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글로벌 게임잼 in 전북’, 게임 개발을 향한 열정의 2박 3일
[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23년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전주대학교 스타센터 하림미션홀에서 전라북도콘텐츠융합진흥원(이하 전북콘텐츠진흥원)과 전주대학교(이하 전주대)가 주최하고, 전북글로벌게임센터와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융합대학사업단이 주관하는 ‘제1회 글로벌 게임잼 코리아 인 전북(이하 글로벌 게임잼)’이 열렸다. 2박 3일간 열린 이번 글로벌 게임잼은 한국과 일본, 미국, 네덜란드, 중국에서 모인 학생, 인디게임 개발자, 게임업계 종사자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게임잼(Game Jam)은 게임 개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 정해진 시간 동안 프로토 타입의 간단한 게임을 개발해 보는 행사다. 1박 2일에서 2박 3일, 길어야 1주일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이전에는 서로 몰랐던 기획자, 개발자, 아티스트(디자이너) 등이 모여 즉석으로 팀을 결성해 개발하기 시작한다. 짧은 기간 동안 만족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철야는 필수다. 소위 말해 모든 것을 불태운다. 게임잼 마지막 날, 완성한 게임을 발표할 때는 씻지도 못한 더벅머리 청년이 슬리퍼를 끌고 나타날 정도다.
때문에 현업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개발자나 기획자, 아티스트 보다는 아마추어들이 많이 참여한다. 그만큼 부담도 적다. ‘게임’ 하나만을 향해 앞을 달려가는 젊은이들의 축제에 가깝다. 마지막 작품을 발표할 때도 각 팀이 개발한 게임에 점수를 매겨 순위를 나누기 보다, 열심히 노력한 지난 시간에 보상을 안겨주는 시간에 가깝다. 혹자는 게임잼을 ‘개발자들이 모여 노는 문화 행사’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논다’라는 의미는 술을 마시고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 아니다. 게임 개발자에게 놀이란, 게임을 개발한다는 뜻과 같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참가자들이 만난 글로벌 게임잼
첫째 날(28일), 글로벌 게임잼 개회식에는 전북콘텐츠진흥원 최용석 원장, 전주대학교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사업단장 한동숭 교수,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황성익 회장,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정석희 회장 등 행사 관계자가 모여 참가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전북콘텐츠진흥원 최용석 원장은 “이번 게임잼을 통해 여러분이 처음 게임을 개발했던 당시의 벅참과 열정을 다시 한 번 느끼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글로벌 게임잼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수 있도록 단순히 게임만 개발하는 행사로 준비하지 않았다. 국제 문화 교류 및 소통의 장으로 이번 게임잼을 즐겨주길 바란다”라고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서 이번 글로벌 게임잼 개발 주제 ‘평화’를 공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세대 간의 갈등 등 사람들이 일상에서 서로 부딪히는 일을 해결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환영 인사와 주제 공개 후, 바로 팀 구성으로 이어졌다. 처음 한 장소에서 얼굴을 마주한 참가자들의 서먹했던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운영진이 나섰다. 서로 친한 참가자끼리만 팀을 구성하지 않도록 개입했다. 일본, 미국, 네덜란드, 중국 등 해외 참가자와 가장 많은 한국 참가자를 적절하게 엮어 팀을 구성했다.
네덜란드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글로벌 게임잼에 방문한 위트레흐트 예술대학교(HKU)의 Niels Keetels 교수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수차례 게임잼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했던 그의 경험과 노하우가 빛났다. 그의 인솔에 따라 점차 게임 아이디어를 떠올린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토론하기 시작, 팀별로 나눠 준 아이디어 게시판에 포스트잇이 붙어 나갔다. 이렇게 구성된 총 팀 수는 보드게임 개발 3팀, 모바일 및 PC 게임 개발 17팀이었다.
본격적인 게임잼의 막이 올랐다. 사실 첫째 날은 대부분 대화와 소통의 시간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아이디어를 맞춰가는 시간이다. 대충 넘어가는 일은 없다. 작은 생각의 차이는 완성하고자 하는 게임의 방향과 퀄리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알았겠지?’, ‘이건 넘어가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칫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때문에 철저한 검증, 다시 한번 체크하는 과정은 기본이다.
참가자들은 금세 서로의 문제를 발견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다. 하지만, 해결책은 금방 등장했다. 각자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켠 뒤, 구글 번역과 네이버 파파고를 화면에 띄웠다. 서로의 언어를 영어로 번역, 대화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2박 3일 동안 글로벌 게임잼을 취재하며, 참가자들의 노트북 화면에서 가장 많이 본 화면이다.
게임 개발자라는 꿈을 쫓아 참가한 고등학생들
조용하지만 치열한,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게임잼 현장에서 3명의 고등학생을 만났다. 전라북도 완주군에 위치한 한국게임과학고등학교(이하 한국게임과학고)에 재학 중인 2학년 박승현군과 3학년 송정기군, 이도현군이다.
IT동아: 행사장에서 워낙 동안의 얼굴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나이를 듣고 놀랐다. 고등학교 2학년, 그리고 3학년이라고 들었다. 주변 참가자는 대부분 최소 대학생, 현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인데… 어떻게 글로벌 게임잼에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송정기 학생: 한국게임과학고에는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다. 때문에 이번 게임잼처럼 게임 개발 관련 행사 소식을 꾸준히 접할 수 있다. 학교 수업을 끝낸 후 방과 후에 남아 유니티, 언리얼 등 게임 엔진 수업을 듣기도 한다.
IT동아: 왜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지 궁금하다.
이도현 학생: 모두 게임을 좋아한다. 정말, 많이 좋아한다(웃음). 그저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중학생 때부터 게임 관련 학교를 찾았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혼자서 게임 개발을 공부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게임 개발을 배울 수 있는 한국게임과학고 진학을 결심했다. 부모님도 많이 응원해 주시고… 감사할 따름이다.
IT동아: 이번 글로벌 게임잼에 가장 어린 것 같은데… 박승현군에게 듣고 싶다. 지금 팀에서 어떤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지.
박승현 학생: 모바일 캐주얼 게임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스마트폰 화면 아래에서 위로 굴러가는 커다란 돌이 나타난다. 돌은 스마트폰에 탑재된 자이로센서를 이용해 좌우로 기울이며 움직일 수 있고, 굴러가는 길 앞에 등장하는 장애물(총, 탱크, 미사일 등 전쟁 무기)을 터치해 파괴하는 게임이다. 평화라는 주제에 맞춰 아이디어를 모아 개발한 게임이다.
IT동아: 하하. 알겠다. 팀명이 ‘4+1’이다. 뭔가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은데.
송정기 학생: 처음 이곳에 도착해 평화라는 게임 개발 주제를 듣고, 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형 2명과 만나 팀을 구성했다. 팀원을 찾을 때 형이고 누나여서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에 빠져 있다가… 자연스럽게 모였다(웃음). 그리고 각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얘기를 나눴는데, 개발자만 4명이었다. 다른 1명도 개발자이자 기획자였고, 그래서 개발자 4명에 기획자 1명이라는 의미로 팀명을 지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이틀째인데 게임 개발 속도 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웃음). 다소 투박한 굴러가는 돌과 게임 내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이제부터 보완해야 할 숙제다. 어디서 좋은 디자인을 좀 얻어와야 하나 고민 중이다.
IT동아: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이라는 나이다. 본인들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지만, 아직은 어린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잼과 같은 행사에 평소에도 참여하는지 궁금한데.
박승현 학생: 이번 게임잼은 총 4번째 참여하는 행사다. 청소년만 참여하는 게임잼, 비대면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게임잼 등을 경험했었다.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는 꿈을 쫓아 공부하고 있다. 때문에 게임 개발자에게 게임잼 참여는 자연스럽다. 그리고 게임잼은 경험을 쌓기에 정말 좋다. 현직에서 일하는 형, 누나들에게 조언도 들을 수 있고, 몰랐던 지식도 쌓을 수 있다. 잠도 재워 주고, 밥도 준다(웃음). 어렵고 힘들지만, 모르는 것을 하나씩 배우며 게임을 만들어 간다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낀다.
팀 간의 경쟁? 협업과 협력을 위해 열린 소통의 시간
이튿날(29일)이 밝았다. 전주대 스타센터 하림미션홀의 모습은 어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참가자들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딩에 들어간 개발자와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 아티스트의 눈이 매섭다. 어떻게든 짧은 시간 안에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한 무언의, 고통의 시간이다.
다름 팀의 참가자에게 서슴없이 부탁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들어오는 시간이다. 원하는 코딩을 찾기 위해서라면, 평소 조용한 개발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테이블 중간에 붙여 놓은 초기 아이디어를 확인하고, 다시 게임 개발을 위해 빠져든다. 테이블 위 ‘핫식스’ 빈 캔의 수가 쌓이기 시작하고, 집중하는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야속한 시간은 체감상 더 빠르게 지나간다. 곧 이어 중간 평가를 위해 교수님들이 다가오지만 개발은 멈출 수 없다.
참가자에게 교수님들의 중간 평가 심사는 오히려 기회다. 현재 개발 점수가 몇 점인지는, 심사 평가를 잘 받기 위한 포장 등은 관심 없다. 다가오는 교수님들을 바라보는 참가자의 눈에는 그들이 심사위원이 아닌 당장 막혀 있는 코딩을 풀어줄 수 있는 선배다.
저녁 10시. 방학을 맞이한 캠퍼스는 조용한 어둠에 물든 시간이지만, 전주대 스타센터 하림미션홀의 불은 꺼질 생각이 없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참가자들의 마음은 오히려 가열차다. 아니, 다급하다. 말은 빨리지고, 목소리는 높아진다. 내일 오전까지, 어떻게든 마무리하기 위해 남은 모든 것을 쏟아야만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용히 자리를 비운 참가자의 노트북에는 이러 문구가 적혀 있었다. ‘10시까지 파업’, ‘10시 10분까지 기절’이라는 글을 남기고 장렬히 전사한(?) 참가자는 행사장 뒤 휴식 공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제1회 글로벌 게임잼이 남긴 것들
마지막날(30일) 아침이 밝았다. 최종 심사를 앞둔 참가자들의 모습은, 어딘가 나사 한두개쯤은 빠져 있다. 무박 2일에 가까운 가혹한 일정을 보낸 여파다. 행사장 뒤편의 휴식 공간에 처절한 밤을 보낸 참가자들이 몰려 있었고, 팀별로 나뉜 테이블 곳곳에도 엎드려 있는 참가자들의 뒷모습이 아련하다.
최종 심사 시간 공지와 함께 참가자들은 끝까지 게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바쁜 손을 움직였다. 스스로 개발한 게임을 소개하기 위한 자료를 다듬고으며, 미처 놓친 것은 없는지, 지나친 것은 없는지 체크한다. 드디어 다가 온 최종 심사. 채점표를 든 네덜란드, 일본, 한국 등의 대학교수님들이 참가자 테이블을 돌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쏟은 참가자들의 모습은 오히려 개운하다. 심사표에 점수를 적는 교수님들의 손도 즐겁다. 일반적인 공모전이나 시상식을 앞둔 삼엄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게임을 사랑하고, 게임을 즐기며, 게임을 개발하는 관계자들의 유대감만이 넘친다. 게임 잼이라는 독특한 행사가 지닌 특징이다. 게임 심사가 아닌 서로 완성한 게임을 전시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심사 교수와 옆 테이블의 다른 참가 팀원들이 함께 모여 2박 3일 동안 완성한 게임을 플레이하며 즐기는 시간에 가깝다.
심사를 끝내고 이어진 시상식에는 전북콘텐츠진흥원 최용석 원장, 전주대학교 실감미디어혁신융합대학사업단 한동숭 단장,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서태건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결과적으로 참가자들은 시상식에서 총 9개의 단체상과 3개의 개인상을 받아갔다. 후한 시상식이고, 서로를 축하하는 박수가 이어졌다. 결과 보다는 과정을, 과정 보다는 서로의 경험을, 경험보다는 대화와 소통이라는 네트워크를 우선한 글로벌 게임 잼의 목표가 담긴 모습이다.
특히, 시상 결과는 다른 일반적인 공모전과 달리 참가자들이 직접 서로에게 투표한 인기 점수를 총점에 합산했다. 참가자들이 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총 9개팀과 3명의 개인 참가자가 수상하는, 후한 결과를 낳았다.
전라북도콘텐츠융합진흥원장상은 30Seconds팀의 'Stop it!', 전주대학교총장상은 Walkable Subway팀의 'Commute', 한국게임학회장상은 4K팀의 'Peaceful Wings',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조직위원장상은 Happy Spaghetti 팀의 'Pieces of Us',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상은 Only one팀의 'The Smallest Piece',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상은 SWEET MACARON FROG!팀의 'Peace of Nature', 전주대학교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사업단장상은 Chef.P팀의 'Peace Desu', 한국게임미디어협회장상은 SPEED팀의 'Give me Sandwich'가 수상했다. 특별부문이었던 보드게임 개발부문에서는 '423'팀이 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장상을 수상했다.
개인부문 협력상은 전주대학교에 재학중인 중국의 Liu Tianfu 참가자, 인기상은 네덜란드 HKU의 Kris de Haas 참가자, 우정상은 우리나라의 한국게임과학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송정기 참가자가 수상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2박 3일간 진행한 ‘제1회 글로벌 게임잼 코리아 in 전북’은 참가자와 행사 관계자 모두가 함께하는 소통과 네트워크의 장이었다.
이날 폐회식에 방문한 전북콘텐츠진흥원 최용석 원장은 “글로벌 게임잼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최했음에도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개발자, 고등학생, 대학생 등 많은 참가자가 참여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을 테지만, 게임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우리가 왜 게임을 개발하고, 좋아하는지 깨닫는 시간을 가졌길 바란다”라며, “수상 여부를 떠나서 글로벌 게임잼에 참가해 소통해 본 경험 자체만으로 수상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가자들의 열정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도 더 다양한 지원 약속하며 참가자들이 능력을 빛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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