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법률 탓만 할 수 없어 수사준칙 개정"... 일각선 '시행령 통치' 지적도

이유지 2023. 7. 31. 19: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보완수사 전담하는 원칙 폐지
재수사 미이행 시 검사가 송치받도록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법무부가 문재인 정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시행된 수사준칙을 손보기로 했다. 경찰이 보완수사를 전담하는 원칙을 폐지하고, 경찰이 재수사 요청을 이행하지 않으면 검사가 사건을 송치받게 하는 등 경찰 권한은 축소하고 검찰 역할은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조계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의 허점을 메우기 위한 조치라는 긍정적 평가와 상위법(형사소송법·검찰청법)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법무부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수사준칙) 개정안을 8월 1일부터 9월 11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31일 밝혔다. 수사준칙은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국회 표결 없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2021년 수사권 조정 이후 나타난 수사지연과 부실수사 등 부작용, 지난해 '검수완박법'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 등으로 나타난 공백을 현행 법률 틀 안에서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보완수사 전담 원칙 폐지

개정안은 경찰이 고소·고발을 반려할 수 있도록 했던 제도를 폐지하고, 수사기관의 고소·고발장 접수 의무를 명시했다. 또한 사건 처리 지연과 관련해 기존엔 검사의 재수사 요청 시한(3개월)만 뒀던 것과 달리, 경찰의 재수사 이행 기한(3개월)도 규정했다. 기간 제한이 없던 보완수사 요구에서도 검사 요청 시한은 1개월, 경찰 이행 기한은 3개월로 신설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사건에 대한 검·경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지면서 '사건 핑퐁'으로 처리 기한이 늘어진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경찰이 보완수사를 전담케 한 원칙도 폐지, 검·경이 보완수사를 분담하게 했다. 경찰의 수사현장 업무과중을 완화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특히 사건 수리일 한 달이 지났거나 송치요구 또는 사전 협의 후 송치된 사건은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 하는 것을 원칙으로 규정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소 분리를 전제로 한) 개정 형사소송법 취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사건 적체 등 실무상의 요구가 커 강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무부 수사준칙 개정안 주요 내용. 시각물=강준구 기자

재수사요청 미이행 시 검찰 송치

아울러 경찰의 불송치 결정(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검사에게 사건을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한 검사의 재수사 요청이 이행되지 않으면, 검사가 사건을 송치받을 수 있게 했다. 기존엔 경찰이 불송치를 통해 사건을 자체 종결할 수 있었고, 검사는 위법·부당한 불송치 결정에 한해 재수사 요청을 1회 할 수 있었다. 경찰의 재수사에도 위법·부당성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검사가 송치 요구를 할 수 있었지만 그 사유는 법리 위반이나 공소시효 오류 등으로 매우 제한적이었다.

개정안은 사건송치 요구 사유에 '범죄 혐의의 유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재수사 요청한 사항에 관해 그 이행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등을 추가해 폭을 넓혔다. 송치 전 협의할 수 있는 중요사건 유형에 조직범죄·대공·정당·정치자금·노동·집단행동 관련 사건을 추가했다. 검·경 중 한쪽이 요청한 사건, 공소시효 3개월 이내인 선거사건도 넣었다.

검사의 송치 요구 확대는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를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찰 불송치 통지에 이의를 신청하면 검찰에 즉시 송치하도록 규정한 개정 형사소송법 조항엔 '고발인은 제외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이에 경찰 수사에 불만이 있어도 고발인이 검찰 판단을 받아보긴 요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권 조정 후 대표적인 법적 공백으로 지적돼온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이기 때문에 (상위법에 어긋난다는) 위헌 주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또 시행령 통치냐" 비판도

법무부는 지난해 6월부터 학계·실무 전문가, 검찰·경찰 기관위원으로 '검·경 책임수사시스템 정비 협의회'를 운영,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개정안을 마련했다. 협의회에 참여한 한 법조계 인사는 "초기엔 검·경이 권력 분점을 의식하거나 기관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경향도 있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정의의 공백이 발생하는 부분을 중점으로 의견이 모였다"며 "절충안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수사권 조정 시행령 개정 때와 같이 국회의 입법 취지를 거슬러 사실상의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을 역임한 김남준 변호사는 "검사 직접 수사를 지양하는 건 세계적 추세"라며 "권력 남용을 방지하고자 하는 법률 개정의 근본 취지를 위반해 검찰의 재량 또는 일방적 판단에 따라 직접 수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단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법무부는 이날 입장문을 내 "근본적으론 '검수완박법' 등 잘못된 법률이 개정돼야 하나, 법률 탓만 하면서 국민 피해를 방치할 순 없어 수사준칙을 바꾼 것"이라며 "어떤 쪽이 국민에게 더 좋은지 봐달라"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서민 생활과 직결된 대다수 민생사건 수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라지는지, 국민 억울함을 풀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보장할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