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리더의 ‘휴가 독서’
리더의 말은 힘이 세다. ‘군자가 개념이 잡힌 언어를 쓰지 않으면 백성은 혼란스럽다’고 한 공자의 정명론(定命論)은 리더가 구사하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더의 말엔 다양한 세상, 다양한 삶과 소통하는 지혜와 직관과 철학이 묻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여름휴가에 토머스 프레이가 쓴 <미래와의 대화>를 챙겨갔고 이후 ‘정보화 강국’을 미래 비전으로 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개조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등을 휴가철 도서로 권했고, 정부 요직에 추천 도서 저자를 중용하기도 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를 쓴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저자인 이주흠 전 리더십비서관 등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축적의 시간>을 권유하고, 그 책 주제처럼 대한민국을 추적국가에서 선도국가로 정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휴가지 도서 목록엔 <정의란 무엇인가> <로마인 이야기> 등이 있었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들도 여름휴가철은 ‘독서 경영’의 시간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CEO 회원 241명과 전문가들 추천을 받아 선정한 14권에는 반도체 역사를 정리한 크리스 밀러의 <칩워>, 김훈의 <하얼빈>,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등이 있다.
올여름 정치 리더들이 휴가지에 챙겨간 책만 봐도 대치 정국의 여진이 느껴진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위대한 협상: 세계사를 바꾼 8개의 협정> <기본소득 비판> <세습 자본주의 세대>를 갖고 베트남행에 올랐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기본소득 비판>은 다분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세계 지도자들의 ‘저열한’ 리더십을 난세의 원인으로 짚은 김용옥의 <난세일기>, 불평등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다룬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의 <같이 가면 길이 된다>를 읽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려는 뜻이다.
‘모든 리더(Leader)는 리더(reader)’라고 했다. 독서 정치든 독서 경영이든, 시민들의 고단한 삶을 먼저 헤아리고 성찰하는 휴가가 되길 바란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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