평창대관령음악제 데뷔 무대를 펼친 클래식 기타리스트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의 공연은 클래식의 품격을 갖추면서도 청중을 위한 연주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모범 답안이었다. 스페인 출신의 정열적인 기타리스트는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와 함께 명장면을 연출했다. 기타의 스트로크는 호수에 던진 돌 하나가 파문을 일으키는 것만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 지난 28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의 공연.

28일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은 그가 1985년 처음으로 작곡한 ‘캘리포니아 모음곡’으로 시작했다. 바로크적 색채와 친근한 멜로디가 동시에 다가왔다. 홀로 무대를 감당한 델 레이의 음색은 소박하면서도 선명했다. 쉴 새 없는 오른손과 함께 청명한 울림을 전하는 하모닉스까지 기술이 아닌 음악으로서의 표현이었다. 마누엘 데 파야 ‘세 개의 발레 모음곡’에서는 스페인의 어느 장터의 풍경이 그려졌고, 각 악장이 끝날 때 박수 자제를 부탁하는 손짓 또한 매력적이었다.

자작곡 ‘말하는 나무들’은 독특한 작품이었다. 프로그램 노트에는 생태학자 댄 콘돈의 책을 바탕으로 작곡한 작품으로 “자연을 향한 사랑의 선언”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기타는 아주 많은 말들을 전했다. 자연스러운 스케일에 젖어드는 동시에 플라멩코 풍의 섬세한 트레몰로 주법이 인상적이었다. 정열적이면서도 절제된 느낌까지 긴장감을 조절하는 연주력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이었다. 앙코르 곡으로는 ‘장고라인하르트 메모리얼’을 선보였다.

 

▲ 지난 29일 평창 대관령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의 공연

비발디 ‘기타와 현악기를 위한 협주곡’과 자작곡 ‘기타와 현악 사중주를 위한 알타미라’를 연주한 2부에서는 바이올린 이지윤·박지윤, 비올라 김상진, 첼로 이상은과 호흡을 맞췄다. 경쾌하게 시작한 비발디 곡은 독주자에 의한 성찰적 명상과 함께 과감한 지판 이동, 단음의 연결성이 살아 움직였다.

마지막 곡에서 기타리스트는 각 파트를 바라보며 서로의 호흡을 조절했다. 박지윤과 이지윤의 바이올린은 본격적으로 불을 뿜었고, 이상은의 첼로가 균형을 맞춰나갔다. 느리지만 격렬한 모습으로 그려낸 회화적 풍경, 화려했던 메인 주제의 반복은 청중을 온전히 공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음악을 듣고 따라가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앙코르 곡으로 ‘문 리버’가 흐르자 객석의 반응 또한 바로 터져나왔다.

 

▲ 지난 28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선보인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의 공연

29일 공연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마누엘 데 파야 ‘7개의 스페인 민요’와 자작곡 ‘아란후에스를 위한 다이아몬드’를 연주했다. 양인모의 피치카토 주법 또한 정열적이면서 청량했고 스페인풍의 정경이 그려졌다. 무리없이 편안하게 달려가는 박진감과 함께 민요 선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동양적 선법이 인상적이었다. 야외공연장 특성상 냉방기 소음이 일부 방해가 된 부분은 아쉬웠다.

‘아란후에스를 위한 다이아몬드’에서 양인모의 바이올린이 서늘할만큼 치명적이었다면, 델 레이의 기타는 따뜻함으로 그것을 품었다. 기타의 긴장감은 멈출듯 멈추지 않았고, 서로가 춤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었다.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의 메인 주제가 흘러나오는 순간에는 친숙함이 전해졌고, 기타는 오케스트라가 된듯 대화와 대결을 오갔다. 반주와 솔로, 합주까지 다양한 음색의 밀도를 전했다.

델 레이 단독으로 펼친 1부 무대는 ‘타레가에게 바치는 오마주’ 등 스페인 기타의 역사를 집약한 공연이었다. 스페인 민족주의와 낭만주의, 플라멩코 양식의 종합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스페인 연주자에 의한 ‘스페인스러운’ 연주였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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