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개정 권고에도 방치 법안 42건 … 국회가 만든 ‘무법천지’ [정쟁에 멈춘 입법시계]
국회 늑장처리 탓 법안 개정속도 더뎌
낙태죄·집시·국민투표법은 ‘시한 경과’
경비업법 등은 개정안 발의조차 안 돼
전문가 “法 실효되면 사회적 혼란 야기
개정 시한 못 지킨 국회 비판받아 마땅”
특히 국회 행안위 소관의 법안 중 선거법, 정치자금법, 국가공무원법,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경비업법, 지방공무원법 등은 개정시한이 올해 7월과 내년 5월 등으로 남은 시한이 길지 않지만 입법 속도는 여전히 거북이걸음이다. 이들 법안은 대부분 상임위 소위에 회부됐거나 소위를 거쳐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국회가 이처럼 늑장 대응하는 동안 헌법부합치 판정과 위헌 결정을 받은 법률은 쌓여만 가고 있다. 지난 6월29일 헌재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공무원 결격사유 규정과 공무담임권 침해와 관련해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관련 조항에 대해 내년 5월31일 시한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또 같은 날 화환 설치 금지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 침해와 관련해 공직선거법 90조와 256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고 역시 내년 5월 말까지 법 개정을 당부했다.
국회가 모든 법안에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20년 5월30일 임기를 시작한 21대 국회는 그동안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이 된 법률 28건에 대해 관련 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영상물에 수록된 19세 미만 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해 신뢰관계인 등에 의한 진술 성립을 인정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30조6항을 개정했고, 가정폭력 피해자가 배우자 및 직계혈족을 지정해 증명서 발급금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 14조1항도 개정했다. 또 예비군훈련 소집통지서 전달 의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던 조항을 과태료 처벌로 전환하는 예비군법도 개정하는 등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다만 선거 현수막과 인쇄물 등을 규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이날로 법 개정시한이 만료되면서 8월부터는 무법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헌법불합치의 경우 당장 기존 법이 무효가 될 경우 사회적 혼란 등을 고려해 헌재가 법개정의 시간을 준 것이기 때문에 이 시한을 넘기는 것이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법을 잘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정시한을 넘겨 법이 실효가 되면 무법상태에 놓이게 된다”며 “이를 방치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법원에서 충분히 시한을 주고 우리 국민의 생활이나 사회 질서, 국가 운영에 필요한 법을 개정하도록 했지만 국회가 이를 지키기 못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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