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조선시대 프리미엄 잣막걸리 ‘옥지춘’ 복원한 우리술 박성기 대표 인터뷰] “옥지춘은 잣이 씹힐 정도로 잣 향이 강한 프리미엄 막걸리”
“가평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잣이 들어간 가평잣막걸리를 오래전부터 만들어 오면서, 잣막걸리의 기원이 되는 술을 우리 옛 문헌에서 찾아, 현대적으로 재현해 보고 싶었다. 프리미엄 잣막걸리 ‘옥지춘’ 복원 프로젝트는 길게는 10년 전 시작됐고, 최근 2년 동안은 본격적인 개발 기간이었다. 조선 초기인 1450년대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인 ‘산가요록’에는 잣막걸리인 옥지춘의 주방문(레시피)을 비롯해 총 66가지의 술 양조법이 기록돼 있다. 지금과는 양조 여건이 같을 수 없는 560여 년 전의 제조법 그대로 술을 빚지는 않고 현대적으로 재현했지만, 기본 정신은 산가요록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쌀과 물의 비율을 옛 문헌 그대로 일대일로 맞췄고, 발효가 끝난 뒤에도 물을 전혀 타지 않아 걸쭉함이 남다른 막걸리가 옥지춘이다. 옥지춘은 입안에서 씹힐 정도로 잣을 아낌없이 넣어, 감히 최고의 잣 술임을 자부한다.(우리술 박성기 대표)”
가평잣막걸리로 유명한 양조장 우리술 박성기 대표가 신제품 프리미엄 막걸리 옥지춘을 새로 내놓았다. 쌀 함량의 1% 정도 되는 가평 잣을 성글게 갈아 넣어, 쌀에서 오는 단맛과 잣의 고소함 그리고 전통 누룩에서 우러나는 신맛이 잘 어우러진 프리미엄 잣막걸리다.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아 만들어, 온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가격은 1만~1만2000원대. 개발은 우리술이 했지만 생산과 판매는 우리술 자회사인 우리도가에서 하고 있다. 기존 잣막걸리에 비해 네 배 이상 비싼 가격이지만, 소비자 반응은 뜨겁다. 프리미엄 막걸리에 어울리지 않는 페트병을 사용했지만, 패키지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고급스럽다는 평이다.
옥지춘의 주방문이 적혀 있다는 산가요록은 어떤 책일까. 조선 초기, 1450년대(세종) 왕실 어의 전순의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서이자, 요리책이다. 대개 가장 오래된 요리책이라 꼽히는 수운잡방보다 50~100년 먼저 출간된 책이다. 옥지춘을 포함해 술을 만드는 법이 66가지, 장류를 만드는 법 19가지, 식초 17가지, 김치 37가지 등 229가지의 조리법이 수록돼 있다. 산가요록이 전통주 업계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66가지의 술 주방문이 자세히 적혀 있을 뿐 아니라, 계량 단위가 자세히, 일관되게 기록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술 박성기 대표는 그러나 산가요록 그대로 옥지춘을 빚지 않았다. 산가요록 주방문 그대로 술을 여러 번 빚어보았으나, 술 맛이 안정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표의 말이다.
“산가요록에는 (옥지춘은) 백설기를 끓인 물에 풀어서 밑술로 하고, 찹쌀 고두밥을 덧술로 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개발한 옥지춘은 멥쌀 고두밥을 밑술로 하고 찹쌀 고두밥을 덧술로 한다. 백설기로 밑술을 할 경우, 방앗간에서 대량으로 떡을 쪄와야 하는데, 백설기 상태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반면에 고두밥은 우리 공장 내에서 얼마든지 찔 수 있기 때문에 백설기를 고두밥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술맛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대량생산의 가능성이 보였다.”
밑술 만드는 것 외에 잣을 어떻게, 언제 넣을 것인가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개발했다. 산가요록에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잣을 빻아서 넣으라고 돼 있지만, 잣 껍질은 현대인이 먹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껍질은 부득이 제거해야 했다. 더 문제는 잣을 술 발효의 어느 단계에 넣을 것인가 하는 거였다. 발효 초기에 잣을 넣었더니 잣 향기가 거의 다 휘발돼 버려, 발효가 끝난 술은 잣 향을 느끼기 어려웠다. 또, 잣을 너무 가늘게 빻으면, 씹히는 식감을 줄 수 없어 잣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점도 고민이었다. 그래서 잣껍질을 벗긴 뒤에, 맷돌로 미세하게 갈지 않고, 특수한 칼로 커팅하는 방식으로 성글게 빻아, 씹히는 식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그리고 잣도 술의 발효가 끝난 시점에 넣어 잣 향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했다.
“옥지춘 개발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잣 향이 아낌없이 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잣은 입안에서 씹어야 식감도 좋고 향이 제일 많이 난다. 그래서 옥지춘 한 잔을 따랐을 때, 성글게 다진 잣 부스러기들이 육안으로도 보이고, 입에서 씹히기도 하는 게 좋겠다 싶어, 대충대충 갈아 넣은 것처럼 성글게 갈아서 발효가 끝난 시점에 넣었다. 발효가 거의 끝난 시점에 넣었기 때문에 잣 기름은 거의 생기지 않아 잣의 고소함은 살아있지만 느끼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맛이 깔끔하다.”
박성기 대표가 잣 이상으로 신경 쓴 부분은 술 발효 공정이다. 밑술에 덧술을 한 번 하는 이양주(옥지춘도 이양주다)는 발효 기간이 7~10일 정도면 넉넉하다. 그러나 옥지춘은 발효실 온도를 낮춰, 발효를 의도적으로 더디게 했다. 박 대표는 “옥지춘은 발효(숙성 기간 포함)에 거의 한 달이 걸린다”며 “발효가 더딜수록 술의 풍미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 대표는 어떻게 발효를 억제했을까. 우선 발효실 온도를 낮추었다. 대개 막걸리 발효실은 발효의 최적온도인 25~27도를 유지하는데, 옥지춘 발효실은 20도 정도로 낮추어, 발효의 핵심 역할을 하는 효모의 활동을 억제시킨다. 효모가 천천히 활동함에 따라 쌀의 전분이 당분으로, 또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는 술 발효도 더디게 진행된다. 그래서 발효탱크 내부 온도가 25도 정도로 점차 높아지면(발효가 진행되면 발효탱크 내부 온도가 저절로 올라간다) 발효실 온도를 다시 20도에서 훨씬 더 낮추어 효모 활동이 거의 중단되도록 한다. 이처럼 발효실 온도조절을 통해 술 발효를 중간에 멈추게 하는 것이 옥지춘 발효의 특징이다. 하지만 원하는 시점에 꼭 맞추어 발효를 멈추게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주류 면허 발급 기관인 국세청에 신고한 옥지춘 알코올 도수가 11도인데, 완성한 옥지춘의 알코올 도수가 10도 밑이거나 12도 이상이면 ‘불량품’이 된다. 정한 알코올 도수의 플러스, 마이너스 1도를 넘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효 도중에 알코올 도수가 12도를 넘어버려 제품화하지 못하고 술 전체를 내다버린 경우가 요즘도 더러 있다고 한다. 지금도 박성기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이 ‘알코올 도수 11도 맞추기’다.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옥지춘은 물을 절대 타지 않는 술이다. 산가요록 기록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날물이 들지않게 조심해야 하며’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발효가 끝난 막걸리에 물을 타지 말라는 뜻이다. ‘절대 물타지 않는’ 옥지춘은 그래서 도중에 실패 가능성이 큰 ‘귀한 술’이다.
옥지춘을 빚을 때 또 하나의 리스크가 산미가 다소 높다는 점이다. 신맛을 뜻하는 산미는 술꾼에게는 환영받는 맛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초보 술꾼에게는 다소 부담이 되는 맛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미는 호불호가 명확한 술이라서, 양조장 측에서는 산미가 강한 술은 가급적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가령, 전통 누룩으로 만드는 부산의 금정산성막걸리는 산미가 강하기로 유명한데, ‘신맛이 없으면 제대로 된 막걸리가 아니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지만, 여성층 등 외연을 넓히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게 신맛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옥지춘의 산미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옥지춘 역시 금정산성막걸리처럼 전통 밀누룩으로 만든다. 그래서 누룩의 영향이 클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누룩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게 박성기 대표의 의견이다.
박 대표는 “산미를 더 낮추기 위해 현재 노력 중에 있으며, 다행인 점은 잣의 고소함과 누룩에서 오는 신맛 그리고 곡물의 단맛이 어우러져 신맛이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