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경영 확산’ 취지 실종… 기업들 “득보다 실” 외면 [심층기획]

안용성 2023. 7. 3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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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자율준수제도 ‘헛바퀴’
제도 시행 20여년 지났지만…
기업 자체 운영 준법 감시시스템
도입 초 과징금 감경 등 인센티브
봐주기 논란 일자 혜택 대폭 축소
‘과징금 감경’ 법적 근거 마련에도…
CP 도입·유지 비용 비해 효과 적어
첫해 60곳 신청… 2022년엔 16곳뿐
공정위 “실질적 혜택 지원안 발굴”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준법경영 확산을 위해 도입한 공정거래 자율준수제도(Compliance Program·CP)가 기업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제도 시행 20여년이 지났지만, CP를 도입하거나 등급평가를 신청하는 기업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기업들은 제도 도입과 시스템 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기업에 돌아오는 인센티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 지난 5월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돼 과징금 감경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게 기업의 입장이다.

◆준법경영 확산 위해 마련됐지만…

31일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CP를 도입한 기업은 지난해 기준 600여개로 추산된다.

CP란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도입·운영하는 준법감시시스템을 말한다. 임직원들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 등을 통해 기업 스스로 법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다.

2001년 제도 도입 초기에는 CP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과징금 감경 등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하지만 제도 취지와 달리 일부 기업이 형식적으로 CP를 운영하면서 과징금 감경 혜택만 누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공정위는 CP의 운영 실태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차등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급평가 제도를 2006년 도입했다. 등급평가는 CP를 도입한 지 1년 이상 된 기업을 대상으로 △최고경영자의 자율준수 실천의지 및 방침 △자율준수관리자 임명을 포함한 최고경영진의 인력과 예산 지원 △자율준수편람의 제작 및 활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총 6개 등급(AAA, AA, A, B, C, D)으로 구분한다. 등급평가 결과 A 등급 이상의 기업에는 직권조사 면제, 공표명령 감면, 평가증 수여 등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CP 등급평가 신청기업은 평가제도 도입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첫해 60개이던 등급 신청기업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약 40∼50개 수준을 유지하다 최근에는 10여개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16개 기업이 등급평가를 신청해 심사를 받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관련 제도를 만들다 보니 CP 담당 부서를 운영하고 있지만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중견·중소기업까지 관련 제도가 확산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인센티브 적다”… 기업 외면 계속

기업들이 CP 도입을 꺼리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CP 도입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정위는 CP 기준과 절차 마련 및 시행, 최고경영자의 의지, 지속적인 교육 실시, 내부감시체계 구축 등 8가지 도입 요건을 예규에 명시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CP를 도입하더라도 실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지 않았다. 올해 초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발표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의 활성화 방안’을 보면 CP 도입 기업의 44%가 인센티브 부족을 CP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뒤이어 △인력 및 비용의 부족(30.7%) △최고경영자 및 임직원들의 공정거래 관련 법규의 이해 부족(12.7%) △공정위가 법 위반 조사 시 CP 담당 부서를 조사하기 때문(10.3%) 순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2001년 CP 도입 당시 인센티브에 포함했던 과징금 감경을 2014년에 제외했다. 이후 기업들의 요구가 이어지고, 국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지난 5월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개정된 공정거래법에서는 CP 관련 사안을 공정위 예규가 아닌 법으로 규정하고 인센티브로 ‘과징금 경감’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월에는 공정위가 CP부서·법무실 등 준법지원부서를 우선 조사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준법지원부서가 법 위반 또는 증거인멸 행위에 직접 관여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준법지원부서가 공정위 조사의 1차 타깃이 되는 상황을 면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CP 담당 부서를 운영할 때 들어가는 인력 및 비용의 문제를 도입을 막는 큰 장벽으로 느끼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중소기업으로 내려갈수록 CP 도입 비중이 낮아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중소기업의 CP 도입 비중은 42.3%로, 대기업에 비해 17.7%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위는 과징금 감경 등 법령상 인센티브 내용을 구체화하고, 관계부처 협의 등을 통해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발굴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022년 CP 우수기업 평가증 수여식 및 CP 포럼’에서 “법제화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충분히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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