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K컬처의 고속도로
K컬처 외부성, 국민 모두 혜택
꿈꾸고 노력한 사람 치하하고
소프트파워 더 키울 기반으로
경제학에 외부성(externality)이란 개념이 있다. 경제주체의 활동이 의도치 않게 제3자에게 편익이나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양봉업자 주변 과수원들은 꿀벌이 많아 꽃의 수분이 활발하고 열매가 많이 열린다. 양봉업자는 자기 일을 할 뿐인데 과수원에 도움이 된다. 이게 양(+)의 외부성이다. 거꾸로 공장 폐수 배출이 이웃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음(-)의 외부성이다.
요즘 K컬처는 지구촌의 대세다. 한국 문화는 K팝, K드라마, K무비, K웹툰 등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K푸드, K패션, K스포츠 등 전방위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파급효과는 기하급수적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과 똑같은 빵도 더 비싸게 팔리고, 화장품이나 의류도 고급으로 평가된다.
개개인의 삶에도 직결된다. 외국 여행을 가면 한국인 대접이 달라진 걸 느낀다. 심지어 연애나 결혼에도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말까지 종종 들린다. 내가 특별히 한 게 없는데 'made in Korea'만 붙이면 신뢰가 커지고 가격이 올라가는 외부성 효과다. 이 외부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국이 후진국 시절 해외 개척의 주체는 기업이었다. 삼성, 현대, LG가 해외 시장에서 뛰었다.
전쟁 이후 5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국가란 기적의 선봉엔 이들이 있었다. 제조업 강국으로 상징되는 하드파워의 신화는 이들이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컬처의 부상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소프트파워로 새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영국 매체 모노클(Monocle)은 정보기술(IT)이나 문화예술이 끼치는 영향력을 일컫는 소프트파워를 측정한 결과 한국이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라고 발표했다. 소프트파워에도 기업의 투자는 결정적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며 전인미답의 성과를 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CJ가 투자했다. CJ는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드림웍스에 3억달러를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27년간 2조원가량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했다.
물론 K컬처를 특정인의 공으로 돌리는 건 난센스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 분야에서 맹렬하게 뛰어서 이뤄낸 것이다. 단지 그 역할은 인정할 만하다. 산업화를 위해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이 경제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를 깔았듯, CJ는 K컬처를 위한 소프트파워의 고속도로를 제공한 셈이다.
선진국이 되고 소득이 높아질수록 소프트파워를 중시한다. K컬처는 예술, 음식, 패션, 스포츠 등에서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유저 인터페이스' 역할을 한다. 그들이 매일 피부로 접하는 창구란 뜻이다. 세계의 고객들과 매일 접하는 창구가 바로 롯데, 신세계, CJ 등 B2C 기업들이다. 한국은 한때 B2C산업을 경시하는 풍토가 있었다. 껌 팔고 표 팔고 소비자에게 '빨대 꽂는' 정도 이미지로 봤다.
실제 후진적 경영과 실적 악화로 자주 주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K컬처의 최전선은 이들이 지켜왔다.
예를 들어 식품기업 대상은 '종가 김치' 브랜드로 '일본 기무치'나 '중국 파오차이'의 정통성 논란을 잠재웠다. CJ의 비비고 만두는 해외에서 1조원어치 팔리며 중국 표기인 '덤플링' 대신 '만두'란 한국 명칭을 되찾았다. BTS나 블랙핑크 못지않게 소프트파워의 수호자들이다. K컬처의 핵심은 투자였다. 그리고 기업과 참여자의 피땀 어린 노력 없인 불가능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현대가가 결국 그 도로 위를 달리는 현대자동차로 글로벌 기업을 일으킨 것은 운명적인 서사다. K컬처에 기여한 기업들도 토대를 탄탄히 하고 더 성장했으면 한다.
이미경 CJ 부회장은 2014년 인터뷰에서 "전 세계 사람이 1주일에 한 번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음악을 들으며 1년에 두 번 한국 영화를 보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의 꿈이 모여 지금이 있는 것이다.
[김선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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