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곳곳에 임시기둥 90개 … 주민들 "불안해서 못살겠다"

정석환 기자(hwani84@mk.co.kr), 김유신 기자(trust@mk.co.kr) 2023. 7. 3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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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별내 '철근 누락' 아파트 가보니
"입주한지 1년 지났는데
주차장서 차 빼라니 분통"
말 안하지만 집값 걱정도
임대아파트 다수 부실공사
전세 사기 이어 부실아파트
서민들 피해 집중 우려도

31일 찾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퍼스트포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이 단지는 시공 과정에서 보강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이날 발표한 철근 누락 공공주택 단지 현황에 따르면 이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은 무량판 구조로 시공됐다. 총 302개소 기둥 중 126개소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이 단지 지하주차장에서는 '잭서포트(Jack Support)' 설치 공사가 한창이었다. 잭서포트는 하중을 많이 받는 곳에 설치해 하중이 몰리는 지점을 보강하는 지지대다.

현장을 찾은 시공사인 SM삼환기업 관계자는 "지하 1층과 지하 2층 보강 공사에 앞서 가설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현장 관계자는 "9명의 작업 인력이 나와서 약 90개 잭서포트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분주한 지하주차장 공사 현장과 달리 입주민들이 다니는 지상부는 조용했다. LH와 SM삼환기업의 책임을 묻는 현수막은 아직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의 입주민은 격앙된 반응보다는 말을 아끼는 모양새였다.

입주민 A씨는 "오전에 공사 현장을 다녀왔는데 입주한 지 1년이 지난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빼야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녀들과 단지 내 어린이집을 가던 입주민 B씨는 "많이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며 "보강 공사를 통해 빠르게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들은 아직 조용한 편"이라며 "입주민들이 피해자인 부분은 명확하니 LH와 SM삼환기업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입주민 공식 카페에서는 확실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진행된 '잭서포트 설치 공사'와 관련해 한 입주민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시적으로만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기둥 보강 방법에 대해 입주민과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누구도 보강 공사를 일방적으로 단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입주민 카페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과 달리 단지에서 만난 주민들이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파트 가격에 대한 우려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단지는 전매제한이 풀렸고 실거주 의무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실거주 의무가 풀린 뒤 매물이 일부 나올 텐데 입주민 입장에서는 단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퍼지는 게 부담스럽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입주민도 입주민 카페를 통해 "보상 계획에 대한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3~4년 뒤에 이사를 가야 할 상황이 올 때 이 아파트를 누가 사려고 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이날 국토부는 2017년 이후 LH가 무량판으로 발주해 시공한 91개 단지 중 철근 누락이 발생한 15개 아파트 단지명과 시공사, 설계사, 감리사를 모두 공개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일부 주민의 경우 단지명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공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철근 누락이 발생한 지하주차장 무량판 구조는 2017년부터 전면 도입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무량판 구조는 무게를 지탱하는 보 없이 기둥에 슬래브가 바로 연결되는 건축 구조다. 슬래브에서 발생하는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전단 보강근(철근)이 충분히 설치돼야 한다.

다만 이처럼 새로운 공법이 도입된 이후 설계, 시공, 감리 등 전 과정의 부실이 겹치며 철근 누락이 발생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특히 철근 누락이 일부 특정 시공 및 설계사가 담당한 곳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건설 업계 전반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정부는 LH가 발주한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민간이 발주한 무량판 구조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민간 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로 시공이 진행 중인 단지는 105곳, 준공이 완료된 단지는 188곳으로 점검 대상은 총 300곳 안팎에 이른다. 국토부는 개별 단지 주민들이 추천한 안전점검 기관을 통해 점검을 실시하고, 철근 누락 등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주민들의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보강 공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정석환 기자 /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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