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옛 장군의 이름을 품은 최고의 왕버들
몸과 마음을 충전해야 할 삼복더위 한복판, 큰 나무 그늘에서 개울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시절이다. 물은 나무의 생존에 필수 요소이지만, 물 가까이에서 자라는 건 나무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다. 버드나무 종류가 개울가에서 자라는 건 특별한 경우다.
버드나무 종류 가운데 우리나라의 토종 나무로 왕버들이 있다. 능수버들과 달리 나뭇가지가 늘어지지 않고, 넓게 펼치면서 높이 치솟아오르는 생김새가 근사해 예로부터 개울가의 정자나무로 심어 키웠다. 하지만 물가에서 자라는 탓에 줄기가 쉽게 썩을 수밖에 없어 왕버들의 수명은 짧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왕버들은 450년 가까이 살아온 ‘광주 충효동 왕버들군(群·사진)’이다. 마을 비보림(裨補林)을 조성하던 오래전에 소나무 한 그루, 매실나무 한 그루, 왕버들 다섯 그루를 심어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고 불렀다고 전하는데, 그 가운데 다른 나무들은 세월의 풍진을 이겨내지 못해 사라졌다.
왕버들 세 그루의 높이는 8~13m, 가슴높이줄기둘레는 7~8m 정도 된다. 각각의 나무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여느 왕버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한데, 세 그루가 모여 숲을 이뤄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이 됐다. 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보호하다가 2012년에 천연기념물로 승격 지정했다.
‘광주 충효동 왕버들군’은 규모도 크지만, 그 생김생김이 놀랍다. 특히 땅에서 솟아오르면서 비틀리고 꼬인 나무줄기는 똬리를 튼 용이 하늘로 승천하려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그 줄기 껍질에서 느껴지는 꿈틀거림은 살아 있는 짐승의 근육을 보는 듯 신비롭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 선조인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이름을 붙여 ‘김덕령 나무’라고 부른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함께 의병장으로 활동한 김덕령이 마침 이 나무를 심어 마을 비보림을 조성하던 때에 태어났음을 기념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뜻이다. 훌륭한 선조를 아름다운 나무와 함께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풍경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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