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층 도면 보며 철근 시공…아파트도 제대로 못짓는 건설강국
31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아파트 철근 누락 조사 결과를 접한 입주민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들이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겪었지만, 근본적으로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일각에서도 “해외에서 대형 플랜트와 초고층 빌딩을 지으며 ‘건설 강국’으로 불리지만, 정작 아파트 하나 제대로 못 짓는 민낯이 드러났다”는 반응도 나온다.
철근(전단 보강근)이 빠진 LH 아파트 지하 주차장 15곳은 모두 ‘무량판 구조’로 설계됐다. 무게를 버티는 보 없이 기둥으로만 천장을 받치는 무량판 구조는 경제성과 공간 효율성이 뛰어나 여러 건축물에 폭넓게 쓰이지만, 보가 빠지는 만큼 설계와 시공을 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날 국토부 조사 결과를 보면 기초적인 구조 계산부터 이를 설계도면에 옮기고, 설계도면에 맞춰 시공하는 전 영역에서 부주의하고 안일한 작업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철근 누락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조 계산 안 해 154개 다 빼먹기도
철근을 빼먹은 15개 단지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개 단지가 구조 계산을 아예 누락하거나, 계산을 잘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 계산은 건물에 작용할 수 있는 각종 하중을 계산해 각 부위가 하중을 버틸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계산 작업을 뜻한다. 구조물에 들어가는 각종 부재의 치수를 결정하고, 철근콘크리트 구조에서는 철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설계도면을 그리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양주회천 A15 단지의 경우 지하주차장 무량판 기둥에 하중을 버티기 위한 전단보강근(보강 철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계산을 아예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154개 무량판 기둥 중 154개 전부에 보강 철근이 빠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파주운정 A34 단지와 수서역세권 A3 단지, 파주운정3 A23단지 역시 설계 계획을 변경하는 과정에 해당 구간의 구조 계산을 누락하는 바람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양산사송 A8 단지는 구조 계산 과정에서 보강 철근을 넣어야 하는 범위를 잘못 적용해 기둥 241개 중 72개에 철근이 누락됐다. 인천가정2 A1 단지는 철근의 크기를 잘못 적용해 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설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원인에 대해 LH 관계자는 “구조 계산 수식을 시스템에 잘못 입력하거나, 건축 설계가 바뀌었지만, 이를 구조 계산에 정확히 반영하지 못해 누락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구조 설계 오류의 원인으로 LH 공공주택 사업에 참여한 설계사들의 역량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은 “LH가 설계를 발주하면 건축사가 그중 일부를 구조설계사들에게 주고 다시 쪼개서 하청에 발주하는 식으로 설계 작업이 진행된다”며 “그 과정에서 실력이 부족한 기술자들이 설계에 참여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 계산을 제대로 해놓고 현장에 배포하는 도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보강 철근을 실수로 누락하는 황당한 일도 일어났다. 상세도 도면에 ‘이 기둥은 보강 철근이 필요하다’라는 표시를 넣는데 이를 빠뜨렸다는 것이다. 충남도청 이전 신도시 RH11 단지와 수서역세권 A3 단지가 이에 해당한다. 오산세교2 A6 단지는 보강 철근에 대한 상세도면 자체가 없었다. 인천 검단 지하 주차장 역시 보강철근 표시인 ‘V’ 자가 도면에서 빠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층 도면 보고 엉터리 시공
제대로 구조 계산을 해 설계에 반영했지만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가 낮은 현장의 시공 과정에서 보강 철근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전체 무량판 기둥 123개 가운데 82%에 달하는 101개에 철근이 빠진 음성금석 A2 단지와 302개 기둥 중 126개가 누락된 남양주별내 A25 단지의 경우 현장 근로자들이 다른 층 도면을 보고 철근을 배근해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나머지 3개 단지도 시공 과정에서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의도적인 것인지 실수인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철근 배근을 하는 작업자들 중 무량판 구조 시공 경험이 적고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데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도 많다 보니 도면대로 시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설계나 시공 과정에서 철근을 누락한 가장 큰 원인에 대해 LH는 ‘소통 부재’로 보고 있다. 이한준 LH 사장은 “건축설계는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는데 소통이 안 돼 미반영한 상황이 종종 있었다”며 “더 근본적으로는 도입이 얼마 안 된 무량판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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