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계 CEO, 실리콘밸리 점령…취업보증수표 된 IIT 졸업장
개발자부터 경영자까지 장악
영어 사용 인력풀 형성에 유리
테크산업에 부는 인도風
MS(마이크로소프트), 구글, IBM, 어도비, 트위터.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에는 눈에 띄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인도계 출신 CEO(최고경영자)가 근무 중이거나 거쳐갔다는 점이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 산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 파라그 아그라왈 전 트위터 CEO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세계 IT 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서 한 기업을 경영하며 기술혁신을 이끌고 있다.
인도계 CEO들은 실력과 언어, 정치력을 활용해 창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관련 분야를 깊고 빠르게 파고들어 입지를 키운다. 인도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CEO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CEO뿐이 아니다. 인도계 출신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가로 활동할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 등 핵심 업무를 꿰차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 살아남은 이들=인도계 출신이 IT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으로 건너온 인도계를 살펴보면 대부분 고학력자다. 70% 이상이 학사학위 이상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나델라 CEO와 피차이 CEO 역시 인도에서 태어나 현지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에서 자리 잡은 사례다.
나델라 CEO는 인도 마니팔공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위스콘신-밀워키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했다. 피차이 CEO는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인도공과대학(IIT)을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석사를 받은 후 구글에 합류했다.
인도계 출신 CEO 중 90% 이상이 IIT 출신이다. 1951년 설립된 IIT는 인도 최고 명문 국립대로 입학 경쟁률이 100대 1에 달한다. 입학 후에도 막대한 수업과 공부량을 따라가야 한다. 이는 곧 강한 승부욕과 인내심, 성실함을 나타내는 일종의 표식이 되고,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인도계 출신을 신뢰하는 근간이 됐다.
더군다나 인도는 인구 14억명이 넘으면서 사회 전반에 부패가 만연하고 신분차별과 빈부격차가 극심한 국가다. 이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IIT 졸업장을 따내며 개인의 경쟁력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취업 보증수표'로 작용한다. 타인을 존중하는 문화도 CEO로서 갖춰야 할 덕목인 만큼 일정 부분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피차이 CEO가 구글의 수장으로 발탁되기 전 외신에 나온 그의 평판을 보면 강한 승부욕과 인내심을 모두 엿볼 수 있다. 피차이 CEO는 MS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체 브라우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크롬 브라우저를 내놨다. 안드로이드 부문을 이끌면서는 다른 부서와 협력하며 갈등을 조율했다. 조용하고 섬세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영어로 네트워크 쌓고 서로 돕고=인도는 인구가 많고 땅덩이도 큰 만큼 다양한 언어와 방언이 있다. 이로 인한 혼선을 최소화하고자 힌디어 외 공식 언어 중 하나로 영어를 쓴다. 미국 진출 시 언어 장벽이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인도계가 실리콘밸리에서 네트워크를 쌓는 힘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인도계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문화가 강한 집단이다. 다른 출신들과 어울려 네트워크를 만들고 같은 인도계를 끌어들여 강력한 인력풀을 형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 이를 토대로 또 다른 인도계의 최고 요직 진출이 가능해진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IT기업 대표는 "중국계나 한국계와 달리 인도계는 회사에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면 서슴없이, 그리고 줄기차게 인도계만 추천한다. 그 결과 오늘날 실리콘밸리에 거대한 인도인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인도계 CEO의 자국 내 입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2021년 코로나19로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인도 지원에 팔을 걷고 나섰다. 당시 나델라 CEO는 "인도의 현재 상황이 가슴 아프다"며 "MS는 계속해서 우리의 목소리와 자원, 기술을 사용해 구호 활동을 돕고 산소 공급장치 구매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피차이 CEO 역시 "인도의 코로나19 위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인도의 구호단체에 1800만달러(약 2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피차이 CEO는 개인적으로 70만달러(약 7억8000만원)를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 기부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는 엘리트들을 배출한 인도 자체의 경제 성장세도 무섭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인도의 성장률은 올해 6.1%, 내년 6.3%다. 일각에서는 인도가 2030년 이후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디지털 분야에서 성장이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앞서 변화의 핵심 동력으로 '디지털 인디아' 정책을 발표해 추진하고 있다.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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