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3주년 사설] 신성장동력 점화와 정치 복원으로 재도약하자
경제 침체·안보 위협 ‘다층복합위기’
與野 직무 유기, 진흙탕 무한 정쟁
규제·노동 개혁해야 지속성장 가능
국력 결집 ‘리셋’으로 경제안보강국
“위기 속에서 위험을 경계하되 기회가 있음을 명심하라.”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국가 위기에서 이 같은 희망의 메시지로 설득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다층 복합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의 리더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먹구름에 휩싸여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1.5%에서 1.4%로 낮췄다. 세계 10위였던 한국의 경제 규모는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13위로 후퇴했다. 수출이 9개월 넘게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7월 20일까지 연간 누적 무역수지 적자액은 278억 달러에 이르렀다. 전체 취업자는 늘었으나 청년층 취업자는 크게 줄었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국가 채무를 400조 원 급증시킨 가운데 올해 상반기 세수는 지난해보다 40조 원 가까이 감소했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는데도 여야 정치권은 경제 살리기 입법을 뒷전으로 미룬 채 진흙탕 정쟁만 벌이고 있다. 핵·미사일을 고도화한 북한은 잇단 도발로 우리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전(前) 정부의 부정적 유산과 글로벌 요인, 정치 실종 등이 겹쳐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신냉전·블록화의 와중에 공급망이 재편되고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현재 한국 경제 위기의 핵심은 저성장 장기화다. 2000년대 초반 5% 수준이었던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최근 2% 선으로 떨어졌고 올해 실제 경제성장률은 1% 중반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대로 가면 수년 내 ‘제로 성장’에 접어들 우려가 있다. 우리는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는 “경제의 지속 성장은 노동·자본 같은 양적 투입보다 인적 자본, 기술력 같은 질적 변화에 달려 있다”며 한국의 성장 전략 재편을 주문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터널에서 벗어나려면 기존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신(新)성장 동력’을 점화해야 한다. 반도체·자동차 산업 등의 경쟁력을 되살리는 한편 2차전지·방산·원전·바이오·인공지능(AI) 등 미래 신성장 동력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마침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2차전지, 차세대 원자력, AI, 양자, 첨단 로봇, 첨단 바이오, 첨단 모빌리티, 우주항공, 수소, 차세대 통신, 사이버 보안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육성 방안을 제시했다. ‘국가 대항전’으로 전개되는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전략산업에 대한 세제·금융 등의 전방위 지원 계획을 조속히 실천해야 한다. 또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로 ‘제조업 대전환(Big Shift)’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꺼져가는 성장 엔진을 되살리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우선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고 고급 인재들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는 과학기술 초격차로 무장해야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려면 정부가 불굴의 뚝심으로 규제 혁파와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등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역대 정권은 규제를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등으로 비유하면서 개혁에 나섰지만 용두사미에 그쳤다. 윤 정부는 ‘모래주머니’로 불리는 규제의 족쇄들을 과감히 제거해 우리 기업들이 신나게 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규제 혁파를 서둘러야 신산업과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도 키울 수 있다.
생산성을 제고하려면 노동 개혁을 성공시켜야 한다. 유럽의 소국인 네덜란드가 반도체 등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정 대타협인 ‘바세나르 협약’ 등 노동 개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3년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기업 효율성 관련 생산성 순위는 지난해보다 5단계 낮은 41위로 미끄러졌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한국의 최근 10년간(2012~2021년) 임금 근로자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은 연평균 38.8일에 달한다. 미국(8.6일)보다 4배 이상 많고 일본(0.2일)에 비하면 194배나 된다.
법치 확립뿐 아니라 노동시장 유연성과 노사 협력 수준을 높이는 개혁을 추진해야 생산성도 올리고 질 좋은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첨단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개혁도 절실한 과제다. 젊은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떠넘기지 않으려면 연금보험료율 인상 등 연금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사회의 이념·계층·지역·세대·젠더 갈등과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과 국력 결집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 등 헌법 가치를 지키는 사회를 만들고 약자도 함께 잘살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결국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여야의 무한 정쟁과 직무 유기로 정치는 사라졌다. 윤 정부는 민간 주도 시장경제, 자유·공정 가치 실현과 3대 개혁 등을 외쳐왔으나 아직 가시적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여권은 문 정권의 ‘신(新)적폐 청산’에 주력하면서 일부 성과를 거뒀으나 설득·공감의 리더십 부족과 정책·정무적 대응 미숙, 안이한 자세 등으로 ‘리빌딩’에서 한계를 보였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본연의 야당 기능을 내팽개치고 국정 발목 잡기와 ‘방탄’, 포퓰리즘 입법 폭주에 매달려왔다. 재도약의 길로 나아가려면 여야가 대화·타협의 정치를 복원해 경제 살리기와 민생을 위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책임 정치가 가능하려면 깨어 있는 민심이 감시해야 한다.
신성장 동력 점화와 정치 복원으로 ‘경제 부국’의 토대를 세워야 ‘안보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선제 핵 공격’을 법제화한 뒤 수시로 미사일 발사 도발을 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우리가 압도적 군사력을 확보하고 싸울 의지를 키워야 한다. 또 한미 동맹 격상과 한미일 공조로 북핵에 대한 확장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면서 안보가 튼튼한 ‘부강한 매력 국가’ 건설이다.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의 돌파구도 찾을 수 있다.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서 한국 사회 전반을 ‘리셋’해 ‘뉴빌딩’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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