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영국통신] 영국식 코풀기 문화
한국선 공공장소 코풀기 꺼려
영국선 세게 풀어도 눈치 안봐
여름감기, 냉방병, 헤이피버…가끔 콧물, 가래, 재채기로 고통받는 계절은 겨울이 아니라 여름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공공장소에서 콧물이 흐를 때 어떻게 대처하냐는 우리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와 관련이 있다.
한국인들은 대화 중 갑자기 구겨진 티슈를 꺼내 코를 세게 풀어대는 사람을 무례하거나 지저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고향인 영국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2005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나는 어떤 한국인과 대화 중이었는데 비염 증상인지 그는 대화 내내 코를 훌쩍였다. 그 당시 나는 대화에는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고 '제발 가서 코 좀 풀고 왔으면' 하고 속으로 이 생각만 했다.
영국에서는 코를 들이마시는 것을 오히려 무례하고 더럽다고 여긴다. 그들은 코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빼내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1000만배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12년을 거주한 후, 나 또한 공공장소에서 소리 나게 코를 푸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언젠가 서울에서 술 취한 듯한 남자가 지하철 안에서 큰 소리로 코를 풀어대자 쯧쯧 혀 차는 소리와 싸늘한 눈초리가 그 남자를 향해 쏠렸다.
이제는 영국에서마저 누군가 코를 푸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거슬리고 무례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평소에는 조용한 영국인들이지만 코를 풀 때만은 그렇지 않다. 한 번 강하게 힘을 주어 코안의 모든 분비물을 내보내려고 노력한 결과 음정이 맞지 않는 트럼펫이 귀 옆에서 울리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인들은 어디서라도 코를 풀 수 있도록 티슈를 가지고 다니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감기 걸린 남자와는 절대로 악수하지 말기 바란다. 그 주머니가 바로 콧물 범벅이 된 티슈를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없는 여성은 스웨터나 블라우스 소매 안에 코 묻은 티슈를 쑤셔넣기도 한다. 그러니 혹시나 악수할 때 손을 크게 흔들면 티슈가 우리에게 날아올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자. 일부 나이 든 여성들은 가슴골 사이에 티슈를 보관하는데, 그들이 갑자기 티슈를 빼거나 넣을 때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국식 코 푸는 문화가 탐탁지 않게 느껴지긴 하지만 한국이 영국인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나라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코를 들이마시는 것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식탁부터 회의실까지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용도로도 사용된다. 이것이 편리할 수는 있겠지만 영국의 경우 두루마리 화장지는 화장실에서 한 가지 용도로만 사용된다.
코가 정상적인 기능을 못할 때 어느 누구나 상당히 불편하다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또 다른 명백한 사실은 공공장소에서 흐르는 콧물에 대처하는 방식은 우리가 어느 나라에 있든 다른 문화권의 어느 누군가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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