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의 경제 프리즘 <14>] 최저임금 인상 행진과 빨라지는 식당·매장 무인(無人)화
#1│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해군 주최의 학술 행사에서 고든 플레이크라는 학자를 만났다. 그는 필자가 20여 년 전 한 민간 경제 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 연구소들과 공동 연구를 모색할 목적으로 찾아갔던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선의로 포장된: 북한에서의 비정부기구(NGO)들의 경험’이라는 저서를 선물로 줬었다. 그 책 제목은 미국 속담인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의 선의가 때로는 의도와 정반대로 다른 이를 최악의 상황으로 이끈다는 말이다. 그 책을 계기로 그 속담을 알게 된 필자가 이후 기고와 강연에서 당시 정부의 경제 및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를 인용한 탓인지, 이후 국내에서도 이 속담이 회자하곤 했다.
#2│지난 주말에도 지인들과 만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더니 ‘서빙 로봇’이 음식을 날라 왔다. 요즘 이런 로봇을 부쩍 많이 본다. 그런데 이런 ‘로봇’이라는 말은 그 기원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1920년 카렐 차페크(Karel Čapek)란 체코 작가가 ‘R.U.R.’이란 희곡을 출간했다. 이 작가는 부제(Rossum’s Universal Robots)를 영어로도 풀어서 붙였다. 즉 ‘로썸의 범용 로봇들’이라는 뜻이다. ‘로썸’은 극 중 인물의 이름이며 ‘로봇’은 ‘강제 노역’이란 의미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왔다. 극 중에서는 로썸이 발명한 인조인간의 통칭이다. 이 희곡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로썸이 발명한 인조인간인 로봇이 대량생산되면서 수가 늘어나자 반란을 일으켜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 문제는 자신들을 더 만들 비법을 아는 사람도 다 죽여 없애 로봇들도 더 이상 번성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작가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면서 가져올 우울한 미래를 그린 것이다.
#3│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은 2015년 4월 시간당 9.47달러(약 1만2017원)였던 최저임금을 11달러(약 1만3959원)로 올린 후, 9개월 뒤엔 13달러(약 1만6497원), 다시 1년 후엔 15달러(약 1만9035원)로,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58%를 인상했다. 2017년 6월 워싱턴주립대는 최저임금이 11달러에서 13달러로 오를 때 일자리가 6.8% 줄었다며, 근로 시간이 대폭 줄면서 연간 임금이 오히려 125달러(약 15만8625원)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만약 이 연구가 11~13달러(약 1만3959~1만6497원) 구간이 아니라 9.47~15달러(약 1만2017~1만9035원)의 인상 구간 전체에 대해 이뤄졌다면, 이런 결과는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소득 주도 성장’을 경제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임금(소득)’을 올려 소비를 활성화하면 이것이 투자를 촉진하고 다시 임금(소득)이 오를 것이라는 논리다. 이런 이론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실제로 성공한 적이 없어, 당연히 정통 경제학 이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세율과 세수에 관한 ‘래퍼 커브’ 이론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아서 래퍼가 “임금 상승은 성장의 결과”라며 “그렇게 멍청한 이론은 처음 들어보았다”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말과 마차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가볍게 무시되었다. 소득을 올리는 첫 번째 단계로 최저임금 인상이 추진되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년 동안 16.4%, 10.9%의 급격한 인상률을 기록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하며 일자리 창출을 직접 챙기겠다는 공약이 무색하게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전이었는데도 ‘고용 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 수부터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사실 이는 정통 경제학에서는 예견된 일이었다. 필자가 가르치는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는 노동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임금 수준보다 최저임금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실업률도 같이 높아지는 것을 그래프로 잘 보여준다. 이는 아마도 미국 연방정부가 2009년 정해진 7.25달러(약 9200원)의 최저임금을 이후 한 번도 올리지 않았으며 50개 주 중 20개 주가 이 임금 기준을 지키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2020년부터 팬데믹으로 경제가 추락하자 최저임금 상승세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2.87%, 그다음 해에는 1.5%로 낮아지더니, 2022년에는 5.05%로 인상률이 다시 높아졌다. 이는 결국 이 정권 5년간 연평균 인상률을 7.3%로 만들며 박근혜 정부 7.4%와 엇비슷하게 마무리됐다. 진보 진영에서는 김대중(9.0%), 노무현(10.6%), 이명박(5.2%) 등 이명박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부 중 최저임금 인상률이 오히려 가장 낮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인상 기조는 새 정부 들어 주춤한 모양새지만 상승세를 유지했다. 내년 최저임금은 2.5% 오른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됐다.
이런 지속적인 인상 추세는 문제없는 것일까. 당연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첫째, 진보 진영의 주장대로 지난 정부의 인상률이 그전 정부의 것과 별 차이 없거나 오히려 낮다는 것은 ‘통계적 착시’다. 물건 한 개가 100원이던 시절 10% 인상은 10원이 오른 것이지만 1만원이 된 시점에서 10% 인상은 1000원을 의미한다. 같은 인상률이라도 인상액의 절대 규모가 큰 만큼 노동 현장에 가해지는 임팩트는 훨씬 크다는 말이다. 더 이상 높은 인상률이 유지되기 어려운 이유다. 둘째, 이미 절대적 수준으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높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는 ‘주휴수당’까지 감안하면 이미 시간당 1만원은 훌쩍 넘긴 데다 달러 환산 기준으로도 10달러(약 1만2690원)를 넘어선 셈이다. 올해 초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전 세계 28위인데, 최저임금 수준은 13위였다. 이는 소득에 비해 최저임금이 과하게 설정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도한 최저임금은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강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탓으로 농산물, 에너지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른 것도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요즘 1만원으로도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버겁다. 교통 요금 등 서비스 요금 상승 추세가 꺾이지 않는 것은 이미 과도하다고 지적되는 최저임금과 관련성을 부정하기 힘들다. 셋째, 고용을 줄이는 것 외에 기업, 자영업자들의 대응은 로봇 도입이나 무인화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무인 편의점은 6월 말 기준 전국에 3530곳으로, 2019년 말 대비 17배 늘었다. 음식점 무인 주문기 수도 2019년 5479대에서 2022년 2만1335대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당연히 정통 경제학 이론대로 실업 증가를 의미한다. 무인화 기기도 로봇의 일종인 만큼 차페크의 희곡처럼 로봇이 인간(일자리)을 죽이는 모습이라 씁쓸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업종별 또는 지역별로 차등을 두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의 전권을 쥐고 있는 현행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노동자 측 9명, 사용자 측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이루어진 이 위원회의 실제적인 캐스팅 보트는 공익위원들이 행사하게 돼 있는 구조다. 문제는 이들의 대부분이 전 정부에서 임명된 진보 성향이라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원들은 너무 강한 선의로 무장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공익위원 선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객관성이 확보되는 방식으로 바꾸든지,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아예 공익위원을 없애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종 조율과 임금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방식도 고려해 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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