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43> 감동의 US여자오픈 준우승 신지애 인터뷰] “내년 US여자오픈선 한 계단만 더 오를 것…오직 골프만 생각”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선수와 팬에게 신지애(35) 프로는 존경의 대상이다. 세계 1위를 지낸 선수가 일본에 건너와 10년간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지금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인간으로서 대단한 절제와 노력, 지혜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료 선후배들이 ‘지애상’이라고 부르면서 신 프로에게 그 비결을 묻고 따라 하려고 한다. US여자오픈에서 보여준 대단한 경기력에 많은 일본 팬도 감동하였다.”
일본의 국제 전문기자로 한국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다치카와 마사키(76) 기자는 최근 US여자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신지애에 대한 열도의 평가를 이렇게 전했다. 신지애의 매니지먼트 회사 KPS의 대표인 김애숙(60)씨는 1985년부터 JLPGA 투어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신지애를 비롯해 많은 한국 선수의 일본 정착을 도왔다. 그는 “일본이 한국과 가깝다고는 해도 타지 생활이 쉽지 않고 문화도 다른 게 많다”며 “신 프로는 골프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일본 선수들의 본보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7월 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파72)에서 막을 내린 제78회 US여자오픈(총상금 1100만달러)에서 신지애는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했다. 4년 만에 출전한 이 대회에서 신지애는 전성기 못지않은 정확성과 집중력을 앞세워 우승 경쟁을 벌이며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신지애 클래스는 영원하다”며 팬들 반응이 뜨거웠다. 신지애는 2013년까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11승을 올리고 2014년 미국을 떠나 일본 투어에 전념했다. 마지막 라운드에 무서운 집중력으로 승부를 뒤집곤 해 한국과 미국에서 ‘파이널 퀸(Final Queen)’이라 불리던 신지애가 더 약한 무대로 피하는 것 아니냐는 억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2010년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신지애는 “살기 위해서 떠났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손바닥 수술과 허리 부상 등에 시달렸고, 스윙 교정을 시도했다가 감각을 잃어 부진했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는 일본에서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선택했다. 몸에 필요한 음식을 아주 천천히 먹는다. 경기를 앞두고는 한 시간에 걸쳐 식사한다. 일본에서 지내는 도쿄 집에는 접이식 침대 등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만큼 살림이 없다. “예전엔 짐을 보관하는 하우스(house)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마음을 내려놓는 홈(home)을 갖게 됐다”고 했다.
“첫 해외 도전은 누구나 힘든 거 인정하고 경험 쌓아야”
2018년 일본 투어 사상 최초로 한 시즌 메이저 대회 3승 기록을 세웠고, 이듬해 1년 평균 타수 70타 벽을 처음 깼다. 현재 상금 순위 2위인 그가 1위에 오른다면 한·미·일 3국에서 상금왕을 차지해 본 최초의 선수가 된다. 신지애는 프로 통산 64회 우승을 기록 중이다. 한국 투어 20승, 일본에서 28승, 미국에서 11승을 올렸다.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한 그는 올 시즌 일본 투어 2승을 올리며 상금왕 자리를 놓고 열 살 이상 어린 후배들과 경쟁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 여자골프는 한 수 아래로 여겨졌다. 일본 선수들의 스윙은 개성이 있지만 제각각이다. 기본기에선 한국 선수들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무렵부터 하타오카 나사(24)를 비롯한 황금 세대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신지애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한국 선수들이 체력이 뛰어나다 보니 연습량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일본 선수들 또한 체력이 많이 오르며 연습량이 늘어가고 있다. 연습량이 많다면 당연히 결과는 따라오게 돼 있다. 요즘엔 다르다는 느낌보단 점점 비슷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최근 한국 여자골프는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국내 투어 대회 수도 많고 상금도 올라가지만 LPGA 투어와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성적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와 미국, 유럽 선수들 실력이 빠르게 올라오지만, 한국 여자골프는 정체기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신지애는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모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여 최상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다만 예전과 비교하면 해외 도전이 적은 것은 아쉽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도전하려는 마음 또한 중요하다. 주변에서 가자마자 잘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도전하는 마음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누구나 처음은 어렵다. 모두 그것을 인정하고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지애는 같은 세리 키즈인 박인비, 최나연, 이보미, 김하늘, 이정은5(등록명), 유소연과 친목 모임 ‘V157(당시 이들의 승 수를 합한 숫자)’을 함께한다. 최나연과 이보미, 김하늘은 이미 은퇴했다. 신지애는 “여전히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마음을 신기하게 생각해 주고 응원한다”며 “모두 다 진심이고 열정적이었지만 내가 조금 더 시간이 길어졌을 뿐이다”라고 했다.
신이 만든 코스 페블비치와 찰떡궁합
다시 페블비치 이야기. 대회가 열린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는 해안선을 따라 조성돼 아름다운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 ‘신이 만든 코스’라 불린다. ‘골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83·미국)는 “내 생애 딱 한 번의 라운드 기회가 남았다면 페블비치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신지애는 “꿈에 그리던 페블비치에서 경기할 수 있어 매우 행복했고, 영광이었다”며 “나에겐 너무 찰떡과도 같은 코스였다. 오랜만에 접하는 잔디와 작은 그린 때문에 쇼트게임에 주력해 연습했고 충분한 연습을 했기에 대회 때 겁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사실은 할머니께 페블비치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6월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번 준우승으로 내년 US여자오픈 출전권을 확보한 그는 “나의 US여자오픈 개인 통산 최고 기록(준우승)을 새로 썼으니, 내년엔 한 계단만 더 올라가 보길 기대한다”고 했다. 신지애의 이전 US여자오픈 최고 성적은 2010년 공동 5위였는데 13년 만에 넘어섰다.
중3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읜 신지애는 함께 중상을 입은 동생들을 돌보며 피눈물 나는 훈련을 했다. 155㎝ 작은 키와 어려운 가정 형편을 지독한 연습과 강한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신지애는 “최근에 무엇을 더 한 건 없다. 늘 반복해서 노력하기 때문에 차곡차곡 쌓아온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변함없이 어디서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계획은 그뿐이고 결과는 내가 한 만큼 따라오게 하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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