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또 나타났다… ‘국제 조폭’ 된 바그너 그룹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8. 1.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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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선거 개입
대통령 임기 연장, 또 독재 지원
러시아 용병 단체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 분쟁 지역 등에서 세력을 확대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 30일 치러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중아공)의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 당시 치안 유지 임무를 맡았고, 이를 위해 파견 병력도 늘렸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중아공 수도 방기에서 바그너그룹 용병이 헌법 개정 찬성 집회를 호위하는 장면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6월 러시아에서 무장 반란을 일으킨 후 와해설이 돈 민간 용병 단체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오히려 세력을 확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숙청설까지 제기된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최근 대외 활동을 재개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바그너그룹이 러시아군에 흡수돼 완전히 해체되리라는 일부 전망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용병을 파견해 영향력 확대 기회로 삼아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바그너그룹 같은 민간 용병 기업(PMC)이 여전히 이용 가치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1일(현지 시각) 아프리카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은 최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중아공)에 용병 수백 명을 새로 파견했다. 이들은 지난 30일 중아공에서 치러진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의 치안 유지를 맡았다고 알려졌다. 앞서 지난 28일 프리고진은 카메룬 매체 ‘아프리카미디어’에 “중아공에 새로 도착한 바그너그룹 병력은 기존 병력의 교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현재까지 기존 병력 철수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지 매체들은 “야당과 반정부 세력의 투표 방해를 막으려 병력을 사전에 증강한 것”이라며 “(중아공 정권을 옹호해 영향력을 키우려는)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새 헌법은 포스탱아르캉주 투아데라 대통령의 3연임을 허용하고,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사실상 투아데라 대통령의 장기 독재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바그너그룹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바그너그룹은 이미 2018년부터 중아공에 진출, 대통령궁 호위와 반정부 세력 소탕 작전을 펼치며 정권 옹위를 해왔다. 그 대가로 다이아몬드와 금 채굴권을 가져갔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은 “여기서 나온 막대한 자금 중 상당 부분이 푸틴의 ‘사금고’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정인성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바그너그룹은 말리와 수단 정권과도 밀착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나라 모두 2021년 쿠데타로 군부 정권이 들어섰다. 서방이 평화적으로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라고 요구하자 군부는 “반정부·테러 세력 척결을 통한 체제 안정이 급선무”라며 잇따라 바그너그룹과 계약을 맺었다. 바그너그룹은 그 반대급부로 망간과 우라늄, 금 광산 채굴권을 얻었다. 이에 프랑스는 말리에 주둔하던 자국군을 철수하고 공적 개발 원조를 중단하며 반발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 등 독일 언론은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러시아는 아프리카 내 분쟁 상황을 이용해 왔고, 바그너그룹은 그 ‘도구’”라고 분석했다.

서방 언론들은 이러한 바그너그룹의 입지 때문에, 사실상 실패한 무장 반란 사태 이후에도 바그너그룹의 해외 활동은 여전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반란에 가담한 바그너그룹 장병과 그 수장 프리고진을 푸틴이 지난 6월 말 사면하면서 이런 관측은 더욱 힘을 얻었다. 프리고진 역시 한 달여간의 근신 기간을 깨고 대외 활동을 개시했다. 지난달 27일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이 열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등장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사절단과 만나는가 하면, 28일에는 아프리카 매체와 직접 인터뷰도 했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철군 후 러시아와 밀착해 우크라이나와 대립 중인 벨라루스에 새로 진출하는 등 오히려 해외에서의 존재감을 더 키우고 있다. 바그너 용병 수백 명이 벨라루스군 훈련을 명분으로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에 파견돼 양국 간 긴장을 끌어올렸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최근 “바그너그룹이 폴란드로 진격을 원하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바그너그룹이 난민 사이에 섞여 폴란드로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니제르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 세력의 지지자들이 30일(현지시간) 수도 니아메에서 "프랑스를 타도하라, 푸틴 만세"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니제르 군부는 지난 26일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억류하고 쿠데타를 선언했다. /AP 연합뉴스

프리고진은 최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니제르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는 지난 27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니제르의 현 상황은 (프랑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라며 수도 니아메의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바그너그룹을 투입할 것을 제안했다. AFP통신은 “프리고진의 발언 이후 30일 니아메에서 시민 수천 명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러시아·푸틴 만세’를 외치는 친쿠데타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글로벌 경찰의 역할을 내려놓자, 그 틈을 자국의 이익을 탐하는 국가들이 비집고 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내전과 분쟁이 늘어나고 국제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외세가 개입한 분쟁의 비율은 1991년 4%에서 2021년 48%로 크게 늘었다.

이 같은 국가적 분쟁의 급증은 바그너그룹처럼 국가(러시아)의 외교 전략 무기로 활용되는 PMC에 절호의 기회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 따르면, 국가적 분쟁을 겪는 나라는 7월 말 기준 47국이고 이 가운데 24국에 바그너그룹 용병이 파견돼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PMC 전문가를 인용해 “바그너그룹은 (기존 국제 질서에 균열을 내는) 러시아의 ‘그림자 군대’”라며 “이들은 국제법이 실종된 곳에서 ‘폭력의 경제’를 창출하고, 러시아에 큰 이득을 안겨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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