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그건 안 되는 ‘법’

기자 2023. 8.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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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17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남았던 한 건의 재판 선고가 있는 날. 15년여 동안 경찰서와 검찰, 법원에 끌려가거나 불려가는 게 일상이었나 보다. 어떤 날은 재판 있는 날을 까먹기도 했다. 으악, 하며 뛰쳐나가 택시, 택시를 부르던 때가 많았다. 정신적으로 피로하니 자꾸 외면하고 싶었던 날들. 그러나 계속해서 참여해야 할 현장은 끊이지 않았고, 적당히 참여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내겐 매번 추가 소환장이 쌓여갔다.

송경동 시인

그런 재판의 시절도 거의 저물어 내게도 조용히 세상과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생의 늦가을 같은 날이 오나 했다. 가능하다면 다가오는 생의 겨울까지 푹 동면하고 싶은 피로감도 없지 않았다. 물론 동면하며 한번쯤은 다시 다가올 생의 마지막 봄을 어떻게 보낼지 꿈꿔 보는 달콤한 상상이 있기도 했다. 8월17일만 지나면.

그런데 망했다. 지난 7월22일 늦은 밤 집에 들어가니 낯익은 봉투의 우편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엇, 이건 경찰 건데!’ 오후에 관련 건으로 서초경찰서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는 문화예술계 후배의 전화를 받고 ‘열심히 살아 국가의 부름을 받은 거니 기쁜 일이네. 축하해.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했는데 후회가 되었다. 나도 기쁘지 않으니 말이다. 이건 또 몇년을 끌까. 그 시간 동안 또 몇건의 경찰 소환장과 검찰 공소장이 추가될까.

그러곤 하나의 방에 초대받았다. ‘7월9일 대법원 앞 비정규직문화제 소환자 방’이었다. 벌써 10여명이 불려와 있었다. 지금까지 초대된 사람은 29명이 되었다. 서초경찰서에서는 검찰 지휘를 받아 그날 문화제 참석자들 중 40여명에게 소환장을 보냈다고 하니 방 식구들이 더 늘 터이다. 당일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해주었던 이들까지 소환장을 받아 황당해하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현재 나를 포함해 다섯명이 확인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이 은밀하게 블랙리스트 공작을 받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집단 소환장을 받게 된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래서 자꾸 사람들이 검찰들의 공화국이라고 하나 보다.

그런데 정말 소환장을 받아야 하는 건 누구일까. 이 나라 검찰과 법원이다. 현재 소환장을 받은 한국지엠, 현대차, 아시아나케이오, 아사히글라스, 철도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등 비정규직 악법의 피해 당사자들이다. 그들은 10여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재판 지연 등으로 또 다른 고통을 당해 온 이들이다. 이들이 대법원 앞 문화제를 진행하게 된 까닭도 제발 서랍에 처박아 둔 판결 좀 빨리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짜 사장이 책임지게 노조법 2·3조 개정, 일하다 죽지 않게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공공요금 국가책임 강화, 사람장사 파견법 폐지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

그런데 1100만명의 국민이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는 나라에서 절대 다수 국민의 평화와 평등을 위해 근본적인 법 개정을 요구하면 불법인가?

처음도 아니었다. 지난 3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에 연대한 문화예술인들은 약 20회에 걸쳐 대법원 앞에서 문화제를 열어 왔다. 문화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5조에 의해 신고의무가 면제되며 그 장소가 법원 경계 100m 이내에 있더라도 집시법 위반 대상이 아니다. 2021년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 백혈병 사망자 추모 문화제에 대해 대법원 역시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집회를 해산할 수 없다.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만 해산할 수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지난 6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이 각종 민주주의 관련 집회에 대한 엄정 대응을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 지시 후 집회 해산과 검거 훈련이 부활했고, 물대포 사용이 다시 거론되고, 캡사이신 분사기도 재등장했다. 경찰은 탄압의 빌미를 위해 소음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주요 도로 집회 제한 강화, 출퇴근 시간 집회와 야간 집회를 금지하는 등 집시법 개악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시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의 자유,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 등을 짓밟고 어떤 나라를 세우려는 것일까? 1100만 비정규직들의 인권과 요구를 탄압하며 어떤 영화를 누리려는 것일까?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제2의 김기춘으로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을 장악하고, 과거 블랙리스트 실행의 기획자들이었던 이동관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유인촌을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특별보좌관으로 부활시키면 또 다른 괴물들의 시대가 가능하다고 믿는 걸까? 그런데 왜 이런 괴물들의 시대가 다시 가능하게 된 거지? 이런 시대를 자꾸 연장시키고 복제시켜나가는 공범들은 누구지? 사소한 물음들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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