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조·박지현으로 보는 청년정치…그들은 어떻게 소모됐나

임재우 2023. 8. 1.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3 청년정치보고서①
2012년 11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손수조 중앙미래세대 위원장이 부산 사상구에서 유세를 한 뒤 기호 1번을 뜻하는 손가락을 흔들며 율동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2022년 5월 이재명 인천 계양을 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윤호중·박지현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권은 ‘청년’을 소환한다. 청년층과 청년 문제에 반짝 관심을 보이며, 젊고 참신한 인재를 발탁해 청년 표심을 노린다. 최근 주요 선거에서 2030 청년층이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로 떠오르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치권의 시선은 다시 청년에서 멀어진다. ‘청년 정치는 없고, 청년 방치·착취만 있다’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8개월여 남은 내년 총선에서도 이런 상황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한겨레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정치하는 청년들’을 만나봤다. 그들의 삶과 고민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청년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세차례에 걸쳐 전한다.

그는 2012년 3월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구름 위에 떠 있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었어요.” 19대 총선을 한 달 앞둔 그해 3월4일, 손수조는 부산 사상구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됐다. “선거운동을 하려고 들어간 한 가게에서 티브이(TV) 자막에 ‘손수조 공천 확정’이라고 뜬 걸 봤어요.” 당시, 그의 나이 스물일곱, 상대는 쉰여덟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었다.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2022년 3월. 20대 대선 나흘 뒤, 코로나19로 고열에 시달리던 스물여섯의 박지현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대선에서 패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선후보의 전화였다. 디지털 성범죄 집단 엔(n)번방의 실체를 밝힌 ‘추적단 불꽃’ 활동가였고, 대선 기간 2030 여성의 지지세를 이끈 박지현에게 이 전 후보는 당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제안했다. 수차례 거절했지만, ‘민주당에 외부의 목소리를 전하고, 쇄신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라는 이 전 후보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정치입문 1개월 반만에, 박지현이 제1야당의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10년의 시차를 두고 화려하게 발탁된 이 두 정치인은 기성 정치가 ‘청년 정치’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그 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다.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으로서 이들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들을 통해 청년 인재 영입·발탁 정치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기성 정당이 청년들을 ‘선거 불쏘시개’로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징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년 4월 총선에서도 2030세대를 향한 정치권의 구애는 격렬해질 것이고, 그럴수록 기성 정치가 이들 사례와 같은 ‘깜짝 청년 영입 정치’에 기댈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가 지난 19~20일 이들을 각각 만난 이유다. 거대 양당의 ‘발탁 정치’를 때론 이용하고, 때론 이것에 이용당한 이들 청년 정치인은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뒤,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의 정치’를 시작하고 있었다.

손수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희망포럼 공동대표.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2년 4월, 19대 총선

손수조(38)는 “태생적 관종”이란 말로 자신을 표현했다. 어릴 적부터 학생회장을 도맡으며 정치인을 꿈꿨던 그는 2011년 말 자신의 고향인 부산 사상구에 ‘거물’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출마한다는 소식에 자신도 출마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무작정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파악한 새누리당 공천·인재영입 기구 소속 교수들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이력서를 보냈다. 메일 제목은 “문재인 대항마 27살 여성”이었다. “문 후보와 달리 지역 연고가 있는 젊은 여성이 맞상대로 좋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겁이 없었죠.”

‘무모한 구애’는 이뤄졌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은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고문의 맞상대로 20대 정치 신인을 ‘자객공천’했다. 당 내부에서는 이 공천을 두고 꽃놀이패라는 반응이 나왔다. 누가 나와도 어려운 선거에서, 젊은 피 수혈이라는 명분으로 당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20대 여성 정치인과 싸우는 거물’ 프레임에 문재인 후보를 가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면 선거 전략의 승리, 져도 손해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손수조 입장에서는 정치권 전면에 혜성처럼 등장할 기회를 잡은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당이 정치 경험이 전무한 그를 쇄신의 들러리로 세운 셈이었다.

한순간에 움켜쥔 유명세는 ‘독’이 됐다. 무엇보다 준비가 부족했다. “전세금 3천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해서 주목받은 그는 선거 내내 자금 출처 의혹과 공약 파기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보통 사람들도 정치를 할 수 있는 선거를 만들자는 취지였는데 선거비용이 3천만원을 넘었다고 발표하니, 공약파기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현실 정치의 작동 원리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메시지가 흔들릴 때마다 ‘말을 바꾼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참신함에 균열이 일었다.

그는 문재인 후보(55.04%)를 상대로 43.75%의 득표율을 올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손수조는 자신의 ‘자객공천’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했다. “전혀 예측 가능하지 않고, 투명하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이뤄진 자객공천은 올바른 방향은 아니죠.”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 반전’에서 비대위원장 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22년 6월, 제8회 지방선거

박지현(27)은 지난해 3월 비대위원장직을 제안받을 때 이재명 전 대선후보에게 말했다.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그 말에 이 전 후보는 ‘공천권’을 언급했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동 비대위원장은 공천권의 절반을 갖게 되는데, 공천권은 막강한 권력이다. 공천권을 주는 것은 당신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의지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당시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 열린 비공개 고위전략회의는 박지현에게 곤욕이었다. “제가 이야기를 하면 참석자들이 갑자기 휴대전화를 보거나, 옆자리에 다른 누군가와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 이야기에는 아무 대꾸 없이 침묵하다가,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이 (제 말을) 받아주면 다른 참석자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당은 그를 지난해 보궐선거 대상지인 강원 원주갑이나 인천 계양을 후보군에 장기판의 말처럼 넣기도 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 홍보용 ‘얼굴마담’으로 쓰려는 것 아닌가 생각했죠.”

그는 ‘반성과 쇄신을 주도해달라’는 애초 요청을 충실히 이행하기로 했다. 그해 4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과를 비롯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법안’의 신중처리와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처리 등을 요구한 것은 쇄신의 마스코트로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발버둥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부총질하지 말라’는 당 안팎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온라인 영상회의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같은당 최강욱 의원 사건 대응에 앞장섰을 때는 이재명 전 후보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전쟁’ 중에 같은 편 장수를 공격하지 말라는 지적이었다. “충격이었죠.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스스로를 비타협적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가 6·1 지방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꺼내 든 ‘86세대 용퇴론’은 여전한 논란거리다. ‘박지현의 정치적 미숙함을 드러난 사례’라는 비판과 ‘기득권화된 민주당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박지현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결론이 나오니까, 순응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조건적인 ‘노(No)’가 두려워서 토론과 합의에 어느 순간 소홀했다는 반성도 해요.”

현실 정치의 벽…무대에서 내려오다

2012~2016년 부산 사상구 당협위원장을 지낸 시기는 손수조에게 지금도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원외 4년은 ‘5060 남성’들이 똘똘 뭉친 기성정치의 공고한 벽을 실감한 때였다. “유력 경쟁자는 산악회를 30개씩 조직해 관리하더라고요. 여전히 지역 정치권은 돈이 필요하고, 밤에 술 마시며 ‘형님’ ‘동생’하는 판이에요.” 한 지역 당원은 어느 날 ‘다른 쪽을 돕겠다’며 손수조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 위원장이 나를 먹고살수 있게 해줘 봐. 그럼 도울게”.

다만, 그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부산 사상 후보자로 사실상 전략공천됐다. 당내에서 “정치 기반이 약한 청년으로서 남들은 한 번도 받기 어려운 공천을 두 차례나 내리 받는 등 사실상 특혜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당시 친박계(친박근혜계)가 해당 지역구 지지 기반이 높았던 친이계(친이명박계) 장제원 후보에게 공천을 주지 않기 위해 이 지역을 여성 우선추천 지역으로 묶어 손수조를 이용했다”는 풀이도 나온다. 당시, 장제원 후보가 이런 공천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로 당선되면서 손수조의 원내 입성의 꿈은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이 선거 이후 손수조는 대인기피증을 얻었다. 두 번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장례지도사의 길로 들어섰다. “우연히 지인의 입관식에 갔는데, 하얀 백발의 유족께서 장례지도사에게 허리를 90도 숙이면서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진심이 오가는 현장이었어요. 권모술수, 권력, 돈 다 필요 없고,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이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손수조가 현실 정치를 떠나 장례지도사로서의 길을 걷는 동안, 박지현은 지난해 7월 당대표 출마를 시도했고, ‘무리수를 뒀다’는 당 안팎의 비판을 받으며 ‘무대’에서 퇴장했다. 비대위원장 발탁에서 6·1 지방선거 참패까지, 단 82일의 시간은 그에게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남겼다. 그 시기 가장 뜨겁게 호명됐지만, ‘뭘 해도 싫다’는 이들도 크게 생겨났다. “저는 민주당에서 ‘볼드모트’(해리포터 시리즈의 악역)가 돼버린 것 같아요. 당내에선 저와 함께 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히기만 해도 정치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분위기가 있는 거죠.”

‘박지현 발탁’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민주당의 한 20대 정치인은 “정치는 갈등의 조정인데, 정치적 준비가 부족했던 박지현 전 위원장은 ‘갈등 그 자체’가 돼버렸다”며 “결과적으로 ‘또 박지현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 때문에 당에서 실력을 쌓아오던 다른 청년들의 활동에도 제약이 생겼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당 한 30대 정치인은 “청년을 들러리로 세울 줄만 알지 실권을 줄 생각이 없었던 정치권의 허울이 박 전 위원장을 통해 드러났다”며 “강고한 기득권에 의문을 제시하는 청년 정치가 등장했을 때, 기성 정치가 정말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무대 아래서, ‘나의 정치’를 시작하다

환멸 속 정치를 떠난 손수조는 다시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장례지도사를 하면서 ‘공적인 일’을 하고픈 힘을 되찾았다고 했다. 정치의 벽에 부딪혔던 부산 사상구를 떠나, 장례지도사로 일한 경기도 동두천에 터를 잡았다.

다만, 그는 “제2의 손수조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훈련되지 않은 정치인’을 무대에 세워 소모하는 정치권의 공식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아무리 장미를 보여주고 싶어도 훈련되지 않으면 대중들에게 가시밖에 못 보여줘요. 원래 이렇게 예쁜 꽃이라는 걸 보여주지 못하는 거죠.”

박지현은 지난 1년, ‘밑바닥’부터 다시 정치를 시작했다. 책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을 펴내고 전국을 돌며 북 콘서트를 열었다. 대학원을 다녔고, 여야 청년 정치인들과 함께 공부도 했다. 민주당 청년 정치인들과는 ‘넥스트 민주당’이라는 모임을 꾸렸다. 비대위원장 시절 ‘혈혈단신’이었던 그는 동료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청년정치인으로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지켜졌는가’라는 물음에 그는 “지켜지지 않았다”면서도 “어쨌든 저는 당을 사랑하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을 바꾸려는 노력을 최대한 해봐야 후회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직진’만 했다면, 지금은 논의와 토론으로 타협할 수 있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볼드모트’로 치부하는 당내 시각을 놓고서는 “‘존버’(끝까지 버티기)해야죠”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의 굳은 얼굴에서 웃음기가 새어 나온 순간이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