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연구 중 ‘여성 몸 주제’ 4% 그쳐… 정부 펀딩지원 시급” [심층기획-스타트업 유리천장]

이지민 2023. 7. 3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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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국내 펨테크 스타트업계 여성 4인 좌담회
‘가장 사적인 일상’ 돌보는 데서 보람
性 편히 이야기하는 문화 만들고 싶어
여성 선택지 늘리고 주체성 제고 노력
‘인허가’ 장벽 탓 새로운 시도 위축돼
두드려 보지 않으면 벽이고 두드리면 문
‘새벽 배송’처럼 서비스 표준 제시 필요
공개적 논의 가능해져야 더 많은 혁신
월경·피임 등 향한 부정적 시선 만연
다양성으로 집단 ‘브레인 파워’ 높여야
 
펨테크(Female+Tech: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와 상품)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FBI)는 전 세계 펨테크 시장 규모가 올해 67달러(약 8조5000억원)에서 2030년 206억달러(26조3000억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17.4%로 추정된다.
 
한국은 여성 특유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이 더 필요한 나라다. 11년 연속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꼴찌를 기록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유리천장이 공고하다는 건 월경, 출산, 노동 참여 등 고민을 안고 있는 여성들이 유독 더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국내 펨테크 산업 일선에 선 사람들이 느끼는 애로와 보람은 단순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0일 박지원 세이브앤코 대표, 박지현 쓰리제이 대표, 윤송이 티읕 공동대표, 정주원 옐로우독 투자심사역을 만나 이들이 생각하는 펨테크 산업의 현재와 미래, 스타트업계의 유리천장에 대해 들어 봤다. 박지원, 박지현, 윤송이 대표는 각각 2018년, 2019년, 2017년 창업에 나섰고, 정주원 심사역은 펨테크 스타트업 달채비의 전 공동창업자로 현재는 젠더렌즈(젠더 평등한 관점에서 투자를 집행)를 도입한 벤처캐피탈(VC)인 옐로우독에 몸담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지난 20일 펨테크 산업과 스타트업 업계 유리천장을 주제로 한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은 좌담회에 참석한 정주원 옐로우독 투자심사역(왼쪽부터), 박지현 쓰리제이 대표, 윤송이 티읕 공동대표, 박지원 세이브앤코 대표. 남정탁 기자
―펨테크 산업에 몸담게 된 계기와 국내 현황을 진단한다면.

△정주원 심사역: “펨테크 시장을 알게 된 건 2017년이다. 당시 미국에서 탐폰을 수거를 해서 혈에 있는 성분을 분석해 여성 질환 가능성을 진단해주는 ‘스마트 탐폰’을 처음 접했다. ‘기술은 있는데 사용성은 안 좋네’라는 생각을 했고, 기술과 자본과 사용성 모두 잡는 제품이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리서치를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국내에는 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한국에서도 2017년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 파동 뒤에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는 담론이 많이 형성된 것 같다고 느꼈다.

펨테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지만 기존 디지털 헬스케어 등에 들어가는 투자금보다는 적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시장의 수요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적어서일 것이다. 여성 심사역 문제도 마찬가지고. 표준이 되는 사업자들이 몇 개 치고 올라온다면 빠른 그간에 많이 클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계신 세 분이 해주지 않을까.”

△박지원 대표: “보수적인 한국 가정에서 자라면서 성 건강이나 피임 등에 대해 무지한 게 미덕인 것처럼 여겨왔다. 그러다 미국 텍사스대학교에서 디자인학과 교수로 6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성에 대해 무지한 게 부끄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2018년 창업 이후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밤에는 한국 시간에 맞춰 일하다가 2019년 처음으로 투자를 받으면서 학교 생활을 정리한 뒤에 세이브앤코 운영에만 몰두하고 있다.

펨테크와 여성 창업가는 다른 개념인데 그 경계가 모호하게 사용될 때가 있는 듯하다. 펨테크 산업의 창업가들이 여성 창업가로 한정될까 봐 우려된다.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한국에서는 특히 그런 시선이 있는 것 같다.”

△윤송이 대표: “2017년 남동생인 윤태준 공동대표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여성용품 사업의 필요성을 느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아이디어를 낸 게 남동생이어서 ‘생리도 안 해본 남자가 어떻게 월경컵을 파냐’는 시선도 있었다.

현재 펨테크 산업은 월경에 초점이 많이 맞춰진 것 같다. 저희도 아직 월경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육아나 임신, 출산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박지원 대표: “미국과 한국 펨테크 산업의 차이도 그 부분인 것 같다. 미국은 펨테크 안에서도 분야가 정말 다양한데 한국은 초반에는 월경 위주가 대부분이었다. 월경이 그나마 타부(금기)가 적어서인 것 같다. 지금은 한국도 초반보다 더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펨테크 기업들이 생겨난 것 같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정 심사역: “펨테크는 가장 사적인 일상생활 관리하는 산업군이다. 여성, 즉 마이너리티의 가장 사적인 생활은 느리고 변하고 장벽이 높기 마련이다. 사회 구조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주목받지 못하는 가장 사적인 일상, 건강을 돌보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박지원 대표: “콘돔을 론칭하면서 여성들이 성(性)과 피임에 대해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고객 후기를 보면 “처음으로 콘돔을 사봤다”고 하는 여성분도 있고, 엄마가 자녀를 위해 선물로 사는 분도 있다. 이처럼 건강한 대화의 시작을 만든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박지현 대표: “마찬가지로 고객의 후기를 볼 때 보람을 느낀다. 그동안 먹었던 질 유산균 경우 효과가 없었는데 좋아졌다는 후기들이 많다.

△윤 대표: “브랜드의 팬들이 생겨나는 걸 볼 때다. 월경컵 이전에는 여자들이 생리용품을 고를 때 옵션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레 생리 기간에 할 수 있는 운동에 제약이 생기고, 흰옷을 안 입는 등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생리컵으로 선택지를 높이고 여성이 더 주체적이 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고 믿는다.”

―벽에 부딪혔던 순간은.

△박지원 대표: “여성 건강과 직결되다 보니 인허가가 제일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원래 있는 제품에 한해 인허가를 받는 것은 상관이 없다. 그런데 아예 존재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면 첫 사례로 인허가를 얻는 게 너무 힘들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화하면 돌고 돌아 결국 처음 전화했던 사람에게 다시 걸어야만 하더라. ‘한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라고 느꼈다. 수출할 때도 수출국별로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 미국 인허가가 완료해 올해 하반기에 미국에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윤 대표: “월경컵도 그랬다. 식약처에서 인허가를 계속 보류했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 전에 미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인디고고에서 먼저 출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박 대표: “비대면 진료 기업으로서 할 말이 많기는 하다. 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아 우왕좌왕한 면이 있다. 6월1일부터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시작됐는데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들이 많아지면서 비대면 진료 서비스에서 질 미생물 검사 서비스로 전환하게 됐다.”

△정 심사역: “두드려 보지 않으면 벽이고, 두드리면 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모토다. 예컨대 새벽 배송이 잘 될 줄 어떻게 알았겠냐. 거기에 대한 표준을 제시한 게 스타트업이다. 결국 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계속 찌르고 두드려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 육성 차원에 정부나 우리 사회에 바라는 점은.

△정 심사역: “펨테크와 관련한 연구 지원이 더 필요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의료비를 약 15% 더 쓴다고 알고 있다. 그에 비해 전체 의료 연구 중 여성의 몸을 특정해 연구하는 비율은 4%밖에 안 된다. 여성의 몸을 따로 연구해야 한다는 젠더 의학이 부상하고 있는데도 여성 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생각 들고, 정부 정책적으로 연구비를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박지현 대표: “동감한다. 해외에서 저희 같은 서비스 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캐치프레이즈를 ‘과학적인 젠더 격차를 줄이기 위해 너의 검체 원한다’며 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쌓이는 연구 양이 차이 날 것이다.”

△박지원 대표: “바이오 시장을 보면 정부 개입 없이 시장에만 맡겨도 글로벌 대형 제약사(Pharma·빅파마)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간다. 단적으로 비아그라 같은 남성 정력을 위한 제품들에 비해 여성 성욕 개선 연구는 어떤가. 그런 식으로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정부 차원에서 여성 건강을 위한 연구에 특화한 펀딩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 외에 정부가 스타트업을 모태펀드 등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지만 정책을 꾸리거나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때는 소극적이지 않나 싶다. 저출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실 아이를 안 낳기로 한 부부에게 몇백만원 준다고 낳지 않는다. 차라리 아이를 낳고 싶은데 못 낳는 난임 부부를 지원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서 여성과 스타트업의 목소리를 듣고 같이 해법을 모색하면 좋겠다.”
―여성 창업자라는 이유로 직간접적인 차별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지.

△박지원 대표: “성별 차이라기보다 ‘성공적인 창업가’에 대한 편견 섞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저는 내향적인 성격이다. 초반에 투자설명(IR) 피칭을 할 때 한 심사역이 “대표님, 이런 식으로 피칭하면 투자 못 받는다”고 했다. 소위 말해 남자 대표들은 얼마나 자신감 있게 설명하는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창업가들이 존재한다고 여겨지면 좋겠다. 그리고 여자 한 명이 대표일 때랑 남성과 같이 공동대표일 때랑 다른 시선을 받는 게 있다. 투자 심사역들이 대놓고 결혼이나 출산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진 못하지만 궁금해하고,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미국도,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는 환경은 오히려 미국보다 한국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게 많다. 정부 심사에서 평가위원 구성 성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렇고. 이런 노력이 헛되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정 심사역: “엘로우독의 젠더렌즈 투자 도입이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저희는 투자 심사역 7명 중 4명이 여성이다. 여성 심사역이 다수일 때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초기 투자 유치 단계에서 여성들이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약해 기회가 더 적다고 여기는지.

△박지원 대표: “시리즈B, C 단계는 가야 그런 걸 느끼는 것 같다. 다만, 남성들이 서로 끌어주는 연대가 강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내가 도와줘서 잘됐어”라는 말을 하기 더 좋아하는 것 같고, 서로 부탁도 더 잘하는 것 같다.

그래서 VC의 역할이 중요하다. 옐로우독 같은 회사는 특별한 곳이고, 아직도 특히 메인 VC 중 여성 심사역 적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의사 결정권을 가진 직급의 여성 심사역이 적다. 결국 의사 결정하는 사람 중 여성 비율이 중요할 것이다. 어쨌든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지만 그 속도가 더 빨랐으면 좋겠다.”

―스타트업계 유리천장 해소 방안이 있을지.

△정 심사역: “어떤 지역의 혁신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게이지수’(gay index)가 사용되곤 한다. 해당 지역에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실리콘밸리가 게이지수가 높은데, 그만큼 어떤 지역, 도시, 국가가 다양한 목소리를 얼마나 포용하느냐가 혁신성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다양성은 그 집단의 브레인 파워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다양한 머리들이 맞닿았을 때 좋은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여성 심사역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 아닐까. 마찬가지로 유리천장 관점에서 보면 최대한 다양한 성별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확실히 인정하고 실행하는 게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됐으면 좋겠다. 더 많은 펨테크 사업자들이 시장에 등장해 표준을 지향하며 달려갈 때 관련 시장도 커질 수 있다고 믿는다.”

△박지원 대표: “여성은 생애 주기를 지나면서 월경, 피임, 출산, 갱년기 등을 겪는다. 근데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편견이 없는 단계가 없다. 여성의 몸에 대한 미적 기준도 마찬가지다. 이런 편견을 바꾸는 것이 펨테크라고 생각한다. 금기시되는 것이 없어져야 하고, 공개적인 논의가 가능해져야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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