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국가의 보험사기

기자 2023. 8.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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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플랫폼 종사자들이 고용 불안정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난해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지난 7월21일 인도에서 열린 ‘G20 고용노동장관회의’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세계에 자랑한 내용이다. 이 장관의 연설이 있은 지 3일 뒤 웹툰작가, 대리운전, 배달라이더 등으로 구성된 ‘플랫폼노동자 희망찾기’는 규탄성명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고용, 산재보험이 ‘국가 주도의 보험사기’로 전락할 판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관 말대로 고용보험 납부자가 늘어나긴 했다. 과거 특수고용노동자로불리던 보험설계사, 택배, 퀵서비스 기사 등 ‘노무제공자’의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2022년 4월 기준으로 100만명을 넘겼다. 배달노동자들도 2022년 1월1일부터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기 시작했는데 배달업체 사장들은 이를 핑계로 각종 수수료를 높이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내야 할 보험료보다 많은 금액을 부담했다.

그런데 구직급여를 받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여러 업체에서 일하면서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플랫폼노동자에게 장기 실업을 전제한 현행 고용보험은 의미가 없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소득이 줄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그러나 4~5개월간 소득이 거의 없어야 하고 구직급여를 받더라도 하루 2만6600원이 하한액이라 이 돈을 받고 마음 편히 취업준비를 할 사람은 없다. 산재보험 역시 내는 보험료는 높이고 받는 휴업급여는 최저임금 미만으로 삭감해버렸다. 라이더유니온의 항의에 노동부는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당장의 대책은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장관은 전 세계 장관들과 자국 노동자를 기망한 셈이다.

배달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고용·산재보험 의무가입을 없애달라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온다. 그러나 사회보험을 선택에 맡겨버리면 제도에 대한 지식과 보험료를 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국민만이 실업, 사고, 질병, 장애, 은퇴 후의 삶을 보호받는다. 사회보험을 지원하는 두루누리 홈페이지에는 사회보험을 의무화하는 이유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빈곤층으로 추락할 위험이 크고, 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으므로 사회정의를 위한 공동체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공동체 합의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강한 믿음과 연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 사회보험에 대한 신뢰와 연대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시럽급여’ 논란은 집권 여당과 정부가 각자도생이라는 지옥의 문을 달콤한 말로 열어젖힌 최악의 행위였다. 산업구조 변화와 임시직 노동자의 반복적 실업에 기존 고용보험이 대응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국가가 개별 국민 책임으로 돌린 셈이다. 이제 국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사회보험은커녕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조차 상실한 채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길을 걸어가는데 목에 깁스를 한 라이더가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아마 배달 건마다 보험료를 떼 가면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보험료는 주지 않는 사회보험을 원망하며, 치료비·생계비를 위해 하루 12시간, 주 6일을 달릴 것이다. 이 장관이 이 노동자 앞에서도 긱·플랫폼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했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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