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슈퍼맨 경영의 한계

편집보도국 2023. 8. 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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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전 서울교통공사 사장]십여 년 전의 일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써치펌의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떤 중견기업에서 기획을 총괄할 임원을 찾는데 내가 적임자이니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그 대표에게 도움 받은 일이 많았던 터라 딱히 거절할 수도 없고 변화도 필요한 시기라 면접을 보기로 했다. 기업 오너인 회장과의 면접에서 할 경영 구상에 대한 발표를 고심 끝에 ‘슈퍼맨 경영, 시스템 경영’(Management by Superman, Management by System)으로 했다. 잘 나가던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목에서 좌초하는 것은 창업자의 리더십이 적절한 시기에 변화하지 못했던 것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1년 ‘중견기업 통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의 비율은 3% 내외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중소기업의 창업 5년 생존율도 30% 정도지만 지속성장해 대기업으로 진입하는 것은 100만 개중 10개를 넘지 못한다. 최근에는 적절한 시점에 M&A를 통해 이익을 구현하는데 더 관심을 두는 창업자도 있지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이를 위해 필요한 경영 리더십의 단계적 진화는 언제나 중요하다.

창업 초기에는 창업자의 역량과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고 창업자는 생존을 위해 대체로 슈퍼맨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사업의 구상과 진행, 필요한 인적자원과 자금 및 설비의 확보, 고객과 시장의 확대, 홍보와 대관 업무 등 전 방위에서 창업자는 일인다역을 맡는다. 그야말로 슈퍼맨 경영(Management by Superman)이다.

기업이 크게 성장한 후에도 창업자가 슈퍼맨 경영을 벗어나지 못하면 직원들은 수동적으로 변한다. 사옥 내 4대의 승강기 중 어떤 것을 짝수 층 혹은 홀수 층에만 서게 할 것인가라는 사소한 일조차 담당자가 결정하지 못하고 회장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회사를 본 적이 있다. 슈퍼맨 경영의 극단적 폐해 사례다.

슈퍼맨 리더십으로 기업을 키워 온 창업자는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성향을 보인다. 욕심(欲心), 의심(疑心), 변심(變心)이라는 삼심(三心)이다. 사업을 키우겠다는 ‘욕심’이 없는 창업자는 없다. 자신을 속이고 등쳐 먹으려는 사람들을 항상 경계해야 하기에 ‘의심’하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자신의 회사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시시각각 ‘변심’하는 것도 창업자의 특성이다. 욕심, 의심, 변심은 경영목표를 세우고 리스크를 관리하고 시의적절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슈퍼맨 창업자의 역량이기도 하다.

회사의 모든 것을 다 꿰고 있는 슈퍼맨 창업자의 ‘삼심’은 사업 환경이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얽힐수록 자칫하면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고 자신의 관리통제 범위(Span of Control)를 벗어나는 전문 분야도 늘어나기에 전문경영인과 체계적인 경영시스템으로 보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슈퍼맨 경영과 잘 융합되면 슈퍼맨 창업자가 가지고 있던 기능이 세분화돼 시스템 경영(Management by System)으로 발전시킬 기회를 가지게 된다. 즉, 시스템 경영이 슈퍼맨 경영을 대체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다는 얘기다.

슈퍼맨 리더십의 일사불란한 일 처리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시스템이 정착할 때까지의 시행착오에 관대하지 않은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시스템 경영으로 전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창업자가 결단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시스템 경영으로의 전환은 후계자가 기업 승계를 연착륙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창업자가 했던 모든 역할이 시스템을 통해 기업 내부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최고의 리더는 개인적인 겸양과 직업적 의지의 역설적인 결합을 구현해 후계자들이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중심적인 유능한 리더로서 기업을 성장시켜 온 많은 슈퍼맨들이 최고의 리더로 거듭난다면 기업의 생존율과 대기업으로 성장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편집보도국 (bod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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