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은 이주여성 착취하는 노예제도"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은 인종·여성차별에 기반한 '글로벌 착취'의 시작."
정부가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여성·노동계는 "정부가 이주여성 노동자 극한 착취를 합법화하려 한다"며 규탄행동에 돌입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이주여성인권센터,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등 여성·노동 단체 활동가들은 31일 오전 9시 20분께 서울 중구 로열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를 '가사 노예'와 같은 처지로 내모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전 10시께 로열호텔 내부에선 고용노동부 주최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공청회가 개최됐다. 고용노동부는 공청회에서 '이르면 연내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 약 100명이 서울 내 가정에서 가사육아 노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체들은 해당 공청회가 "고용노동부는 공청회 개최를 불과 5일 앞두고 기습적으로 공지했다. 많은 이들의 (시범사업) 반대를 의식하고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며 공청회장 내부로 진입, '노예제 도입 중단'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범사업에 대한 항의 의사를 표했다.
"尹 정부, 돌봄책임 개인에게 떠밀고 이주여성 착취로 돌봄공백 메우려 해"
이날 정부는 "(가사노동 영역의) 내국인 종사 인력이 줄고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저출산에 대응하고 여성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시범사업 시행의 취지를 설명했다.
반면 단체들은 정부가 돌봄공백, 저출생 문제 등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시장 전반의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노동자들에게 '삶의 여유'를 쥐어줘야 하는데, 정부는 "또 다른 '착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본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는 "외국인 여성에게 한국 여성의 부담을 맡겨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그 여성들을 착취함으로써, 그들의 피로 우리의 일상을 누리겠다는 것"이라며 "(경력단절 등을 유발하는) 가사·돌봄노동 문제의 해법은 여성과 남성 간의 재분배이며, 이는 임금노동 이후 서로를 돌볼 수 있게 하는 재생산 가능 구조를 만들어야 해결 가능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실체는 돌봄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이를 개별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정책"이라며 "돌봄의 공공성이 파괴되면 가정의 소득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의 돌봄이 제공될 수밖에 없다. 소득의 양극화, 일자리의 양극화에 이어 돌봄영역에서의 극단적 양극화까지 불러올 위험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배 대표는 '가사노동 영역에서 내국인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정부 판단에 대해서도 "가사노동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가사노동이 좋은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노동권이 보장되고 존중받는 일자리라면 가사노동자는 오히려 과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맞벌이 증가 등으로 인해 가사·돌봄 노동이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면, 해당 노동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한편 해당 노동의 공공성을 강화해 그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게 배 대표의 지적이다.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향한 차별 지금도 심각 … 차별지대 '외주화' 멈춰야"
이번 시범사업의 '셀링 포인트'는 내국인 노동보다 저렴한 수준의 외국인 노동을 정부 인증 기관이 직접 제공하는 데 있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논란이 됐던 이주노동자 대상 '최저임금 미적용'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도 △내국인 가사노동의 비용 상승으로 인한 (사용자 측) 어려움 △내국인 대비 낮은 수준의 임금을 적용하는 해외사례(싱가포르·홍콩) 등을 사업의 주된 도입취지로 제시했다.
단체들은 이 같은 정부의 인식이 "이미 존재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극한 착취를 합법화"하는 일이며 "(이주여성들이) 성폭력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권은 보장하지 못하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행 고용허가제상 취업영역이 제한되고 사업장 이동·선택권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경우 성폭력의 위협도 크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2년 진행한 전 세계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서 이주여성 계층을 성폭력에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꼽았다. 한편 종사자 성별이 대부분 여성인 가사노동자는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성폭력 취약지대로 꼽힌다.
유흥희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집행위원장은 "이주자라는 이유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도 군말 없이 일해야 하고, 임금이 체불되고 성폭력을 당해도 사업장 이동 권리가 없어 언제 어디서든 폭력에 내몰리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라며 "정부는 지금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 많이 더 쉽게 착취하기 위해 더 어려운 여성노동자들에게 가사도우미 일을 ‘외주화’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장 또한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이미 열악한 처우에 놓여 있거나, 부정행위, 노동, 착취에 노출되어 방임되고 있다"라며 "이들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단순하게 저임금 근무를 위한 외국인 가사 돌봄 인력을 확충한다면, 이는 외국인 차별에 앞장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단체들은 "0.78명이라는 합계출산율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는커녕 혼자 살아가기도 버거운 여성과 청년노동자의 비명"이라며 "글로벌 착취에 기반한 사적 가사·돌봄으로 저출생을 해결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나라는 여성, 이주 노동자가 사는 한국과는 다른 나라인가" 되물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확산 시도 즉각 중단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및 차별 철폐 △가사·돌봄 노동의 외주화 중단 및 돌봄노동의 공적 책임성 강화 △여성노동자의 저임금 해소 및 구조적 차별 철폐 △삶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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