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아파트 6곳 중 1곳 '철근 누락'…"무량판 문제 아닌 '부실 문화'"
전문가들 "업계 아웃소싱 등 건설 문제 고스란히 드러나"
(서울=뉴스1) 박기현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 가운데 15곳에서 철근이 누락된 사실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설계상의 오류가 발생하기 쉬운 시스템이라고 지적하면서 검증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국토교통부와 LH는 지난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철근 누락 아파트 명단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기둥 154개 가운데 단 한 곳도 보강철근이 설치되지 않는 등 심각한 수준의 단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LH는 지난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동일하게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모든 LH 아파트의 안전점검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보강 철근이 누락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LH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수장들은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동시에 책임자에 대한 징계와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LH 공공주택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책임을 물어야 하는 모든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법적 고발과 인사 조치를 물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한준 LH 사장 또한 전날 "철근 누락이 발생한 15개 단지 모두를 조사해서 한 치의 의혹 없이 책임자 모두를 책임지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민간아파트도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경우 안전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국토부는 무량판구조의 민간아파트 명단을 모두 확보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공법 자체에는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무량판구조가 철근 누락에 특히 취약할 순 있어도, 철근이 설치만 되면 안전한 공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원천적으로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맞다"며 "무량판 구조에서 설계나 시공이 제대로 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이 맞다"고 전했다.
다만 철근이 누락되는 일은 설계·시공·감리 등 건설업 전반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일이라는 것이다. 대들보가 없지만 실내를 넓게 활용할 수 있는 무량판구조의 안전성은 보강철근 등으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며 부실건축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는 의견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구조설계 과정에서 아웃소싱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지적했다. 발주청이 설계 용역을 주면, 건축사가 구조기술사에 구조설계를 용역하고, 또 구조기술사가 자신이 직접 구조설계를 하지 않고 경력이 낮은 직원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구조계산이 끝난 뒤에는 도면을 그리는 과정도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현장에서는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구조설계를 아웃소싱하는 과정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구조설계사가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며 "물론 이후 구조기술사가 충분한 검토를 거치면 되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봉호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자동차 생산과 같은 제조업은 제작업체가 설계까지 다 하지만 건축은 설계와 시공 등 각각의 과정이 분리된 구조"라며 "상호 보완이 되는 구조면 서로 간의 문제를 잡아낼 수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철근 누락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구조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다른 구조와의 정합성을 모두 검토해야 하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아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전문가는 "아파트 설계는 모두 촘촘히 연결돼 있어서 하나를 바꾸면 다른 구조에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한다"며 "세부도면에는 검토 결과를 반영하지 않는 등 업계 전반에 안전불감증이 자리 잡고 있어 특수구조건축물로 지정하는 등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시공 과정이 설계와 괴리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사 소장은 "현장에서 설계대로 시공이 진행되지는 않는데 단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설계가 시공을 제대로 반영해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감리도 자신도 잘 모르는 영역인 구조상의 문제에 대해 현장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판단하는데 이런 문제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권 카르텔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최 교수는 "일각에서 지적하듯 전관예우 등이 발생했다면 설계사는 전관예우에 그만큼의 비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라며 "그만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아웃소싱하는 등의 건축 문화에 존재하는 이권 카르텔을 혁파하는 방향의 개혁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책임자를 문책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이권 카르텔이 존재하는 배경을 부숴야 한다"며 "책임자 처벌만 강조되고 있는 지금 상황은 우려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masterk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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