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도 칼럼] 교사에게 희망을
교권 붕괴·공동체 균열…교육이 서야 나라 산다
교단에서 평생을 보낸 한 퇴직 교원은 “말문이 막히더라”고 했다. 30년을 초등학생과 지내는 한 교사는 “일손이 안 잡힌다”고 했다. 4년차 MZ세대 영어 교사는 “바로 나의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지난 18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접한 반응이다. 일부러 교직과 관련한 사람을 만나려고 한 것은 아니나 주말이나 휴일 이런저런 행사에 그런 이가 있었다. 한 집 건너 학생 없는 집이 없고, 한 집 건너 학교와 인연 닿는 집이 있는 게 우리 일상이다.
이처럼 2년차 초등 교사의 비보는 충격적이다. “교육 현장인 직장에서 생을 마쳤다는 것은 그만큼 알리고자 했던 뭔가가 있었다는 이야기 아니겠느냐”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 목소리가 절절하다. 무엇이 이 젊은 교사를 돌아오지 못할 길로 내몰았는지 밝혀야 한다. 경찰과 교육당국은 조사에서 한 점 의혹도 남겨선 안 되며,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하겠다.
교사 반응은 깊고 넓고 구체적이다. 압축하면 교권 붕괴 참상과 교권 회복 방안이다. 서이초등학교를 찾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애도 메시지를 붙이던 많은 교사가 거리로 나섰다. 지난 21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트럭 시위가 있었다. 트럭에 실린 전광판에 “교사가 죽어나가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겠나”는 글귀가 선명했다. 그 다음날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추도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엔 ‘교사 생존권 보장’이란 손팻말이 등장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함께하면 바꿀 수 있다”며 5000명이 모였다. 진상 규명과 교사의 생존권 보호 및 교육권 보호를 촉구했다. 이 집회는 지난 29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내걸고 다시 열렸다. 이번엔 3만 명이 동참했다.
트럭 시위와 두 차례 집회는 자발적인 교사 참여로 이뤄졌다. 교권 붕괴가 한계치를 넘었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경위를 두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갑질이 부각되면서 “남 일 같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학부모에게 아동학대 신고나 고소를 당할 때 ‘기분 상해죄’라며 자조하고,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를 ‘명퇴 도우미’라 돌려 말하는 게 현실이다. 모두가 교권 붕괴와 관련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최근 6년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교사가 100명이다. 특히 지난 2006년 일본 도쿄에서 20대 여성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후 유명세를 탄 ‘괴물 학부모’까지 소환됐다. 숨진 교사는 과중한 업무와 학부모 갑질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처럼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가 괴물 학부모(monster parents)다.
교육당국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 재정비, 중대 교권침해 사항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포함한 ‘교권보호 종합대책’을 이달 중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또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 학교폭력예방법 등 교육 현장에서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관련 법 개정 작업에 관심이 쏠린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고의나 중대과실이 없는 경우 아동확대 면책권 부여가 초점이다. 아동학대처벌법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도 교원 보호 장치와 교원의 민·형사상 면책 조항 등을 담았다.
그렇다고 학교나 교육청, 정부에 대한 교사의 부정적 분위기가 가라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서이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에 10차례 학부모 민원과 관련한 업무 상담을 요청했다. 2년차 교사가 1학년 담임을 맡는 건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교사의 인권이나 교육권을 보호할 제도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교권 침해를 당한 교사를 도울 대책도 마땅찮아 오히려 학교 관리자 등에게서 “참아라”는 말만 듣는다. 게다가 정규직이냐 기간제냐에 따라 피부로 접하는 강도가 천양지차라는 사실도 불거졌다. 일선 학교에 대응을 미루는 교육청이나 뒤늦게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는 정부나 이번엔 다르다는 믿음을 교사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조사 결과 발표와 교권보호 종합대책에 이어 교권 관련 입법 등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 과정에서 함께 곱씹어야 할 문제는 우리 사회의 보루라 할 교육 공동체에 생긴 균열이다. 단군 이래 가장 영화로운 세상이라는 대한민국을 이룬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교육열이다. 세상이 미쳐 날뛰더라도 미래 새싹을 지키고 키워낼 것이라고 믿던 공교육 울타리다. 서이초등학교 사건은 여기에 균열이 있고, 그 틈으로 온갖 위협이 넘쳐흐른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내 자식이 귀하다면 남 자식도 귀하고, 그 ‘금쪽이’를 더 반짝이게 만드는 사람이 교사다. 교육이 제대로 서야 대한민국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그 역할을 하겠다는 교사에게 희망을 주자.
정상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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