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저작권 분쟁]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저작권 보호받을 수 있을까

노자운 조선비즈 기자 2023. 7. 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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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올해 1월, 영국 고등법원에 무려 2000조원짜리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는 세계 최대 이미지 제공 업체 게티이미지. 영국의 인공지능(AI) 업체 스태빌리티AI가 게티이미지 소유의 이미지 수백만 개를 무단으로 학습해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스태빌리티AI의 이미지 생성 AI(Generative AI) ‘스테이블 디퓨전’이 만든 사진에 게티이미지 워터마크가 버젓이 찍혀있었던 게 이번 소송전의 발단이 됐다.

이처럼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 AI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법적인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AI의 데이터 학습을 저작권 침해로 봐야 할지,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르는 경계선은 어디인지 그리고 그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더 나아가 AI가 만든 생성물의 저작권을 인정해 줘야 할지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의거성, 실질적 유사성 따져 저작권 침해 판단

AI의 저작권 침해 문제는 두 단계로 나눠서 살펴봐야 한다. 먼저 AI가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때 관건이 되는 것이 ‘공정 이용(fair use)’ 개념이다. 공정 이용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법적 개념이다. 게티이미지도 스태빌리티AI가 자사의 이미지 수백만 개를 학습한 것이 영국·미국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공정 이용 여부를 판단할 때 시장이나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특히 중요하게 본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기존 창작자의 시장을 침해한다면 공정 이용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오정익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인간이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면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반면, AI는 기성 소설의 독특한 표현 방식과 창조성까지 학습해 빠르면 한 달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이렇게 탄생한 AI 소설이 기성 소설가들의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한다면 이를 공정 이용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저작권법에도 미국과 유사한 공정 이용 개념이 있다. 저작권법 제35조의 5는 “저작물 이용의 목적 및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 이용이 시장이나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은 경우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이 법리는 포괄적인 면책 사유를 열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생성 AI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생기는 쟁점에 적용하기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물 산출 단계에서 저작권 침해가 이뤄졌는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어떤 경우에 저작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할까.

먼저 의거 관계가 충족돼야 한다. 의거성이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근거로 작성됐다는 것, 즉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직접 베꼈다는 것을 뜻한다. 의거성 여부를 따지는 건 매우 까다롭고 애매한 문제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두루 학습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인데 우연히 특정 저작물과 유사한 결과가 나온 것인지, 아니면 특정 저작물을 직접 베낀 건지 판단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건은 실질적 유사성이다. 창작성 있는 표현 요소가 실질적으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요건은 저작권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미국 판례에서 처음 나와 국내에서 수용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저작권 침해가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저작권 침해만 인정되면 저작권자는 ‘내 저작물을 더 이상 쓰지 말라’며 사용 금지를 청구할 수 있다. 반면 손해배상과 형사처벌 단계까지 가려면 저작권 침해의 고의성까지 인정돼야 한다. 다만 AI가 타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면 고의성을 따지기 쉽지 않다. 법리상 AI는 사람이 아니어서 저작권 침해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AI가 만든 작품, 저작물 될 수 없나

이처럼 AI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저작권 침해로 볼 만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현행법 체계에서는 그 주체가 누구인지 가리기 어려우며,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법리적 기준의 미비는 AI의 저작자 지위를 따지는 것도 어렵게 한다. 즉, AI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베꼈는지 가려내는 것뿐 아니라 AI의 생성물에 저작권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AI의 작품은 ‘저작물’이 될 수 없는 걸까. 현행법상 소유권을 향유할 수 있는 건 사람(자연인)이나 법인뿐이다. 저작권법 제2조 1, 2항은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특허권자(발명자)의 자격을 논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6월 30일 서울행정법원은 미국 AI 개발자가 AI의 ‘발명자’ 자격을 인정해 달라며 특허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생성 AI로 수준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구입하고 프롬프트를 적절히 입력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만 한다. AI가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적합한 지시어를 내리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다.

고도로 훈련받은 AI와 정교한 프롬프트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타인의 성과’로 간주돼 부정경쟁방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AI의 산출물을 AI를 구입하고 학습시킨 사람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물로 평가해야 하며, 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

사고는 인간 고유의 능력인가

향후 생성 AI의 사용이 더 보편화한다면 법원도 AI 산출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저작권을 누가 소유할지’를 놓고 치열한 법적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저작권을 ‘AI를 소유한 자’가 가질지 아니면 그 AI를 이용해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람이 가질지, 판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작물을 상업화하게 되면 막대한 이윤 창출도 가능하기 때문에 양측이 권리를 놓고 다투는 사례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예 AI가 법인격(법적으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면 이런 복잡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다. 저작권 침해 문제에 있어서 책임 소재도 분명해지고, AI 산출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문제도 간단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AI가 법적 개념의 ‘자연인’으로 인정받는 게 타당할까.

AI의 법인격 문제를 따져보려면 ‘인간의 사고가 인간 고유의 것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현재 AI가 거의 ‘영혼을 갖춘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오나 아직은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 AI가 자연인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쪽에서는 ‘중국어 방’ 이론을 많이 인용한다. 중국어 방은 미국 철학자 존 설이 고안한 사고 실험으로부터 파생된 철학적 논쟁이다.

중국어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외국인 한 명이 방 안에 들어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 외국인은 중국어로 된 질문과 이에 대응하는 중국어 답변을 학습한다. 방 밖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로 질문을 써서 방 안으로 넣으면, 외국인은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알맞은 답을 적어 낸다. 이는 질문과 답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가능한 일이다.

AI의 법인격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AI가 중국어 방 안에 있는 외국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외국인이 중국어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기계적으로 습득한 답을 내놓듯이 AI도 인간의 뇌처럼 사고하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에 따라 학습한 대로 결과물을 산출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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