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소중한 것 먼저 하기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2023. 8.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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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십 수년 전, 연구원 숙제인 교육시간을 채우기 위해 온라인 강의를 뒤적이다 무료로 책 한 권을 보내준다고 하여 강의를 신청했던 기억이 있다. '소중한 것 먼저하기' 오늘은 이 책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강좌 첫 시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세 가지 소원을 말 하시오'. 아니 왜 소원이 세 가지뿐인가? 적어도 열 가지, 스무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내 쉽지 않은 문제임을 알게 된다. 내 답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막연한 소원들뿐이었다. 이를테면,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지금의 연구에 성과 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등등.

하지만,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곤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가지 소원에 즉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과연 나는 스스로 하나뿐인 인생에 얼마나 가치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어릴 적 어른들의 말씀에 순응하며,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덕분인지 대학, 직장 등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를 고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당시 내 나이가 만 40세 정도로서 남은 절반의 인생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질문은 당신은 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어제 행복해서? 내일 행복하려고? 아니다. 지금 당장 오늘 이 순간에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삼십여 시간의 강좌를 마무리하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찾아 행복한 하루를 만들면, 그 하루들이 모여 삶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논리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장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다음 주 종합건강검진에서 중증을 진단받을 수도 있다.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대학 연설은 유명하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시한부 판정을 받고 운 좋게 수술이 가능해 당시에는 완치됐다고 기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에 이르렀다. 만약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할까? 재산이나 권력, 명성이 무슨 의미인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도성장을 거듭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필자로서는 어릴 적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연구원들은 항상 세계 최고와 비교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 본인의 행복을 인지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부모님 세대보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많은 연봉을 소비하며 해외여행에도 자유로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에는 시원하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자는 행복하다고 바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은퇴 대비도 불확실하고 수 억 원의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나 스스로는 행복하다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이 길지 않아 행복했고, 10년 넘게 키운 강아지와 20년 넘게 건강하게 곁을 지켜준 아내가 배웅해주니 행복했고, 무엇보다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직장으로 출근한다는 사실에 더없이 행복했다. 얼마 전 은퇴하신 선배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화학연구원은 당신이 가정을 꾸리고 처자식을 부양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은퇴 후 다른 일도 연계할 수 있어 감사한다는 말씀이었다. 모든 것이 고맙고 행복하다는 말씀과 함께 필자에게도 그 행복에 감사하라고 당부하셨던 기억이 난다.

현실에 안주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잡스의 인용문처럼 우리 연구자들은 항상 호기심을 기반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도 많겠지만, 연구하는 과정과 작은 결과에서 행복을 찾고, 그와 동시에, 각자의 생활 안에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챙겨 나간다면 내일이라는 행복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역대급 물난리와 고물가 저성장의 국가적 위기상황이지만 우리 모두 항상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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