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지진, 막연한 두려움은 도움 안 된다

2023. 7. 31. 19: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활성지구조연구센터장

국민 안전과 관련하여 화두로 떠오른 중대재해법은 그 범위를 규정하는데 있어 '사망자 1명 이상'과 같은 인명피해를 기준으로 한다. 만약 지진을 인명피해 발생 가능성이나 그 정도로 구분한다면 규모 6이상의 중대형지진이 그 기준이 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국내 최대규모(5.8)의 2016년 경주지진은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지진재해 측면에서도 규모가 작은 지진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지진은 우리의 두려운 일상이 되었고, 실제로도 우리는 언론과 문자알림 등을 통해 적지 않은 지진 관련 소식들을 접하고 있다.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예고 없이 발생한다는 지진의 고유특성이 심리적으로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중대형지진의 발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미래 지진의 가능성을 추론하기 위해서는 과거 지진의 이력을 살펴봐야 한다. 과거 지진은 기록의 종류에 따라 지진관측계에 기록된 계기지진, 역사문헌에 기록된 역사지진, 그리고 땅 속에 기록된 지질기록이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경주지진은 계기지진 중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된 것일 뿐이다. 지난 2000여 년에 걸친 역사기록과 수(십)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질기록 조사 결과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규모 6이상의 중대형지진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주지진 이후 대대적으로 수행된 R&D 단층조사를 통해 중대형지진의 지질기록이 새로이 발견되기도 했다. 예전의 제한적인 조사에 비해 최신 연구기술을 국내 도입해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다학제 연구를 수행한 결과다.

그렇다면 중대형지진은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큰 규모로 발생할까?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모든 해답을 내린다면 말 그대로 지진 예측이 가능하게 될 것이지만, 아쉽게도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어렵다. 미래 지진의 규모와 위치는 어느 정도 예측 평가가 가능한 반면 '언제'라는 시간적 요소는 평가가 어려운데 이것이 바로 지진 예측이 불가능한 이유다. 보다 확실하게 말하면 시간적 요소도 평가가 가능하지만 그 오차가 적어도 수백~수천 년이기에 우리가 기대하는 지진 예측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런데 지진을 예측하는 것만이 지진재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 중대형지진의 규모와 위치 정보만으로도 대규모 재산피해나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사례는 적지 않다. 따라서 과거 지진의 규모와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미래의 중대형지진에 대한 대비가 실질적인 지진재해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한반도는 지질학적 위치상 중대형지진의 재발주기가 수천에서 수만 년으로 매우 긴 편이다. 일본, 미국 서부, 튀르키예 등과 달리 최근 대형지진재해는 없었다. 대형지진은 없었지만, 산악지형과 높은 인구밀집도 등으로 인해 지진재해에 있어서는 저빈도-고위험의 최상위군에 속한다. 동일한 규모의 중대형지진이 이웃나라 일본과 우리나라에 동시에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그 피해규모의 차이는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 중 하나는 최근 지진재해를 주제로 미디어를 비롯해 지진체험관 운영과 지진행동요령 알림 홍보 등과 같은 간접적인 지진 경험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주변 길거리를 둘러보면 다양한 교통표지판과 스쿨존 방지턱이 등 언제 교통사고가 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 평가돼 다음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들이 작동되고 있다. 지진 또한 유사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우리나라 도로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 10년간 약 4만명에 달했다면, 지진은 이 많은 인명피해가 한 순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지속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나라 중대형지진은 재발주기가 길어 지질기록이 적을 뿐만 아니라 지표에서의 침식과 퇴적작용이 매우 활발해 얼마 없는 기록마저 잘 지워지거나 덮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이러한 국내 중대형지진 연구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실효성 높은 지진재해평가를 실현하고자 '활성지구조연구센터'를 중심으로 단층추적 원천기술 및 단층모델 평가기술 등 다양한 국가 R&D 연구를 수행 중에 있다. 지진이 드문 판내부 지진환경에 최적화된 다학제 연구시스템을 구축해 우수한 연구성과를 도출함과 동시에 판내부 지진단층연구의 세계적 주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반도가 상대적으로 지진의 안전지대인 것은 맞지만 더 이상 중대형지진의 발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행인 것인 지진은 막을 수 없지만 충분한 조사와 대비를 통해 지진재해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구의 살아가는 방식으로 지진을 인정하고 과학기술을 통해 공존하는 방법을 마련한다면, 최근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지진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조금이나마 해소되지 않을까.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