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교제폭력 80%가 강력 범죄인데… 피해자, 보호법 없이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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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에 찔려 생명을 잃을 뻔했습니다. 등과 허리 일부는 아직도 감각이 없어요."
한편 여성가족부는 스토킹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임대주택 등 주거 지원을 교제폭력 피해자에게도 확대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대상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지금이라도 국회와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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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만2394명 보호 못받고 고통
“가정폭력-스토킹 피해자 지원처럼
긴급 보호-일상 회복 지원책 절실”
올 4월 12일 20대 여성 정소희(가명) 씨의 직장 앞에 한 남성이 찾아왔다. 얼마 전 결별한 전 남자친구 김모 씨(27)였다. 그는 퇴근하는 정 씨에게 “헤어질 수 없다”며 계속 사귀자고 요구했지만 정 씨는 거절했다. 퇴근길을 따라 집까지 쫓아온 김 씨는 “물 한 잔만 달라”고 했고 반복되는 요구에 정 씨는 마지못해 들어줬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김 씨는 갑자기 돌변해 “죽여 주겠다”며 정 씨 목을 졸랐다. 또 방에 있던 흉기로 정 씨 몸을 여러 차례 찔렀다. 정 씨는 맨발로 집을 뛰쳐나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교제폭력
지난달 2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정 씨는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또 올까 봐 너무 무섭다”고 했다.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씨는 불구속 상태로 서울동부지법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정 씨 역시 결별 직후 김 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차단했지만, 직장과 집 주소를 알고 있던 김 씨가 정 씨에게 접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폭력 혐의로 총 1만2841명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폭행·상해가 9068명(70.6%)으로 가장 많았고 감금·협박도 9%(1154명)나 됐다.
하지만 교제폭력은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지 않다 보니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연락 금지나 접근 금지 등 긴급 조치를 취하려면 사실혼 관계이거나 부부, 스토킹 피해자여야 한다. 또 지난달 11일과 18일 스토킹 피해자가 원치 않아도 가해자를 처벌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안과 스토킹 피해자들을 적극 보호하는 ‘스토킹방지법’이 각각 시행됐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교제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1만2394명에 달했다. 올 5월에도 교제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약 1시간 후 동거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 “지원하기엔 법률적 근거 없어”
국회에는 교제 중이거나 교제했던 상대가 저지른 폭력을 가정폭력으로 규정하고, 접근 금지 등 피해자 보호 제도를 적용하는 내용의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대상을 교제폭력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후속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스토킹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임대주택 등 주거 지원을 교제폭력 피해자에게도 확대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대상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가정폭력이나 스토킹범죄와 달리 의료 지원 등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의료비 지원 논의는 법률상 지원 근거가 없어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지금이라도 국회와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스토킹 사건을 많이 다뤄 온 장윤미 변호사(전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교제폭력은 내밀한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연인관계에서 이뤄져 일반 스토킹보다 더 위험하다”며 “맞춤형 지원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고 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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