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물 바닥 뒹구는 물건들, 텅 빈 매대… 간판 내리는 中까르푸
계산대 직원 한 명뿐… 사실상 방치
악재 거듭돼 佛 까르푸는 2019년 철수
인수한 中 기업도 브랜드 회복 실패
물건값 못 줘 韓 오리온 등 소송 제기
선불카드 사용 제한에 여론 악화일로
지난달 31일 오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까르푸 쓰위안차오 지점. 매장 입구가 노란 철조망으로 막혀있었지만, 안에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는 이들이 보였다. 한 남성은 입구를 찾다 포기하고 함께 온 어린 아들과 벌어진 철조망 사이로 몸을 욱여넣었다. 그들을 따라 들어간 까르푸는 재난영화 속 무질서한 사재기 끝에 엉망이 된 대형마트 모습과 흡사했다.
각종 물건들이 뒤섞인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신선식품은 물론 공산품까지 대부분의 매대가 텅텅 비어있었다. 그나마 재고가 있는 것은 냉동식품과 조미료 등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제품들뿐이었다. 깨진 유리조각과 정체 모를 오물로 바닥 청소가 시급해 보였지만, 매장을 돌아다니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쇼핑카트조차 찾을 수 없어 시민들은 매장 내 굴러다니는 박스를 주워 물건을 골라 담고 있었다.
이곳은 베이징 마지막 까르푸 지점이다. 직원은 기자에게 “우리 지점은 한 달 뒤 폐점할 것”이라며 “현재 베이징에는 쓰위안차오 지점과 솽징 지점, 두 곳만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옆에서 듣던 한 시민은 “내가 방금 솽징 지점에 다녀왔는데, 그곳은 이미 문을 닫았다”며 “여기가 베이징 유일한 까르푸 지점이 됐는데 모르고 있었냐”고 직원에게 발칵 화를 냈다. 이 시민은 계산대가 단 하나뿐인 탓에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고 항의를 이어갔다.
◇ 中 3대 슈퍼마켓서 추락… 佛 본사는 이미 손 턴 지 오래
1995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한때 ‘중국 3대 슈퍼마켓’까지 올랐던 까르푸가 중국 내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인이 까르푸에 등을 돌린 데는 두 가지 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열악한 티베트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참여를 거부하자”고 주장하자 중국인들이 까르푸 불매운동을 벌인 것이 까르푸의 첫 번째 위기였다. 이후 2011년 까르푸가 원가를 속이거나 가격표보다 더 높은 값을 받는 식으로 ‘꼼수’를 부린 것이 들통나고, 10년간 직원 임금을 동결한 것이 알려지면서 브랜드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금의 까르푸는 이미 껍데기일 뿐이다. 프랑스 까르푸 본사는 2019년 중국 가전유통기업 쑤닝닷컴에 까르푸 중국법인 지분 80%를 매각하고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쑤닝닷컴은 까르푸를 온·오프라인 통합 슈퍼마켓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2012년 전성기 때 중국 전역에 321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었던 까르푸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151개로 줄었고, 올해 1분기에는 33개 매장이 추가로 문을 닫았다. 이후에도 폐점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중국 내 까르푸 매장은 100개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은 쑤닝닷컴이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대형마트 공급망에 정통한 기존 까르푸 인사들을 쑤닝닷컴 쪽 인사로 대거 교체한 것이 패착이라고 봤다. 대형마트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이들이 이끌다 보니 남아있던 까르푸의 장점들까지 손상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자상거래 위주로 중국 유통시장 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 적시에 대응하지 못한 점도 까르푸의 몰락을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 공급사에 물건값 못 줘 소송… 소비자 선불카드 소진도 제한적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까르푸의 경영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대만 1위 제과기업 왕왕그룹은 까르푸로부터 2000만위안(약 36억원) 이상의 대금을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오리온의 중국 법인 하오리요우도 까르푸의 은행 예치금 2274만위안에 대한 동결을 신청하고 추심에 나선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공급사들은 까르푸에 제품 공급을 대부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부터 정리해고에 나섰지만, 직원들에게 보상금과 퇴직금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까르푸는 현금 확보를 위해 소비자의 선불카드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전체 구매 금액의 20%만 선불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이날 까르푸 쓰위안차오 지점을 찾은 한 주부는 “아직 선불카드에 1000위안 넘게 남아있어서 문 연 까르푸를 찾아 멀리서 왔는데, 도저히 살만한 게 없다”며 “행주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제품이 멀쩡해 보여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혹시 남은 선불카드를 써야 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곳으로 가라”며 “여기 물건들은 품질이 안 좋다”고 했다.
이는 까르푸의 브랜드 신뢰도를 더욱 갉아먹고 있다. 제일재경은 “올해 2월부터 선불카드 사태를 포함, 까르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각 지역 및 온라인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이같은 여론은 공급업체를 비롯한 파트너의 신뢰를 낮춰 유동성 압력 증가, 공급망 차단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까르푸는 33억3700만위안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2020년 순손실(7억9500만위안)보다 320% 가까이 확대된 수준이다.
베이징상보는 “한때 슈퍼마켓의 간판 브랜드이자 대형 매장의 원조였던 까르푸는 비즈니스 전환 기회를 여러 번이나 놓쳤다”며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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