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 아래 "농사는 때가 있어서"…밭에서 못 떠나는 노인들
말 그대로 '살인적인 더위'가 덮쳤습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에만 무려 9명이 더위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 집계됐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뜨거운 공기가 겹겹이 감싸면서 온 나라가 이례적인 '열돔'에 갇힌 탓입니다. 그런데 이런 더위가 짧으면 말복까지 길면 8월 말까지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폭염으로 48명이 숨졌던 2018년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대비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오늘(31일) 뉴스룸은 피해가 우려되는 폭염 현장을 집중 점검했습니다. 먼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왔지만 뙤약볕 아래 일손을 놓을 수도 없는 논밭으로 가보겠습니다.
신진 기자입니다.
[기자]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는 열기로 일렁입니다.
쏟아지는 햇볕에 길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늘 없는 한낮 농촌 마을에선 나다니는 것도 위험합니다.
체감 온도 34도.
농기계도 멈췄습니다.
이 더위를 뚫고 밭에 나온 노인.
위험한 걸 알지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용남/고추밭 주인 : 지금 (고추에 줄을) 매 줘야 농약 뿌리기가 좋아요. 수월해요.]
1000평 고추 농사를 짓는 70대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한 해 농사를 망친다는 절박함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합니다.
벌써 5시간째, 땀은 줄줄 흘러내립니다.
[전용남/고추밭 주인 : 더워도 할 수 없죠. 농사는 때가 있기 때문에. 탄저병이 오면 다 전염이 되어버려서 못 써요.]
옷이 땀에 다 젖으면 그제서야 선풍기 앞에서 잠깐 쉽니다.
[전용남/고추밭 주인 : 일흔여덟인데, 안 할 수도 없고.]
고추를 제 때 못 따면 이렇게 곯아서 저절로 떨어져 버립니다.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잠시도 일손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근처 토마토 비닐하우스 안 온도계는 36도에서 38도를 오갑니다.
[토마토 농장 주인 : 어지럽고요. 머리가 핑 돌면서, 땀을 일단 너무 많이 흘리니까.]
하지만 역시 지금 안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토마토 농장 주인 : 줄기를 잘라줘야 영양분이 열매로 가기 때문에… (열매가) 작거나 그러면 가격을 싸게 내놔야 하니까요.]
지난 두달 동안 온열질환으로 13명이 숨졌습니다.
10명이 60대 이상 노인이었고, 대부분 밭에서 발견됐습니다.
[경산 자인면 119 구급대원 : 이미 (사망자의) 몸 상태가 좀 뜨거운 상태였고, 저희가 체온을 측정했을 때 한 38도 정도…]
나이가 들수록 땀을 내보내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은 떨어집니다.
그래도 농촌 노인들은 내일도 밭으로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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