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도 발명자” 법정 다툼 본격화…개발자 대 특허청, 핵심 쟁점은?
총 6개국서 ‘AI 발명자’ 인정 소송
法 “약한 AI, 인간 개입 없지 않아”
저작권 분야로도 분쟁 확산 가능
31일 매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미국 국적 개발자 테일러 스티븐 엘이 우리나라 특허청을 상대로 낸 특허출원 무효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 사건이 서울고법 제7행정부(재판장 김대웅)로 배당됐다.
테일러는 자신이 개발한 AI ‘다부스’의 특허 출원을 하는 과정에서 발명자를 적는 곳에 ‘다부스(본 발명은 자체적으로 생성됨)’라고 기재했다. 다부스가 스스로 지식을 학습한 다음 식품용기 등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허청은 자연인이 아닌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특허 출원을 무효로 판단했다. 테일러에게 발명자를 자연인으로 기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테일러가 별다른 보정을 하지 않아서다. 특허청은 AI를 발명자로 적는 방식이 특허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테일러는 특허청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테일러 측은 “발명자가 특허법상 ‘발명을 한 사람’과 반드시 동일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이 발명은 인간의 아무런 개입 없이 AI가 독자적으로 도출했는데도 발명자를 자연인으로 보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거짓으로 기재하라는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 법원은 특허청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주영)는 지난달 30일 특허법상 발명자의 경우 자연인만 표시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허법은 발명을 한 사람 또는 그 승계인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해 문언 그대로 사람 즉, 자연인임을 표시하고 있다”며 “특허출원서에는 발명자의 성명·주소를 기재하도록 규정하는데 성명과 주소를 가질 수 있는 자연인만을 예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단계에 이른 AI가 개발된 사례가 없다는 점도 법원 판단을 뒷받침했다.
AI는 크게 ‘약한 AI’와 ‘강한 AI’로 분류된다. 약한 AI는 특정 분야에 관한 알고리즘과 데이터, 규칙을 반복적으로 학습해 필요한 추론을 도출하는 AI를 말한다. 강한 AI는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한 다음 결론을 내는 AI를 의미한다.
법원은 현 기술 수준이 강한 AI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고 다부스도 강한 AI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약한 AI라면 인간의 개입이 완전히 차단됐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테일러는 다부스가 일반적 기본지식만을 기초로 인간의 어떠한 개입 없이 발명 행위를 독자적으로 했다고 주장하지만 다부스의 학습 과정에 인간이 상당한 수준으로 개임했고 다부스가 생성한 문장이나 그래프 등을 변리사가 취합해 특허명세서에 맞게 재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발명자의 지위는 원천적으로 권리·능력이 전제돼야 한다”며 “민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자연인에게만 권리능력이 부여된다고 명시하고 제한된 범위에서 법인에도 권리능력을 부여하는데 AI는 법령상 자연인과 법인 모두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I를 발명자로 표시할 수 있어야 관련 산업이 발전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AI가 발명자로 표시된다 해도 그로 인해 AI나 AI 개발자가 더 적극적으로 발명을 할 유인이 발생한다고 볼만한 합리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했다.
AI를 발명자로 인정하게 될 경우 발생할 부작용에 관해서도 광범위한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AI를 발명자로 인정하면 향후 인간 지성의 위축을 초래해 미래 인간의 혁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 연구 집약적 산업 자체가 붕괴될 우려, 발명이나 그 결과물과 관련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AI 개발자인 인간이 책임을 회피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우려 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소수 거대 기업 등이 강력한 AI를 독점해 특허법이 소수 권익만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는 만큼 AI를 발명자로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기술·산업 발전의 도모에 궁극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테일러는 지난 14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테일러 측 소송 대리는 덴톤스 리 법률사무소가 맡고 있다. 특허청은 법무법인 율촌이 대리를 맡았다.
테일러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총 6개국에서 같은 취지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테일러가 특허를 출원한 16개국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다부스를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부스 소송과 같은 쟁점은 저작권 분야로도 충분히 옮겨붙을 수 있다. 최근 논문 등 일부 창작물에서 생성형 AI인 챗GPT나 이를 개발한 오픈AI를 공동저작자로 표시한 사례가 발견됐다.
김윤명 디지털정책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말 발표한 논문에서 “저작자는 자연인만 인정된다는 점에서 기계를 공동저작자로 올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저작권 귀속이나 그에 따른 권리 침해 등에 대해서도 논의를 통해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다부스 소송 항소심 준비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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