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꺼내든 ‘젊은 피 수혈론’…20여년 지나 ‘이벤트’로 변질

선담은 2023. 8.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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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젊은 피 수혈론'을 꺼내 든 것은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더불어민주당 전신)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청년정치'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여의도에 돌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9대 총선 때다.

민주당에서도 당시 인재 영입 2호로 발탁된 20대 원종건씨가 '미투' 논란으로 중도 하차하면서, 당 안팎에서는 정치적 자질보다 스토리에 치중해 청년 정치를 '이벤트화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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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청년정치보고서①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4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출입기자들과의 월례 간담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뜻있는 젊은 사람들을 정치권으로 많이 수혈해 새로운 기풍을 진작하는 차원의 정계 개편에 관심을 갖고 있다.”(김대중 대통령, 1999년 3월19일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젊은 피 수혈론’을 꺼내 든 것은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더불어민주당 전신)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당시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는 시절이었다. ‘공천 물갈이’를 우려한 현역 중진 의원들의 견제 속에 19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임종석·송영길·우상호·이인영·강기정 등 ‘86세대’ 그룹이 당에 대거 영입됐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도 이회창 총재가 ‘신진 엘리트 영입’을 밝히면서 법조인 출신의 원희룡·오세훈 등이 입당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세대교체 바람에 힘입어 제도권 정치에 입성한 이들은 당시 당내 개혁세력을 자처했지만, 한편으로는 각각 ‘기성 정치에 편입돼 386세대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이회창 친위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청년정치’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여의도에 돌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9대 총선 때다.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한 2010년 6·2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30대 투표율 상승이 선거 결과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다. 민주통합당에서 30대인 장하나, 김광진 비례대표 의원이 탄생하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20~30대 당선자는 19대 총선보다 6명 줄어든 3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례대표 후보 가운데 청년 수가 줄어든데다, 대부분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순위에 배치된 결과였다.

2020년 21대 총선 공천에서도 정치권이 청년을 ‘흥행 불쏘시개’로 이용한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퓨처메이커’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래통합당은 ‘청년벨트’로 지정한 경기 수원정·광명을·의왕과천 등 수도권 험지 8곳 공천을 하며 ‘퓨처메이커’라는 이름을 붙인 만 45살 이하 청년 16명을 경선에 부쳐 ‘청년을 총알받이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일었다. 민주당에서도 당시 인재 영입 2호로 발탁된 20대 원종건씨가 ‘미투’ 논란으로 중도 하차하면서, 당 안팎에서는 정치적 자질보다 스토리에 치중해 청년 정치를 ‘이벤트화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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