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릴 장소 필요"vs"상권 침해"…철거된 추모공간 두고 '설왕설래'

김예원 기자 2023. 7. 3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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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극단선택·신림역 흉기난동 등 추모공간 일주일만 철거
전문가들 "치유 위해 추모공간 있어야…공간 사회적 합의 필요"
2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현장에서 한 시민이 이번 사건으로 희생 당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2023.7.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신림동 흉기 난동,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 등 최근 도심 곳곳에서 비극적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만들어진 추모공간이 사건 발생 일주일을 기점으로 모두 철거됐다.

이들 사건이 학교, 유흥골목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발생한 만큼 빠른 일상 회복을 위해 현장을 정리했다는 설명이지만, 일각에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었던 만큼 좀 더 추모 분위기를 이어갈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충격에 빠진 시민들의 집단 치유 과정에 있어선 추모공간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면서도 추모가 일상과 공존을 이루기 위해선 다소 절제된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3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내부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설치 사흘만인 23일에 중단했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분향소도 28일을 끝으로 운영을 멈춘 상태다. 교육청은 "방학 중 방과후 교실, 돌봄 교실 등을 이유로 내린 부득이한 결정"이라고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추모공간이 모습을 감춘 건 신림동도 마찬가지다. 21일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직후 신림동 먹자골목엔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를 기리는 포스트잇과 흰 국화꽃이 가득 놓였지만 28일 자취를 감췄다. 상권이 침체되고 가짜 모금함 사건 등이 일어나자 상인회 측에서 현장 정리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후 추모공간을 축소하거나 현장을 정리하는 건 일상 회복 과정에서 당연한 수순이지만 일각에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인 만큼 좀 더 추모 분위기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골목은 사건 발생 후 약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추모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시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서울 중구의 합동분향소도 시민 방문이 가능하도록 추모공간을 이어오고 있다.

이태원 유가족들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추모공간 존치와 관련한 서울시와의 협의를 묻는 질문에 "서울시가 행정 대집행을 강행하거나 분향소 철거를 시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시민들이 더 많이 방문하고 지지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 신림역 피해자 추모를 위해 현장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렸다는 이씨(26)는 "상인분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니 이해는 간다"면서도 "지난주에 시간이 나지 않아 일부러 주말 시간을 비웠는데 추모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서이초등학교 교사 분향소에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분향소를 이날까지만 운영한다고 밝혔다. 2023.7.2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사고 및 각종 참사와 관련해 시민들의 슬픔을 치유하고 진상규명 등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려면 추모공간이 충분한 기간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모 장소는 사회적 참사 또는 사고에 대한 집합적 기억을 공유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구성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면서 "사건이나 각종 참사의 의미를 토론하고 서로 다 해석을 경합하기 위해선 합의된 장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장소와 추모공간이 분리되는 순간 아무래도 개개인이 현장에서 서로와 공유하는 슬픔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현장에서 애도 공간을 형성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도심 속 추모공간의 경우 애도와 일상이 교차하는 지점인 만큼 상호 간 배려를 위해 절제된 추모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하면 집단 차원에서 이를 기억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있어야 빠른 치유가 가능하다. 추모공간이 그 역할을 하는 셈"이라면서도 "다만 이들 공간이 일상과 밀접한 장소에서 조성되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선 절제된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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