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용 현미경 첫 개발하고도… 진입규제 탓 매출 ‘0원’

김소민 기자 2023. 8.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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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규제에 무너지는 중기 생태계]
〈1〉 싹부터 잘리는 신산업
‘체내용’ 조영제, 체외 사용 이유로
식약처 허가받고도 사업화 못해

대전의 A스타트업은 2016년 시작한 ‘암 수술용 초소형 현미경’ 사업을 접을 위기에 놓였다. 해당 제품은 환자 수술 도중 떼어낸 조직의 암 여부를 현장에서 빠르게 진단하기 위해 개발됐다.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제품으로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아기 유니콘’ 기업에 선정돼 유망 기업으로 인정까지 받았다.

문제는 이후에도 매출이 ‘0원’이라는 것.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의료 서비스 가격에 해당하는 수가 산정이 아직도 안 된 영향이 크다. 암 조직 염색에 쓰이는 조영제가 ‘체내용’으로만 허가됐다는 이유였다. A사는 2021년 심평원에 수가 산정 문의를 했지만,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답변이 계속 안 왔다. A사가 알아보니, 사용하는 조영제가 ‘체내용으로만 허가됐다’는 이유로 답변이 나오지 않았던 것. A사가 체외용을 제조할 수는 없어서 체외용으로 다시 허가를 받아줄 업체를 찾느라 2년을 허송세월해야 했다.

정부가 규제 혁신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보고 기업 생태계를 망치는 ‘킬러 규제’ 혁신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경제 근간을 이루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다. 31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기중앙회가 올해 5월 30일부터 6월 23일까지 중소·벤처기업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규제를 접수한 결과 244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모가 작고 새로운 분야 사업을 하는 경우 어느 부처가 담당인지조차 몰라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며 “한국에만 있는 이른바 ‘갈라파고스 규제’를 찾아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기 유니콘’ 뽑혀도 규제에 발목… ‘킬러 규제’ 신고 3주새 244건

반려동물 이동식 화장 스타트업
정부 승인에도 지자체 허가 막혀
혁신 위한 ‘특례’도 요건 까다로워
자본 제한된 中企-벤처 더 큰 타격

이동식 반려동물 화장 서비스를 하는 B스타트업. 대형버스 등을 활용한 이동식 반려동물 장례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올 들어 지방자치단체 7곳과 협의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자체들이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 장례시설은 고정식 시설만 규정돼 있다”며 이동식 화장 서비스 도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동식 반려동물 화장 서비스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 사업으로 승인돼 이미 규제를 면제받은 상태다. 그런데도 현장에선 지자체 허가에서 가로막혀 장소 협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 B스타트업 관계자는 “일본에선 이동식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가 활성화돼 이동식 장례 비중이 90%에 이르는데 국내는 아직 허가조차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처럼 기존에 없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이는 신산업 분야의 경우 사업화 단계부터 ‘첩첩규제’를 넘어야 한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사업화가 가능한 아이디어도 국내에서는 첫걸음도 떼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글로벌 100대 유니콘기업과 국내 신산업 규제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중 17개는 한국에서는 규제로 사업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 공유숙박, 승차공유, 원격의료, 드론, 로보택시, 핀테크, 게임 등이 해당된다.

미국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템푸스(Tempus)’는 환자의 의료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환자 체질에 최적화된 치료법과 의약품을 처방하도록 돕는다. 국내에선 의료법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등에 막혀 사업화가 불가능하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의료 분야 신기술의 경우 의약품은 약사법, 의료기기는 의료기기법, 진단제품은 체외진단의료기기법이 규제한다”며 “법 체계가 복잡하고 각기 다른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해 인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은 기술을 보유하고도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 혁신 위한 특례가 오히려 규제로

지난달 24일 오후 대전 중구의 한 의료기기 스타트업 대표가 정부에 제출했던 각종 신청 서류를 펼쳐 보이고 있다. 대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런 규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만든 특례 역시 ‘또 다른 규제’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의료기술 평가를 2년간 유예하고 현장에서 신기술을 활용해 보도록 하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가 대표적이다. 의료 현장에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 새 의료기술의 안전성, 유효성을 평가받는 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2015년 도입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임상시험 자료가 있어야 하고, 대상 질환이나 증상 등 사용 목적이 특정된 경우여야 하는 등 특례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부터 까다롭다. 임상시험을 하기 어려운 신생 스타트업이나, 여러 분야를 복합한 기술일 경우 선정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것.

암수술용 초소형 현미경 사업을 하는 A스타트업 역시 유예 대상이 되려면 병명을 특정해야 한다는 요건에 걸려 신청을 못 했다. 여러 암을 진단하는 진단기기이다 보니 요건을 채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의료기기 사업은 제품만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인허가를 받아야 해서 요건이 까다롭다”며 “이대로라면 국내 의료사업은 해외 제품을 내수화하는 것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지난달 14일 정부의 가장 시급한 ‘킬러 규제 톱 15’ 과제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존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또 다른 규제가 되며 여전히 킬러 규제로 남은 것이다.

● 의약품 샘플은 ‘소분 금지’…탁상 규제


이런 규제는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치명적이다. 제한된 자본으로 사업을 하는 만큼 빠르게 수익화를 못 하면 기업이 존폐 위기에 처하지만, 규제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기 때문이다. 사업화 이후에도 판로 개척, 마케팅에 어려움이 많다.

대표적으로 의약품 샘플을 제공할 때 소분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규제가 있다. 현행 약사법에 따라 제약회사는 병원으로부터 의약품 견본품(샘플) 제공을 요청받으면 최소 단위 포장의 제품을 보내야 한다. 최소 포장 단위가 커도 소분(나눠 담기)을 하면 안 되고 그대로 보내줘야 한다. 의약품이 개봉과 동시에 약효가 떨어지거나 오염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먹을 게 아니고 형태만 보려고 하는 건데도 아예 소분할 수 없다. 비싼 건 한 알에 3000원인 고가 약도 형태만 보고 다 버려야 하는 것. C제약회사 관계자는 “우리같이 작은 회사들은 10번 요청이 오면 한두 번만 주는 정도로 샘플 제공을 아예 줄였다. 새로 영업망을 뚫을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속적인 규제 혁신 노력에도 현장에서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국내 법 체계가 허용되는 항목을 일일이 열거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규제 샌드박스 등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 특례가 운영되고 있지만 특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담당 공무원들의 전향적인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적극 행정에 나서 성과가 나는 공무원에게는 특별 승진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대전=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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