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당한 자리 찾아줘야” 현대사 바로보기 화두 던진 분
유영익 선생은 이승만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생은 이승만을 본격 연구하기 전에 ‘갑오경장 연구’ ‘동학농민봉기와 갑오경장’ ‘한국 근현대사론’ 등 학계에 오래 남을 한국 근현대사 저서를 여러 권 출간했다. 이 저서들에서 선생은 동학농민봉기가 혁명 운동이 아니라 보수적 개혁 운동이라는 사실을 처음 설파했고, 일제 식민 통치기에 한국 사회의 근대화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1950년대의 한국은 암울한 사회가 아니라 현대 한국의 기초를 닦기 위한 준비기였다며 긍정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생의 학설은 당시 국내외 학계를 휩쓸던 좌파 사관과 수정주의 사관 및 국수주의 사관을 자유 우파 역사가의 관점에서 정면 비판한 것이다.
선생은 1997년 연세대에 현대한국학연구소(현 이승만연구원의 모태)를 세웠다. 여기서 선생은 이승만 학술 회의와 컬로퀴엄을 개최하고, 이승만 문서를 정리하여 자료집을 펴내고, 이승만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학술서들을 출판했다. 이는 한국 근현대 사학계에 이승만 재평가 및 대한민국사 바로보기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선생은 현대한국학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한국 자유 우파의 학문적 생태계 조성에 큰 공을 세웠다. 이전에 우파 성향 학자들은 여러 학문 분과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현대한국학연구소가 활동을 펼치면서 우파 학자들이 결집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논쟁점들을 우파 시각에서 해석하고 연구할 인적 기반이 구축되었다. 선생은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꿈이었다면, 부당하게 매도당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당한 자리매김을 해드리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공언했다.
교육자로서 선생은 철저한 분이었다. 선생은 대학원생 제자가 기말 리포트를 내면 서너 차례 붉은 사인펜으로 용어와 문장을 꼼꼼히 검토하여 되돌려주었다. 아울러 면담 때마다 선생은 제자에게 근현대사 전반에 대한 기본 지식 확충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선생은 “학문은 힘든 일이기 때문에 준비된 사람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생은 준비가 부족한 학생이 지도교수를 맡아 달라고 찾아오면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로 인해 선생은 학생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학문을 떠나 취업 전선에 뛰어든 이들에게는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선생은 “한국에는 학자는 많지만 학설은 드물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선생은 독창적 학설을 세우는 것이 학자의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선생은 50대 후반에 이승만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새로운 연구 분야 개척에 나섰다. 이는 당신이 그토록 강조한 독창적인 학설의 창안 문제를 실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생은 학자로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찬송가를 애창하는 기독교인으로서 한국을 미국과 같은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의 학문은 개방성이 강했다. 선생은 좌파적 시각, 일국적 시각, 국수주의적 시각을 모두 경계하고 국제적 견지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할 것을 강조했다. 선생은 한국 내 동년배 학자들과 달리 미국과 일본의 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그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았다.
선생을 친미 일변도 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선생은 친미 성향을 가졌지만 동시에 민족주의적 성향의 학자였다. 이는 선생이 현대 한국의 발전과 번영의 기초를 닦는 데 필요한 초석을 놓기 위한 애국적인 목적 의식을 갖고 학문에 종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1989년 한림대 석사반 입학 후부터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1994년부터 이화장 우남사료연구소와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이승만연구원에서 25년간 선생의 이승만 사업을 도왔다. 2020년 연세대를 떠나 지금은 이승만과 대한민국사, 안중근 가문 연구에 힘쓰고 있다. 선생은 당신의 이승만 사업을 총평하면서 “오 박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황감한 말씀을 남겨 주셨다. 선생과 나눈 추억을 회고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선생의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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