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탐구 <38> 日제약 업계 1위 다케다의 변신] 미국에 R&D 거점…글로벌화와 신약 개발 협업으로 승부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2023. 7. 3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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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제약 업계 일본 1위, 세계 9위인 다케다약품공업(武田藥品工業·이하 다케다)은 글로벌화에 성공한 일본 대표 기업이다. 이 회사는 1781년 오사카에서 약재상으로 문을 연 뒤 242년간 한 우물을 파왔다. 그런 다케다가 2000년대부터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우며 글로벌 바이오 제약사로 변신 중이다. 해외 매출 비중이 90%에 이르는 다케다가 ‘새로운 일본(New Japan)’의 선도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케다가 글로벌 기업으로 바뀌고 있지만, 창업자 다케다 초베이(武田長兵衛)의 경영 철학은 2세기 이상 면면히 이어진다. 도쿠가와막부로부터 약 판매상 허가를 받고 사업을 시작한 다케다 초베이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품질의 양약과 한약을 제공하는 것을 최고 가치로 삼았다. 지금 회사의 사시도 ‘인류의 건강과 더 밝은 미래(Better Health, Bright Future)’다. 약재상에서 출발해 매출 4조엔(약 36조4000억원)이 넘는 글로벌 10대 바이오 제약 기업으로 성장한 다케다 스토리를 소개한다.

일본 증시 6대 투자 유망 종목 꼽혀

다케다는 일본, 한국, 미국, 영국 등 세계 80개국에 해외 지사를 두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일본 국내 비중은 10% 남짓이다. 미국이 50%를 넘는 등 해외 매출이 훨씬 더 많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처음으로 2022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에 매출 4조엔을 돌파했다. 10여 년 전부터 굵직굵직한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잇달아 매수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권위 있는 출판사인 고단샤에서 운영하는 경제 월간지 ‘현대 비즈니스’는 7월 초 ‘일본 명품 주식 6개’로 다케다, 오사카가스, 에스엠에스 등을 꼽았다. 다케다의 2023 회계연도 연결 순이익은 전년보다 55% 감소한 1420억엔(약 1조3000억원)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형 M&A 마무리로 악재가 선반영됐다는 게 증시 전문가의 분석이다. 주력 제품인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 치료약 ‘비반세(Vyvanse)’의 라이선스 종료로 수입 감소가 예상되는 반면, 염증성 장 질환 치료약 ‘엔티비오(Entyvio)’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다. 연간 시장 규모가 2000억엔(약 1조82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뎅기열 백신 등 신약 제품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크리스토프 웨버 다케다 사장 1966년 프랑스 출생, 리옹 제1대학 약학·약물동태학 박사, 전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GSK) 프랑스 회장 겸 CEO 사진 다케다

외국인 사장 채용 다케다, 임원 보수도 최고

다케다는 글로벌 바이오 제약 업계에서 늘 화제다. 2014년에는 영국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GSK)에서 20년간 근무한 프랑스인 크리스토프 웨버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외국인 사장은 회사 창업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웨버 사장이 경영 사령탑을 맡은 뒤 회사 공용어로 영어를 채택하는 등 다케다의 글로벌화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항암 전문 제약사 밀레니엄 파마슈티컬, 아리아드 파마슈티컬, 아일랜드의 희귀 질환 전문 제약사 샤이어를 잇달아 인수해 신약 개발 역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7월 초 공개된 2022 회계연도 상장사의 임원 보수도 국내외 투자자와 샐러리맨의 큰 관심을 모았다. ‘상장사 임원 연봉 톱 30’에 다케다 임원이 세 명이나 포함됐다. 웨버 사장은 총 17억2000만엔(약 156억5000만원)으로 전체 3위에 올랐다. 앤드루 플럼프 이사와 코스타 사루코스 이사도 각각 9억7000만엔(약 88억2700만원), 6억9000만엔(약 62억7900만원)으로, 9위와 19위를 차지했다. 임원과 일반 사원 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은 전통적인 일본 제조 대기업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액수다. 일본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보수가 미국이나 유럽 기업에 비해 크게 낮지만, 유명 경영자를 스카우트할 때는 해외 수준에 맞춰 주기 때문이다.

2대 경영 방침, 성장 사업 투자와 주주 환원

다케다의 글로벌화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웨버 사장은 다케다에 영입되기 전, GSK의 유럽, 미국, 아시아 지사에서 20년간 고위 간부로 일한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사장 취임 이후 다양성 있는 직장, 윤리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다케다 기업 문화(one takeda culture)’ 구축과 연구개발(R&D) 체제의 혁신을 추진해왔다.

웨버 사장은 아일랜드의 샤이어를 약 6조엔(약 54조6000억원)에 매수했고, 회사 부채를 대폭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그는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글로벌 바이오 제약 업계에서 다케다의 포지셔닝이 강해졌고, 다른 글로벌 제약 기업과 싸울 만한 수준이 됐다”고 자평했다. 9년 전 그가 합류할 당시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이 1개도 없었지만, 지금은 14개를 보유 중이다. R&D 체제를 혁신한 결과, 40개 이상 의약품이 임상시험 단계에 있고, 그중 90% 이상이 8년 전엔 없던 신제품이다. 직원 수도 입사 당시 3만 명에서 5만 명을 넘었지만, 모든 임직원이 회사의 창업 정신을 공유할 정도로 일체감이 강하다는 게 웨버 사장의 설명이다.

웨버 사장은 5월 말 결산 기자회견에서 성장 시장에 대한 투자와 주주 환원 정책을 특히 강조했다. 이 회사는 올해 15년 만에 주주 배당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1주당 연간 배당액은 188엔(약 1700원)으로 전년보다 8엔 늘어났다. 2019년 샤이어 매수 영향으로 부채가 5조엔(약 45조5000억원)을 넘었으나 자산 매각 등으로 부채를 줄여 주주 배당 여력이 생긴 덕분이다. 대형 투자로 인해 2년 이상 조정받았던 주가는 올 하반기부터 상승 탄력이 붙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한다.

미국 내 R&D 거점 확대로 승부수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 케임브리지에 ‘캔들 스퀘어’가 있다. 사방 1㎞ 구역으로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10분 거리다.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인접한 곳으로 라이프 사이언스(생명과학) 산업의 글로벌 중심지다. 이곳에는 290여 개 생명과학 회사가 밀집돼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 본거지도 여기다. 세계 각국에서 신약의 씨가 될 만한 과학적 발견을 한 스타트업과 바이오 제약 업체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든다. 신약 개발로 성공하려는 인재와 사업가들이 모여들고, 전통적인 제약 대기업들도 거점을 갖고 있다.

다케다는 2008년 바이오 기업 파마슈티컬을 인수하며 캔들 스퀘어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에도 바이오 업체들을 잇달아 사들여 2016년부터 다케다의 R&D 거점으로 만들고 있다. ‘Takeda’의 로고 간판이 붙은 대형 빌딩이 캔들 스퀘어에 줄지어 있다. 다케다의 글로벌 R&D 직원 5500명 중 절반에 이르는 2700여 명이 매사추세츠주에 거주한다. 이 회사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매사추세츠주의 최대 고용주이기도 하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는 ‘신약’ 탄생을 앞둔 연구 성과의 약 70%가 자사만의 연구 기술이 아닌 외부 바이오 기업 등과의 협업에서 나온다. 다케다가 여기에 R&D 거점을 두고, 생존을 위한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이다.

보스턴에 거주 중인 다케다 고위 임원은 “예전에는 거대한 연구소를 만들어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비밀리에 약품을 개발했으나 지금은 오픈해서 외부의 혁신적인 연구기관이나 스타트업과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케다가 올 2월 인수한 신약 개발 회사 님버스 락슈미의 젭 카이퍼 CEO는 “신약 개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스타트업과 제약 대기업이 손을 잡은 것이 사업 전략상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18세기 일본 쇄국 시대의 절정기에 탄생한 다케다가 미국의 최첨단 연구단지를 R&D 거점으로 삼아 300년 장수 기업을 향해 가고 있다. 웨버 사장은 6월 말 오사카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다케다의 13대째 경영 책임자로서 열심히 임무를 수행 중”이라며 “글로벌화 성공 여부가 우리 회사의 미래 생명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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