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 침묵에 대한 인식] 사이먼&가펑클의 ‘침묵의 소리’, 과학이 풀었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2023. 7. 3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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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가펑클(왼쪽)과 폴 사이먼이 1981년 9월 19일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재결합 공연을 하고 있다. 이날 50만 명이 운집했다. 사진 AP연합

1981년 9월 19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50만 명이 모였다. 팝 역사상 최고의 듀오로 불리는 ‘사이먼&가펑클(Simon&Garfunkel)’의 재결합 공연이 열린 것이다. 이날 수많은 사람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경청한 최고의 노래는 ‘침묵의 소리(Sounds of silence)’였다. 1964년 앨범에 실린 이 곡은 두 사람을 세상에 알린 첫 히트곡이었다.

과학자들이 42년 전 센트럴파크에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침묵의 소리가 노래만이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7월 11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인간의 뇌가 침묵과 소리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입증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감각 체계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이먼&가펑클이 1964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침묵의 소리’ 커버. 두 사람을 세상에 알린 첫 히트곡이었다. 사진 위키미디어

착각 실험으로 침묵의 소리 확인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사람들이 완전한 침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침묵을 실제로 인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종의 착각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 연구는 심리학자인 채즈 파이어스톤(Chaz Firestone) 교수와 철학자인 이안 필립스(Ian Phillips) 석좌교수가 같이 진행했다. 침묵의 인지가 과학과 철학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파이어스톤 교수는 “철학자들은 침묵이 문자 그대로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했지만, 이 질문을 직접 겨냥한 과학적 연구는 없었다”며 “우리는 뇌가 소리 같은 착각을 침묵에서도 얻을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침묵을 듣는다는 증거라고 가정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실험은 특정 소리를 더 길게 인지하는 착각을 유도했다. 연구진은 인터넷으로 실험에 참가한 1000명에게 계속 이어지는 음이 중간에 끊겼다가 다시 나오는 두 개의 음보다 길거나 짧은지 물었다. 두 음의 전체 길이는 같았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연속음이 두 개의 불연속음을 합한 것보다 더 길게 들린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이 착각을 거꾸로 유도했다. 식당이나 시장, 지하철 소리를 들려주면서 중간에 침묵을 넣었다. 참가자들에게 소음 중간에 있는 연속된 침묵 또는 끊어진 두 개의 침묵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물었을 때도 앞선실험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연속적인 침묵이 불연속적인 침묵보다 더 길다고 인식했다. 그렇다면 우리 뇌는 소리와 침묵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인지한다고 볼 수 있다.

칵테일 파티에서 상이한 주파수의 소리가 들리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뇌는 여러 목소리가 섞여 소음처럼 들려도 입력된 청각 신호 중 특정인의 소리만 골라 처리할 수 있다. 사진 뉴런

소음 가득한 곳에서도 침묵 인지

두 번째 착각 실험은 오르간 연주와 엔진 소음을 동시에 들려주다가 도중에 한 소리를 멈추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실험 네 번은 중간에 오르간이 침묵하고 엔진은 계속 소리를 냈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오르간이 계속 연주되는 동안 엔진 소음이 사라졌다. 한 소리가 사라지는 시간이 다섯 번 모두 같았지만, 사람들은 마지막 침묵이 처음 네 번의 침묵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고 답했다.

이번 실험은 이른바 ‘이상한 착각(oddball illusion)’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이 착각은 우리 뇌가 드물거나 반복되지 않는 자극이 일반적이거나 반복되는 자극보다 더 오래 지속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오르간 연주가 네 번 반복해서 멈추는 침묵보다 마지막에 엔진 소음이 사라지는 드문 침묵이 더 오래 지속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 역시 뇌가 침묵을 소리와 같은 방식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두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사람들이 침묵에 기반을 둔 착각을 소리 기반 착각과 유사하게 인지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우리 뇌가 소리와 침묵을 비슷하게 처리한다는 말이다. 이안 필립스 석좌교수는 “우리가 듣는 것 중 소리가 아닌 것이 하나 이상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리가 사라질 때 발생하는 침묵”이라며 “소리의 청각 처리에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침묵에서도 나타나며, 이는 우리가 실제로 소리의 부재도 들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미국 UC 산타크루스의 철학자인 니코 올란디(Nico Orlandi) 교수는 ‘사이언스’에 “이번 연구는 침묵이 소리와 같은 방식으로 청각 체계에서 처리된다고 가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같은 방법으로 시각이나 촉각 자극의 부재도 인지하는지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뇌가 감각 자극의 부재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소음 속 연인 목소리만 듣는 뇌

뇌는 들리지 않는 침묵의 소리도 감지하지만 떠들썩한 파티에서 연인의 목소리만 골라 듣는 놀라운 능력도 보였다. 1950년대 이후 과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이른바 ‘칵테일파티 문제’다.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연구진은 지난 2013년 국제 학술지 ‘뉴런’에 뇌에는 듣고자 하는 목소리만 통과시키는 일종의 필터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간질 환자 6명에게 미리 승낙을 받고, 수술을 위해 두개골을 절개한 상태에서 뇌 표면에 전극을 이식했다. 수술 후 연구진은 환자들에게 두 사람이 각각 9~12초 동안 이야기하는 동영상 두 편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중 한 명의 말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이때 전극이 보내온 뇌파를 소프트웨어로 해독하면 뇌가 어느 사람의 말에 반응하는지 알 수 있는 연구였다.

분석 결과, 예상대로 뇌의 청각 신호 처리 영역은 관심을 기울인 목소리뿐 아니라 무시한 목소리에도 똑같이 반응했다. 일단 감각 차원에서는 두 목소리가 똑같이 뇌로 전달된다는 뜻이다. 차이는 전두엽 피질의 언어중추에서 나타났다. 여기에선 관심을 기울인 목소리에 해당하는 뇌파만 나타났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신호는 더 강해졌다. 연구진은 “뇌에 주변 소음은 걸러내고 관심 있는 목소리만 처리하는 영역이 있다는 첫 증거”라고 밝혔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사이먼&가펑클의 ‘침묵의 소리’처럼 말이 안 되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 그룹이 있었다. 1995년 남성 3인조 그룹 ‘Re.f’의 ‘고요 속의 외침’이다. 2003년까지 방영된 KBS ‘가족오락관’에서 같은 이름이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헤드폰을 쓰고 옆 사람이 말한 글자를 전달하는 게임이 됐다. 최근 tvN 예능 ‘신서유기’에도 등장해 인기를 끈 게임이다. 어쩌면 헤드폰에 들리는 소음과 앞사람의 침묵이 청각에서 같이 처리되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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