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가 된 월북화가의 ‘가족도’… 73년만에 세상에 내보인 아들

유승목 기자 2023. 8.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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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 화가가 서울 명륜동 집에서 붓을 들었다.

지난달 25일 서울 신사동 예화랑에서 개막한 '정전 70주년 기념전: 화가 임군홍' 전시에 임군홍(1912∼1979)이 월북 전 남긴 마지막 작품인 '가족도'가 걸렸다.

하지만 광고사업을 하던 1948년 월북 무용가 최승희 얼굴을 달력에 사용한 혐의로 좌익인사 낙인이 찍히고, 6·25전쟁 중 월북하면서 미술계에선 잊힌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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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계 ‘잊힌 존재’ 임군홍展
1930~1940년대작 117점 엄선
임군홍 ‘가족’, 96×126.5㎝, Oil on canvas, 1950. 예화랑 제공

1950년 한 화가가 서울 명륜동 집에서 붓을 들었다. 화폭엔 아내가 곤히 잠든 둘째 아들을 안은 채 상념에 잠겨 있고, 큰딸은 턱을 괸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겼다. 금세 그릴 줄 알았건만 ‘가족도’는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전쟁의 포화 속 혼자 북으로 간 화가는 작업을 마칠 기회도,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잃었다. 남은 작품들은 세상에 나와선 안 될 금기로 취급됐다.

지난달 25일 서울 신사동 예화랑에서 개막한 ‘정전 70주년 기념전: 화가 임군홍’ 전시에 임군홍(1912∼1979)이 월북 전 남긴 마지막 작품인 ‘가족도’가 걸렸다. 이날 만난 임군홍의 아들 임덕진(75) 씨는 주름진 손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자고 있는 아이가 바로 나”라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는 예술정신 하나로 살았던 사람이다. 아버지의 예술론을 시원하게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가족도를 포함해 1930∼1940년대 조선과 중국, 일본을 오가며 남긴 유화 79점 등 총 117점이 모였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요작 ‘북평낭’ ‘소녀상’ 등 5점도 선보였다.

임군홍은 김환기, 이중섭 등 한국 대표 화가들과 시대를 공유했던 1세대 서양화가다. 대담한 화풍에 누드화 같은 과감한 작품도 남겨 일제강점기 조선 양화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광고사업을 하던 1948년 월북 무용가 최승희 얼굴을 달력에 사용한 혐의로 좌익인사 낙인이 찍히고, 6·25전쟁 중 월북하면서 미술계에선 잊힌 존재가 됐다. 임군홍의 작품은 월·납북작가 해금 분위기가 고조된 1984년에서야 롯데화랑 전시와 이듬해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으로 처음 알려졌지만, 이후 40년 가까이 다시 잊혔다.

임군홍은 김방은 예화랑 대표에 의해 재조명됐다. 생전 임군홍과 교류했던 이완석 천일화랑 대표의 외손녀인 김 대표가 직접 임덕진 씨를 수소문해 전시를 제안했다. 김 대표는 “만약 북으로 가지 않았다면 외할아버지가 1954년 근대 미술가를 대거 모은 전시에 임군홍 작품이 출품되고, 한국사회는 이 예술가를 기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월북인사 집안이라는 꼬리표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70여 년간 지켜온 아버지의 작품을 내주며 화답했다. 임 씨는 “네 식구가 안방에서 불편하게 자도 남은 방 한 칸은 온전히 아버지 작품을 보관하는 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돋보이는 작품은 1946년 작인 ‘모델’이다. 화려한 색감과 대범한 선이 프랑스 야수파 거장 앙리 마티스의 화풍을 연상케 한다. 김인혜 미술사가는 “임군홍은 서양화의 여러 화풍을 소화했고, 종국에는 대상을 대면한 순간 느낀 ‘정감’을 자유자재의 회화 기법으로 구현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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