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류승완 감독은 왜?…그가 밝힌 '밀수'의 모든 것
누군가에게는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으로 기억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베를린'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가디슈'로 기억될 수 있다. '다찌마와 리'의 감독으로 뇌리에 깊이 각인된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살펴보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변주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기존 영화 문법을 거스르면서도 현실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그런 류승완 감독이 이번엔 또 다른 새로움에 도전했다.
김혜수와 염정아라는 전에 보지 못했던 두 배우를 한곳에 모으고 전에 없던 캐릭터를 만들어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해녀 수중 액션'을 완성했다. 먹고 살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선을 넘어서며 서로를 위험으로 내모는 밀수판 속 사람들을 이른바 '해양범죄활극'이라는 문법으로 풀어냈다. 류승완 감독만의 필체로, 그러나 이전과는 또 다른 필체로 말이다.
'밀수'라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과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는지 류승완 감독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욕망이 위험으로 몰아간 1970년대 밀수판
▷ '밀수'를 연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이었나?
우리 회사(외유내강) 조성민 부사장이 '시동'을 제작할 때 군산에 촬영 갔다가 지역 박물관에서 1970년대 군산에서 밀수가 횡행했는데 해녀들이 거기 가담했다는 아주 짧은 사료 기록을 본 거다. 이런 소재를 갖고 개발하면 좋겠다고 해서 시작됐다. '모가디슈' 후반 작업할 때 각본 초안이 나왔는데, 바다에서 해녀들이 활극을 벌인다는 건 어디서도 못 봤던 거였다. 그건 관객들에게 새로운 어떤 것을 보여드릴 수 있는 거니까, 그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대인데, 먼저 감독의 기억 속 '밀수'는 어떤 이미지였나?
일단 1970년대 밀수와 21세기 밀수는 너무 다르다. 내 기억에 1970년대 밀수품이라고 하면 미제 카라멜, 바나나, 일제 소니 전축, 아이와 워크맨, 이거였다. 심지어 양담배도 단속이 있었다.(*참고: 1986년 9월 1일 이전까지 양담배는 불가촉(不可觸) 대상으로, 담배 전매법에 의거해 양도·양수 및 소지, 즉 사고파는 것은 물론 소지만 해도 처벌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밀수품이었는지 했는데, 그때는 우리 사회 자체가 아직 열리지 않았던 거다.
▷ 그렇다면 그러한 1970년대 밀수판에서 감독이 발견한 건 무엇인가?
미국에 이민 간 이모네 집에서 도시락통 하나 예쁘다고 사다 주면 그게 밀수품이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지금은 밀수품이라고 하면 마약, 금괴 등 센 건데 말이다. 그때는 밀수한다는 게 모두가 큰 범죄가 아니라고, '먹고 살기 위해 이 정도는'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근데 그것이 어느 선을 넘는 순간 조금 더 넘고 넘고 결국엔 사람들의 욕망이 스스로를 위험한 쪽으로 몰아가게 된 거다. 그런 게 흥미로워서 70년대로 갔다.
거기에 더불어 좋았던 건, 70년대 패션과 음악이다. 예전엔 '복고풍'이라고 하면 촌스러운 것만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70년대는 되게 멋있는 세상이었다. 부모님 옛날 사진만 봐도 나팔바지 입고 카라(칼라)가 엄청 넓은 옷을 입고 헤어스타일도 자유분방하고. 그때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줄자로 재고, 장발 단속해서 경찰들이 머리 자르던 때다. 사회적 금기를 강요당하고 개인은 거기서 자꾸 벗어나려는 게 되게 흥미로웠다.
류승완 감독이 자부하는 '수중 액션'
▷ 감독의 말마따나 '밀수'는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해보진 못한 사람이라도 1970년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음악의 영향이 큰 영화인 것 같다.
이준익 감독님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내가 어디 가서 70년대 가요를 이렇게 듣냐"고 하시길래 "그건 칭찬인가요, 욕인가요? 그러면 '가요무대'를 보시죠"라고 했다.(웃음) 아마 대부분 권 상사(조인성)가 액션을 펼칠 때 흐르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노래 산울림)는 취향을 떠나서 막 (감성이) 올라오지 않을까. 여기 사용된 11곡 중 한 곡은 마음에 드는 곡이 있을 것 같다. '밀수의 희망가요' 느낌처럼 듣는 재미가 있다.
▷ 바다에서 촬영한 장면의 경우 세트처럼 제어할 수 없는 환경이라 어려움도 컸을 것 같다.
바다에서 찍을 수 있는 게 일 년에 며칠 안 되더라. 미국에서 '탑건'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저녁을 먹을 자리가 있었다. 그 양반이 하늘이나 바다에서도 찍고 별 데서 다 찍어본 양반이다. 그래서 내가 다음 영화가 바다 배경인데, 바다 촬영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 양반이 씩 웃으면서 가급적이면 바다에 안 가는 게 좋다고 하더라. 동료들이 물어본다면, 그 양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다고 말할 거다.(웃음)
▷ 그러면 자연적인 제약과 어려움 안에서 촬영을 진행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솔직히 서너 컷 정도가 자연환경의 어쩔 수 없는 여건 때문에 합성이 완벽하게 되지 못했다. 우리가 찍은 것과 소스를 찍을 때 빛의 방향들이 달라서, 정말 최대한 어떻게 만져서 만들었는데…. 예를 들어서 산이라고 하면 소스가 마음에 안 들면 가서 다시 찍어 바꿀 수 있지만 바다는 다시 하는 게 너무 어마어마한 작업이다. 간다고 해도 바다 환경이 계속 바뀌니까 좋은 소스를 찍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건 많은 사람의 눈에 보일 텐데 아쉽다.
▷ 그렇다면 반대로 뿌듯한 지점도 있을 텐데?
수중 장면은 되게 잘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미술팀도 너무 고생했다. 우리는 찍으면서 "'모가디슈'가 끝인 줄 알았더니 산 넘어 산이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프리카도 가고 물속에서도 찍은 촬영 오퍼레이터는 꿈을 꿨단다. 어느 날 내가 스카이다이빙 훈련을 시키고 있더란다. "류 감독이 하늘에서 찍는다고 했대요"라는 거다. 그런 악몽에서 깼다는데, 그래서 오퍼레이터에게 당분간은 그럴 계획이 없다고 했다.(웃음)
▷ 수중 신은 김혜수가 해녀 액션을 두고 '세계 최초' '유일무이'라고 한 이유를 알겠더라.
새롭긴 하고 재밌을 거 같은데 뭐가 있을까, 그걸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물속이 재밌었던 건 중력의 지배를 덜 받는다는 점이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칼, 싸움, 총 등 다 해봤지만 중력이 주는 리얼함을 벗어날 수 없으니 움직임에 한계가 있다. 물속에서 하면 못 해본 움직임을 못 해봤던 방식으로 포착할 수 있겠더라.
대신 물속은 물의 저항을 받으니 속력이 느려진다. 역으로 생각하면 멋있게 보이려고 일부러 슬로우 모션도 거는데, 오히려 느린 상태가 서스펜스를 일으킬 수 있겠다고 봤다. 거기 더불어 수중 액션에 매력을 느낀 건, 남성과 여성이 육체적인 대결을 벌인다고 했을 때 이게 너무 말이 될 것 같은 거다. 밖에서 아무리 강력한 남성도 물에 익숙하지 못하면 물에 익숙한 사람이 훨씬 유리하다. 이건 너무나 장르적인 세팅을 말이 되게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 그럼 수중 액션 신은 어떻게 설계해 나간 건가?
무술 감독님하고만 작업했다면 안 됐을 텐데, 아티스틱 스위밍 김희진 코치가 합류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보여줬다. 춘자와 진숙이 크로스하는 것도 원래는 그냥 하이 파이브였는데, 아티스틱 스위밍 팀이 계속 테스트하면서 가능하다고 해서 나온 장면이다. 그냥 테스트만 봐도 멋있더라. 그리고 '스파이더맨'과 같이 카메라 앞을 스치면서 사람이 뒤로 텀블링하는 걸 해보고 싶어서 심지어 내가 수영장에서 해봤다. 그걸 혜수 선배님이 해내시더라. 땅에서 하게 되면 사이파이(SF) 영화나 초능력자가 아니면 구사하기 힘든 동선들이다.
감독 류승완의 '욕망'
▷ 그동안 '베를린' '군함도' '모가디슈' 등 많은 작품을 하면서 하고 싶은 장르를 하면서 전하고 메시지도 놓치지 않은 것 같다.
나같이 대중 장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항상 그런 딜레마에 빠진다. 내가 영화를 열 몇 편 만든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선입견이 생긴다. "류승완 영화는 이럴 것이다." 그런데 내 영화 필모그래피를 보면 액션, 판타지, 코미디 등 갈지(之)자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해놓은 것으로부터 멀리 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다.
가장 위험한 것이 성공을 재탕하는 거다. 물론 최근 '베테랑' 속편 촬영을 마쳤지만, 강박적으로 속편을 만들지 않으려고 피해 온 것도 있다. 밸런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관객이 요구하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밸런스를 얼마나 잘 맞출 것인가. 실패를 하더라도 한 걸음만 더 이렇게 가볼 수밖에 없다. 나도 두렵다. 매번 새로운 걸 하는 게 두렵지만 구력이 쌓이고 성공과 실패도 해보니 안 되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이렇게 자꾸 하게 되는 거 같다.
▷ 혹시나 '밀수'도 속편의 가능성이 있을까?
사실 속편은 현장에서 장난처럼 하던 이야기인데,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 정이 가서…. 1980년대 배경으로 이들이 살아남아서 무슨 일을 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야기는 해봤다.(웃음)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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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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