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홍수에 휩쓸린 파블로프의 강아지
비가 무섭게 내렸다. 시골에 계신 아버지에게 비 피해가 없는지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피해가 없음에 괜찮다고 하셨지만, 뉴스를 통해 들리는 주변의 끔찍한 집중호우 피해에 대해 탄식했다. 빗속에 쏟아지는 뉴스 속에는 ‘내’ 탓은 온데간데없고 볼썽사나운 ‘남’ 탓 논쟁과 혼란스러운 ‘그것’ 탓 시비가 이어진다. 사실과 거짓 뉴스가 뒤섞인 채 지독한 뙤약볕 여름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고 있다. 이 또한 기시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기시감의 뿌리는 최근 10여년 동안 시민들이 목격했던 사건들 때문일지 모른다. 어느 해건 재난재해가 없지 않았지만, 분명 막을 수 있었던, 사건 이후 반드시 대처해낼 수 있었던 재난들이 많았다. 결국 ‘사회적 참사’로 불리게 된 인재가 도미노처럼 밀려온 10년의 세월이었다. 이것은 그 자체로도 시민에게 큰 심리적 트라우마였지만, 다른 의미의 트라우마의 연쇄를 초래했다. 참혹한 사건의 피해에 대한 최초의 트라우마, 이후 정부의 대처 방식에 의한 이차적 트라우마, 언론 및 정치권의 설명 방식에 의한 트라우마, 시간이 흘러 생겨난 시민들의 무관심에 의한 트라우마일 것이다.
이 모든 연쇄적 ‘트라우마 도미노’의 결말은 무엇일까. 단순히 학습된 기억처럼 기시감을 느끼고, 또다시 밀려올 트라우마 도미노에 스스로를 대비할지 모른다. 실상 그 대비란 것도 희망보단 절망이, 비판보다는 비난이, 기대보다는 실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트라우마 도미노에 대한 대비 역시 또 다른 트라우마의 결과가 아닐지 모른다. 바로 ‘문화적 트라우마’ 말이다. 문화의 기틀이 되는 도덕적 전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깊은 신뢰가 손상된 상태 말이다. 그렇게 타인의 공감을 요청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나와 내 가족만의 안전이라도, 혹은 안전만을 추구하려는 시민들의 모습에 과연 누가 쉬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 집중호우가 휩쓸어가고 남겨놓은 것은 무엇일까. 소중한 생명이 사그라진 것에 대한 원통함? 이를 막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분통함? 혹은 명명백백 밝혀지지 않는 진실에 대한 모멸감과 이 모든 것에 대한 절망감이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문화적 트라우마가 쌓여가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있으면 이반 파블로프의 또 다른 강아지 실험이 떠오른다. 천재적 생리학자로 알려진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형성’으로 알려진 강아지 벨 실험이 있다. 그것은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기 전 벨을 울려 조건형성을 시킨 후 이후에는 벨 소리만으로 침을 흘리는 등의 생리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실험이 있다. 이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생한 사건을 통해 이루어졌다. 1924년 파블로프 실험실을 덮친 대홍수가 발단이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홍수로 실험용 강아지들이 익사할 뻔했다. 그런데 이후 강아지들의 몸에 형성돼 있던 조건반사가 모두 소실되어 버렸다. 나아가 성격조차 정반대로 변해 있었다. 얌전하던 강아지가 난폭해지거나, 반대로 난폭했던 강아지가 온순해지기도 했다. 파블로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심적 트라우마 체험’으로 이전의 조건형성이 소실되고 나아가 정반대의 상태로 전환될 수 있음을 목격하게 됐다.
나는 파블로프가 목격했던 경험이 지금 한국 사회 곳곳에서 10년간 연쇄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특히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참사를 목격하면서 더욱 그러했다. 참담한 심정이지만, 사회 곳곳에 ‘홍수에 휩쓸린 파블로프의 강아지’처럼 극한의 심적 트라우마에 내몰렸던 사람들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시민들 역시 연쇄적 트라우마 도미노를 경험하고 목격해 왔다. 만일 파블로프의 논리대로라면, 이것은 오랜 기간 학습해온 시민들의 도덕(에 대한 조건반사)이 일순간 허물어지고, 정반대의 비도덕적 사람들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내가 문화적 트라우마를 우려하는 이유는 도덕의 붕괴와 불신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탈도덕의 사회이다. 홍수에 휩쓸려간 파블로프의 강아지처럼, 도덕이 완전히 초기화된 사회 말이다. 그렇게 약육강식의 사회가 도래하고 강자들의 포효가 이미 사회의 새로운 도덕을 선포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집중호우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초기화된 도덕 위에 어떠한 사회적 신념을 쌓아 올릴지가 아닐는지. 집중호우에 대한 대책은 그 주춧돌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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