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꽂혀있는 OO를 찾아라

이정우 기자 2023. 8. 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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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류승완 … 움직임으로 어떤 감정 일으킬까 고민
‘더 문’ 김용화… 잘못에 대한 용서와 구원에 끌려
‘비공식작전’ 김성훈… 목숨 위태로운 극한 상황에도 최선의 길 찾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소수자의 처절한 생존기에 천착

창작자는 평생 한 가지 이야기만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고뇌를 뚫고 환희로 나아가는 베토벤이나 드라마틱한 명암 대비를 통해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처럼,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다루는 영화감독들도 실은 한가지 테마에 천착하곤 한다. 감독의 필수요소를 알면 영화 감상이 그만큼 즐거워질 수 있다. 유례없이 풍성한 올여름 극장가를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이다.

액션 장인 류승완의 키워드는 ‘움직임’이다. 지난 7월 26일 개봉한 ‘밀수’는 스스로를 “액션 영화를 찍는 감독”이라고 정의한 류 감독의 성향이 강하게 부각된다. 특히 후반부 수중 액션 신은 움직임을 중시하는 류 감독의 철학이 깊게 배어 있다. 액션의 쾌감만을 생각하면 타격감을 느끼기 힘든 수중에서의 액션은 들인 노력에 비해 효과가 작다. 그러나 순수한 움직임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류 감독은 영화 개봉을 맞아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의 본질은 움직임”이라며 “땅에선 움직임을 잘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슬로모션을 쓰는데, 물속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무리 거대한 액션이라도 감정적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액션이 있는가 하면, 침 한 번 뱉어도 관객에게 강한 충격을 주는 액션이 있다”고 말했다. 몸의 움직임에 기반한 쫄깃한 액션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류 감독 연출의 요체다. “제 고민은 어떡하면 액션을 통해서 관객들의 감정을 일으킬 것인가예요.”

‘쌍천만 영화’를 자랑하는 김용화 감독의 키워드는 ‘용서와 구원’이다. 신파라 이름 붙이는 특유의 김용화식 휴머니즘의 원료가 바로 죄의식과 용서, 구원이다. 전작 ‘신과 함께’는 김자홍(차태현)과 김수홍(김동욱), 그리고 강림도령(정유안·하정우) 등 주요 인물들 저마다 잘못을 저지르고 죄의식을 느끼며,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2일 개봉하는 ‘더 문’도 나로우주센터 전임 센터장 재국(설경구)과 달에 고립된 선우(도경수)는 잘못과 책임감, 죄의식으로 얽힌 인연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감동이란 보편적 정서를 끌어올리는 게 김 감독의 장기다. 김 감독은 간담회에서 “한동안 용서와 구원이란 키워드에 들어가 있었다”며 “용서를 구하는 용기와 용서를 받았을 때의 위로감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서사에 집중한다면 화려한 시각특수효과(VFX)에 가려진 감독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을지 모른다.

역시 2일 개봉하는 ‘비공식작전’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의 키워드는 ‘극한 상황’이다. ‘끝까지 간다’와 ‘터널’, 그리고 이번 영화까지 김 감독은 작 중 인물을 극한 상황까지 밀어붙인다. 터널이 무너지고, 맨몸으로 중동에 납치된 인질을 구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리고 이것을 최대한 재미있게 연출함으로써 장르적 쾌감을 키운다는 게 김 감독 연출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터널’에서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는 다른 생존자에게 줄 생수의 양을 고민하고, 아껴둔 식량을 먹어치운 강아지에 분노하지만 다시 살길을 찾아 나간다.

‘비공식작전’ 역시 어떤 면에선 외무부 사무관 민준(하정우)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살펴보는 관찰기란 느낌을 준다. 하정우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의 희망을 놓치지 않고 최선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게 김 감독의 삶의 태도이자 나와 감독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면인 것 같다”고 말했다.

9일 개봉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연출한 엄태화 감독은 쟁쟁한 흥행 기록을 가지고 있는 앞의 세 감독에 비해 생소하단 인상을 준다. 그러나 2013년의 첫 장편 ‘잉투기’, 판타지 장르 ‘가려진 시간’과 이번 영화까지 매번 소수자(루저)의 ‘생존기’를 다뤘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잉여들의 격투기란 의미가 내포된 ‘잉투기’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이란 닉네임을 쓰며 키보드 배틀을 일삼던 태식(엄태구)이 현실에서 얻어터진 후, 이를 극복하려는 이야기다. 소수자의 처절함이 B급 감성으로 그려졌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역시 아파트가 붕괴되고, 마지막 남은 아파트에 남은 주민들의 처절한 상황을 다룬다. 스케일이 커졌어도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가 잘 살아났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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