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리 내 읽는 이유 [책방지기의 서가]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요즘 저는 책을 ‘낭독’(朗讀)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책방 단골이 있다면 첫 문장을 보자마자 “어이구 또 시작이네” 하고 혀를 끌끌 찰 수도 있겠네요. 그 정도로 열심히 낭독의 재미를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책방에서 하던 크고 작은 모임을 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온라인 독서 모임을 생각하다 ‘책 한 권을 돌아가며 읽는 형식이 좋더라’는 말을 듣고 북드라망 출판사에서 낭독하기 좋게 편집한 ‘낭송 동의보감’ 시리즈로 모임을 시작했는데, 오! 너무 재밌는 겁니다. 책을 미리 읽어야 하는 부담도, 훌륭한 책에 내 의견을 끼얹을 필요도 없이, 참여자들의 고유하고 다채로운 목소리가 전달하는 책 내용을 오롯이 느끼기만 하면 되니까요. 어느덧 모임은 주제별로 3개로 늘어났고, 코로나19가 끝났으나 손님은 올 낌새도 없는 책방에서 저는 아무 방해 없이 큰소리로 책을 읽고 또 듣는 중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것에 가까운 듯합니다.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의 저자는 “오디오북은 타인의 낭독을 듣는 것인데, 묵독 역시 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을 듣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고 외로워진 경험이 있으실 텐데 책을 읽으면 외로움이 덜어지는 것도(단지 지루하거나 ‘노잼’일 뿐) 아마 그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것이든 독자의 것이든 소리가 들리고 듣는 과정이라는 점에서요. 낭독하기에 특히 좋았던 텍스트는 그 점을 분명히 느끼게 해준 책들인데요, 존 버거의 소설 ‘결혼식 가는 길’과 ‘A가 X에게’의 등장인물들은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아닌 구체적인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는 듯 내밀하고도 생생한 목소리로 가득하고. 존 케이지의 ‘사일런스’는 저자가 음악을 특정 형식의 예술에 가두지 않고 소리 전체로 확장했듯 소리 내 책 읽는 행위가 곧 음악이 되는 희한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스트리밍과 노이즈캔슬링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듣기’라는 제목을 신간 소개에서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자 데이먼 크루코프스키는 록밴드 갤럭시 500의 멤버였고 지금은 데이먼 & 나오미로 활동 중인 음악가로 이 책은 그가 진행한 동명의 팟캐스트 내용을 글로 풀어 옮긴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듣기’는 디지털 세상에서 듣는다는 행위의 본질을 시간, 공간, 사랑, 돈, 권력, 신호와 소음이라는 여섯 가지 범주로 탐구합니다. 디지털 사운드와 물리적 시공간이 어떻게 어긋나 있는지부터 음원 사이트와 음악가의 경제 사정, 온라인 플랫폼과 권력의 문제 등 다양한 쟁점을 섣불리 결론짓지 않고 경쾌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의 과제 상황은 음악 분야의 문제만이 아니어서 저도 모르게 책의 주요 키워드를 종이책과 동네 서점, 작가 등으로 바꿔 읽고 있었는데 해석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더군요. 특히 낭독 모임을 휴대폰 앱으로 진행하면서 느낀 어색함, 껄끄러움, 불편함이 디지털 기술의 한계와 연관된다는 것도 책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휴대폰은 우리의 말을 전달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치워져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배경 소음은 밀려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수많은 작은 소리들도요. 우리의 숨소리, 우리가 듣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 (63쪽)
한편 낭독 모임을 이어가는 동력도 새삼 발견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아주 잘 압니다. 때로는 그 목소리에 담긴 단어보다 더 잘 이해합니다. (…) 목소리를 나눌 때 우리는 언제나 단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지 않나요?”(51쪽) 책 속 단어뿐 아니라 목소리의 주고받음을 생각하며 오늘도 책방에서 읽고 듣는 일에 힘써야겠습니다. (손님만 오면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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