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친구이자 적 '프레너미'를 위해
살다 보면 한 번쯤 피할 수 없는 경쟁 상대를 맞닥뜨리게 된다. 때론 원한이 맺힐 정도로 적수(敵讐)가 된다. 생존이 걸린 싸움. 그래서 기업의 역사는 곧 적수의 역사다.
코크와 펩시에서부터 허스트와 퓰리처, 사우스웨스트와 아메리칸항공, 나이키와 아디다스,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 이베이와 페이팔,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와 디트로이트 기업까지…. 산업은 발전하고자 필연적으로 경쟁을 먹고산다.
1990년 월드와이드웹이 태동한 뒤 브라우저를 놓고 정보기술(IT) 기업 간에 벌어진 전쟁이 대표적이다. 1994년 점유율 90%를 장악한 모자이크. 개발을 총괄한 마크 앤드리슨(글로벌 벤처캐피털 a16z의 창업자)은 갈등 끝에 별도로 넷스케이프를 차렸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넷스케이프는 2년 뒤 모자이크를 시장에서 완전히 밀어냈지만, 이듬해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익스플로어를 무상 제공하고 윈도에 끼워팔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 생태계가 복잡해지면서 글로벌 기업 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친구이면서 동시에 적인 '프레너미(frenemy)'의 등장이다. 경쟁이 협력이 되고 협력이 경쟁이 되는 협쟁(Coopetition)의 물결이다. 애플은 증강현실(AR) 글라스를 개발하면서 호적수인 구글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텐서'를 사용했고, 보이지 않는 클라우드 산업에선 VM웨어와 레드햇이 손을 잡았다. 적이 좋아서도 사랑해서도 아니다. 복잡성 세계에선 경쟁 비용이 과하고 예전처럼 한 기업의 독식도 불가능해서다. 독일 물류 업체인 DHL은 경쟁자인 미국 UPS와 유통망을 협업했는데, UPS가 만약 이 제안을 거절했다면 경쟁사인 페덱스가 DHL 손을 잡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정치가인 아모스 오즈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때때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때로는 경외심으로, 때로는 공황 상태로, 항상 호기심으로 내 정치적 라이벌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어쩌면 훌륭한 자의 맞수가 되는 순간이, 스스로 성장한 순간일 수 있다. 한국 산업계에도 더 많은 '프레너미'가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덕 디지털테크부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우크라 대통령 하마터면 큰일 날 뻔”…젤렌스키 암살 가담女의 정체 - 매일경제
- [단독] 폴란드 대통령 방한 하루前 취소…한반도 태풍·폴란드 안보 상황 영향 - 매일경제
- “한번 맛보면 정신 못차려”...백화점 줄선 손님들, 1시간은 기본이라는데 - 매일경제
- “말벌에 쏘여 숨지다니”…유명車 50대 CFO 돌연 사망, 직원들 ‘충격’ - 매일경제
- 오전엔 공중부양, 오후엔 지하실…초전도 롤러코스터 탄 투자자들 - 매일경제
- 침구 들춰봤다가 경악했다...‘빈대 소굴’에서 보낸 하루, 배상해주나요 [여행 팩트체크] - 매일
- 9일부터 태풍 ‘카눈’ 영향권…전국 강풍·폭우 주의 - 매일경제
- [단독] 경기도 ‘무량판 포비아’...아파트 27곳 ‘철근누락’ 업체가 지었다 - 매일경제
- 노트북 꺼내고 신발 벗고···공항 보안 검색이 엄격한 진짜 이유 - 매일경제
- “어떻게 돌아왔는데...” 쓰러진 류현진 숨죽이며 지켜 본 토론토 감독 [현장인터뷰]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