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한테 물려줄 바에는 문 닫는다”...안 팔리는 중소기업 운명은

양연호 기자(yeonho8902@mk.co.kr) 2023. 7. 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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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플랫폼 M&A 등록 매물만 1561곳...상반기에만 86곳 증가
상속세 부담으로 승계 포기한 알짜 중기도 다수
M&A 성사는 1% 수준...매수자·매도자 매칭 활성화 필요
자녀에게 가업을 승계할 것이냐, 회사를 매각할 것이냐.

기업의 운명을 가를 선택의 기로에서 수년간 고민해왔던 국내 한 중소 완구업체 대표는 최근 승계도 매각도 아닌 폐업을 결정했다. 국내 한 인수·합병(M&A) 플랫폼 운영기관에 회사 매각을 의뢰한 지 2년여 만이다. 수년간 매수인을 찾지 못하자 결국 회사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이 회사 대표는 “2세가 사업에 관심이 없고 전문경영인 영입에도 끝내 실패했다”며 “인수할 만한 규모의 회사도 나타나지 않아 폐업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점점 더 많은 중소기업이 상속세 부담 등으로 승계 대신 제3자 매각을 선택하며 M&A 시장을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주인을 찾는 기업은 소수다. 마지막 퇴로인 M&A 마저 막힌 대다수 중소기업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폐업이다. 수년간 어렵게 축적한 기술·경영 노하우가 사장되고 고용인력 유지도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까지 M&A 거래정보망에 등록된 매도 희망 중소·벤처기업은 줄잡아 1561곳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1~6월)에만 86곳이 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매물이 쏟아졌던 2021년 하반기(71개)를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M&A거래정보망은 기업을 팔기를 원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데 관심 있는 기업들을 매칭해주는 플랫폼이다. 정부는 2019년 4월부터 격월로 등록된 기업의 수와 업종에 관한 통계를 제공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경기 침체와 상속세 부담 등 경영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자 부도나 강제 구조조정만은 피하려는 중소기업들이 M&A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부실기업만 매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이 상당한 알짜 기업들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상속세 부담 때문에 2세 승계를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승계 문제로 향후 M&A 시장에 나오는 중견·중소기업 매물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고령의 창업주가 경영권을 보유하고 있는 중견기업이 전체의 38%에 이른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현재 승계를 목전에 둔 중소·중견기업들이 국내에 적지 않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높은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가업을 물려주지 못하면 M&A가 진행돼야 폐업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기업들이 진행하는 초대형 M&A와 달리 중견·중소기업 간 M&A는 서로 상대방을 만나지 못해 초기 단계에서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순수 민간자본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M&A거래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1만여 개에 달하는 기업이 M&A 시장에 매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새 매수인을 만나 거래가 성사되는 사례는 300~400건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M&A를 중개·주선하는 다른 기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소벤처기업부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와 손잡고 운영 중인 M&A거래정보망도 실적은 미미하다. 1500여개에 이르는 누적 등록 기업 가운데 거래가 성사된 사례는 전체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회사 매각을 원하는 중소기업에 매수자를 알선해주는 지원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중소기업의 M&A를 중개해주는 지원센터를 운영했지만 사업효과와 실효성 논란 끝에 2013년경 사업이 폐지된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여전히 민간에 주도권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M&A 생태계 조성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 규모가 작은 M&A의 경우 민간 시장에서 비교적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M&A거래소 관계자는 “중개업체들은 매각을 원하는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와 신용 위험, 소송 관련 여부 등을 파악한 뒤 관심 있는 매수자가 나타나면 연결해주고 수수료로 매매가의 3%를 받는다”며 “거래 규모가 작을수록 M&A 매각 자문 수수료가 적기 때문에 매도자와 매수자 간 매칭이 매우 어렵다”고 꼬집었다.

매도기업과 매수기업 간 이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기업가치평가 모델도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비상장 중소기업은 영업이익과 매출액 등 평가 가능 재무실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성장성 등 무형자산에 대한 고려가 반영된 신뢰할 수 있는 평가 모델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M&A시 소요되는 자금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M&A 이후 인수합병기업이 사업 안정이나 확장 또는 사업재구축을 추진할 때 필요한 자금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당수 합병기업들이 M&A 이후 사업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추가적인 운영 및 시설자금, 기술개발자금 등이 필요하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경영실패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시 정책자금 또는 보증지원을 통해 중소기업 M&A 성공사례를 확산시키고 중소기업간 M&A 활성화를 위한 시장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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