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표 가져오라’며 법안 내면 등한시…국회 안 3%의 현실
3.6%(11명). 2020년 치른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20~30대 청년층 비율이다. 반면, 50~60대 중장년층 의원 비율은 83.3%(250명)에 이른다. 중장년층이 과잉 대표된 국회에서 청년 정치인의 삶은 어떨까.
장혜영(36) 정의당 의원은 “청년 의원들에게는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청년이면 달라야 한다’는 기대가 있으면서도 말을 잘 듣는 ‘마스코트’ 같은 모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2021년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의 더불어민주당 모습이 대표적이다. 당시 민주당의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은 선거 참패 원인으로 이른바 ‘조국 사태’ 등을 거론하는 반성문을 썼다가, 당내 일부 특정 계파 의원들의 비판과 강성 당원들의 공격을 받았다.
지난 5월, ‘가상자산(암호화폐) 투기 논란’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의 사퇴를 촉구한 민주당 원외 청년 정치인 8명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김남국 의원 논란’에 고개를 숙이며 “부끄럽고 송구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강성 지지층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정치인’이 아닌 ‘청년 정치인’이라는 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정치 활동이 해석된다는 점도 어려움으로 꼽힌다. 중장년층 정치인의 비리나 부정이 드러났을 때 또래 정치인의 문제로 치환되지 않지만, 청년 정치인은 다르기 때문이다. 김남국 의원이 논란을 빚자, 한 정치인의 일탈임에도 정치권에서는 ‘이래서 청년 정치인이 문제’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현진(40) 국민의힘 의원은 “(청년 앵커, 청년 아나운서라고 하지 않듯 나를) 청년이라는 (범주 안에 넣고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말을 회사에 다닐 때는 들어보지 못했고, 당(정치권)에 와서 처음 들었다”며 “나는 특정 세대가 아닌, 전 세대에 걸쳐 있는 지역구 주민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선출직 공무원인데, 우리 정치권의 청년 정치 양태는 청년을 대변하라는 요구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고 했다.
류호정(31)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각각 당내 갈등을 빚고, 정의당에선 자신과 장혜영 의원이 비례대표 사퇴 압박을 받던 때를 돌이켰다. “우리를 묶어서 ‘청년 정치의 몰락’으로 규정하는 기사가 쏟아지더라고요. 고작 네명인데. 그러다 보니 ‘튀면 안 되겠다’는 압박이 강해졌어요.” 타투 스티커를 붙이거나 등이 파인 드레스, 멜빵바지 등 파격 의상으로 정치권의 ‘엄숙주의’에 도전하던 임기 초반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류 의원의 설명이다.
‘청년을 대변하라’는 요구에 더해 ‘청년 지지율을 책임지라’는 압박도 부담이다. 장혜영 의원은 “중년 정치인들에게는 선거에서 중년 표를 가져오라는 말을 하지 않지만, 청년 정치인들은 다르다”고 했다. 기성 정치인들이 ‘청년 표를 가져와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면서 그러지 못할 경우, ‘청년층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딱지를 붙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처럼 청년 정치인에 대한 요구는 많지만, 정작 청년 세대의 고민은 여야가 다투는 쟁점 현안에 견줘 등한시되기 일쑤다. 20대 국회에서 활동한 정은혜(40) 전 민주당 의원은 6살짜리 딸을 키우는 엄마의 고민과 경험을 담아 ‘조두순 접근 금지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나, 남성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하도록 하는 ‘라테파파법’(영유아보육법 일부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하지만 의원들에게 ‘젊은 정 의원이 열심히 해보세요’라는 말만 들으며, 결국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정 전 의원은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또래 의원들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고 했다.
군에서 다칠 경우 적합한 보상을 하는 내용을 담은 ‘군인 재해보상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낸 전용기(32) 민주당 의원의 경험도 비슷하다. “남성 의원들도 군대에 다녀온 경험이 이미 오래전이라 그런지 법안 처리가 계속 뒷순위로 밀리더군요.”
이들은 단순히 ‘청년이니까 우대해달라는 게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나이에 상관없이 실력을 인정받는 문화가 정치권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철민(40) 민주당 의원은 같은 당 홍영표 의원실에서 7급 비서로 일하며 여의도에 발을 들여놓은 뒤, 4급 보좌관, 홍영표 원내대표 정책조정실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사례다. 그는 “의원이 신뢰하고 결단해준 덕이었다”며 “실력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는 문화가 정치권에 자리 잡아야 청년 정치인들도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대한민국 정치를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손수조·박지현으로 보는 청년정치…그들은 어떻게 소모됐나
-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유사 구조 민간 아파트로 번지나
- 경찰 전담하던 ‘보완·재수사’…검찰이 원하면 직접수사 가능
- 론스타, 중재판정부 판정 취소신청 제기…“한국 정부 압박”
- 김영환 충북지사 땅부터 붕괴 정비?…담당 계약직 공무원 직위해제
- 장모 구속·양평 땅 의혹 커지는데…대통령실, 특별감찰관 ‘모르쇠’
- 코로나 신규확진 다시 5만명 넘겨…당국 “대응역량 충분”
- [단독] ‘1천원 소주’ 나올까…국세청, 술 할인판매 허용
- 이동관 ‘방통위’ 통해 낸 첫 메시지가 “부인 의혹 보도 법적 대응”
- “예쁜 딸, 많이 아팠구나” 서초구 교사 아버지의 자필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