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전 휴전협상 열린 ‘냉전의 공간’… 대치·희망 교차 ‘시간이 멈춘 땅’[10문10답]

김유진 기자 2023. 8. 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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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정전 70년, 판문점 재조명
1953년 목조건물 세우고 회담
자유의 집·판문각 차례로 지어
세계 역사상 최장 휴전관리지역
1976년 ‘도끼 만행 사건’ 이후
유엔군-공산군 JSA ‘분리경비’
9·19합의 따라 총기소지 안 해
유엔사 ‘핑크폰’통해 北과 소통
남북정상회담때 잠깐 평화무드
지난달 견학하던 미군 돌연 월북
美 송환 시도에 北은 묵묵부답
지난해 10월 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한 한국군이 보초를 서고 있다. 애초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장방형의 공동경비구역에서는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경비’했지만 1976년 도끼 만행 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분리 경비하게 됐다. AFP 연합뉴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의 유물’ 판문점이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난 70년간 판문점은 남북 분단의 상징이자 담판의 현장이었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을 비롯해 총격과 월북 사건 등이 벌어지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도끼 만행 사건 전까지는 적대하는 쌍방 군대가 공점(共占)·공유(共有)하는 공동관리구역으로서 세계적으로 유일한 사례였다. 문재인 정부 남북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 3자 회동이 열리며 평화에 대한 희망이 싹텄지만, 북한의 핵 위협과 무력 도발로 여전히 평화는 요원한 상태다. 최근에는 주한미군 이등병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견학 도중 무단 월북하면서 다시 한 번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 서북방으로 불과 62㎞ 떨어진 가깝지만 먼 곳, 판문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10개의 문답으로 알아본다.

1. 판문점은 어떻게 생겼나

판문점은 유엔군과 북한군 양측이 6·25전쟁 휴전을 위한 협상을 다시 시작한 곳이다. 1951년 7월 8일 개성에서 개시했다가 양측 이견으로 중단된 협상은 같은 해 9월 6일 북한 측 제의로 널문리 마을로 옮겨 재개됐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을 위한 목조 건물(661㎡·200평)을 세우고 회담장으로 활용했다. 휴전 장기화에 따라 각종 부속 건물 필요성을 살펴 ‘자유의집’(1965)과 ‘판문각’(1968) 등 콘크리트 건물도 마련했다. 1980년대 남북대화 빈도의 증가는 ‘평화의집’(남쪽)과 ‘통일각’(북쪽) 등의 추가 건축으로 이어졌다.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군과 공산군(북한군·중국인민지원군) 등 양측 각 5명씩 장성급 장교로 구성한 군사휴전위원회의 본부구역으로 설정한 후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 관리 지역으로 남아 있다.

2. 역사 속 판문점은

판문점 일대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개성부(開城府) 판문평(板門平)으로 기록돼 있다. 이 지역 부근 ‘널문다리’(판문교·板門橋)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설과 널빤지로 만든 대문이 마을에 흔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쫓겨 의주로 피란을 갔던 선조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널빤지 대문을 떼어다가 다리를 놨다는 백성들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송림현(松林縣) 지역이었고, 조선 태종 때 이르러서는 그 남쪽이라는 뜻의 송남면(松南面)이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는 개성군의 일부 지역과 합쳐 장단군 진서면(津西面)으로 표기됐다.

3. 70년간 판문점에서 일어난 사건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상징적 모습으로 꼽히는 남북 경비의 대치는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이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이른바 도끼 만행 사건 이후 시작됐다. 그 이전 비교적 자유로웠던 군사적 왕래는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1975년 정전회담 때 북한 측 기자의 시비에 대응한 유엔군 헨더슨 소령에게 북한군 10명이 달려들어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1989년 8월에는 대학생 신분으로 방북했던 임수경 씨와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4년 6월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이곳을 거쳐 북한을 찾았다. 1998년 6월과 10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1001마리를 북한에 지원한 것도 판문점을 통해서였다. 2018년 4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4. 판문점 내 건물은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장소는 군사분계선(MDL) 남측에 있는 평화의집이었다. 1989년 준공된 3층 규모의 석조 건물인 평화의집은 남북 회담장으로 자주 쓰이는 건물이다. 남북 회담이 열리면 회담장에 설치된 CCTV와 마이크를 통해 대통령실과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남·북·미 정상 회동이 열렸던 자유의집은 군사분계선 남측에서 남북 간 연락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1965년 처음 지어졌지만, 노후화와 협소성 때문에 1998년 새로 지었다. 군사분계선 북측에서 이에 대응하는 건물은 각각 통일각과 판문각이다. 1971년 적십자회담을 계기로 자유의집과 북측 판문각 사이에 ‘판문점 핫라인’으로 불리는 직통전화 회선이 개통됐다. 통일각은 2018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회담장과 만찬장으로 쓰였다.

5. 공동경비구역이란

박찬욱 감독의 2000년 영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공동경비구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약칭이다. 실제 정전협정의 조인은 현재의 판문점으로부터 약 1㎞ 북서쪽에 위치한 북한 측 ‘정전협정 조인장’에서 이뤄졌지만, 같은 해 10월 군사정전위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공동경비하는 동서 800m, 남북 400m의 장방형 공동경비구역이 설정됐다. 초기에는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말 그대로 ‘공동경비’하는 구역으로, 양측이 경비와 관리를 공동으로 담당했다. 그러나 1976년 8월 벌어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을 계기로 군사분계선 이남은 유엔군 측이, 이북은 공산군 측이 분리 경비하게 됐다.

6. 공동경비구역 관할하는 유엔사는

2004년 공동경비구역 경비 임무가 한국군으로 이양됐지만, 지휘통제권은 여전히 유엔군사령부에 남아 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정전위의 가동,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운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관할 경비부대 파견 및 운영, 비무장지대 내 경계초소 운영, 북한과의 장성급 회담 등을 맡는다. 2018년 9·19 군사합의에 따라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기로 하면서 현장 경비병들은 남북 모두 총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다. 중립국감독위는 정전협정 이행 여부를 관리 및 감독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스웨덴·스위스·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4개국 대표들로 구성됐지만 북한 측이 폴란드·체코를 축출해 지금은 스웨덴·스위스 대표단만 주재하고 있다. 폴란드는 본국에서 형식적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회의에는 한국 측 협조를 받아 입장한다.

7. 유엔사 핑크폰과 남북한 통신선은

미군 병사 월북 사건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은 것이 유엔사와 북한군 간 직통 전화기, 이른바 ‘핑크폰’이다. 핑크폰은 판문점 남측 지역 내 유엔사 일직 장교 사무실에 놓인 전화기다. 지금은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식 전화기로, 숫자판이 달려 있으며 연분홍색이라 핑크폰이라고 불린다. 이 전화기는 북측 판문각에 놓인 전화기와 직통으로 연결된다. 유엔사는 오전 업무개시와 오후 업무마감 등 하루 두 차례 북한과 통화하며 작동 여부를 점검하는데, 작년 한 해 동안 핑크폰을 통해 98건의 통지문을 북한에 전달했다. 이번 주한미군 월북 사건 관련 송환 협상도 핑크폰을 통해 시작됐다. 한편 남북 간 직통 수단은 막혀 있는 상태다. 북한은 지난 4월 7일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한 한국 측 통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남북 통신선이 막히면서 정부는 지난 6월 북한에 임진강댐 방류 시 미리 알려달라는 요청을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유엔사와 북한군 간 직통 전화기 ‘핑크폰’. 최근 주한미군 이등병의 월북 사건 때 핑크폰을 통해 북한군에 메시지를 전달했다. 뉴시스

8. 트래비스 킹 이병 월북 사건 처리는

지난달 17일 판문점 견학 중 미국의 트래비스 킹 이병이 군사분계선을 건너 북측으로 넘어갔다. 킹 이병의 송환을 위해 미국 정부가 모든 채널을 가동하고 있지만, 아직 북한의 응답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킹 이병과 관련해 추가할 내용이 없다”며 “여전히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며, 그의 안위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 월북과 관련해 북한 외무성이나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에서는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 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유엔군사령부는 지난달 18일 SNS를 통해 “공동경비구역을 견학하던 미국인 한 명이 무단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우리는 현재 북한이 이 인원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사건 해결을 위해 북한군과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9. 판문점 견학 프로그램은

유엔사는 1주일에 4회(화·수·금·토), 1회 40명씩 한국인과 미국인 등을 대상으로 판문점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내 가장 북쪽에 있는 우리 측 시설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측 판문각을 마주 보고 있는 자유의집과 군사분계선 위에 가건물 형태로 지어진 군사정전위 회의실 등을 둘러보는 70분가량의 견학 코스다. 견학 중 때때로 판문각에 북측 군인들이 나와 있는 것을 직접 볼 수도 있다. 우리 국민의 경우 만 8세 이상이면 신원 확인 등 판문점 방문 결격 여부 확인 절차를 거쳐 참여할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한 사람이 1년에 1회만 참가할 수 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견학은 지난달 17일 킹 이병의 월북 사건으로 현재 전면 중단된 상태다.

10. 한국의 유엔사 참여 추진 상황은

한국은 유엔사를 수용한 수용국의 입장이다. 유엔사가 우리 영토 내에서 다양한 사안을 이행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유엔사 회원국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그동안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유엔사 참여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지난 2021년 12월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유엔사가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군복 차림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밝히는 일도 있었다. 현재 유엔사는 6·25전쟁에 참여했던 22개국 중 17개국을 회원국으로 두고 있다. 지난 27일 정전협정 7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한 정부는 유엔사 가입에 전향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정부는 실제 전쟁 당사국 자격으로 유엔사 회원국 지위를 얻어 유엔사와의 전략적 소통 강화에 나설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의 유엔사 참여가 현실화하면 유엔사의 기능과 역할에 맞는 소통을 통해 유엔사의 전략적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유진·조재연·서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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