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동관 홍보수석실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 ‘대통령이 되면 언론 자유를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취임 이후에도 틈만 나면 ‘자유’를 되뇐다. 그래놓고는 언론 자유를 무참히 훼손한 인물을 방송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히려 한다. 더욱이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 자신의 휘하에 있던 수사팀이 ‘방송 장악 문건’ 작성 지시자로 지목한 조직의 책임자였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한겨레는 2017년 9월,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엠비시(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2010년 3월 작성된 이 문건에는 국정원이 문화방송(MBC) 간부들을 사찰하고, ‘좌편향’ 언론인과 프로그램 등을 퇴출하는 공작을 벌인 사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국정원은 ‘인적쇄신’을 명분으로 퇴출해야 할 간부 명단을 작성하고, “노조와 야권에 빌붙은 국장급 간부 교체”, “일선 기자와 피디(PD)도 정치투쟁, ‘편파방송’ 전력자에 대한 문책인사 확대” 등을 주문했다. ‘인적쇄신’의 목표는 “김재철 친정체제 확립”을 통한 방송 장악이었다. 김재철은 2010년 2월부터 3년간 문화방송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방송 장악의 ‘마름’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여가며 엠비시 좌파 대청소”(2010년,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발언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퇴출 리스트’에는 “2007년 대선 때 시사 프로를 통한 비비케이(BBK) 왜곡보도 지시”, “친노조 성향으로 대통령 라디오 연설 공공연하게 반대” 등의 퇴출 사유가 언급돼 있었다. ‘피디수첩’과 ‘시선집중’ 등을 ‘좌편향’ 프로그램으로 지목하고, 담당 피디는 물론 진행자, 외부 출연자까지 교체하라고도 했다. ‘피디수첩’의 경우, “광우병 허위보도” 등을 문제삼았다. 문건에 제시된 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거의 그대로 실행에 옮겨졌다.
국정원이 언론 장악 문건을 만든 지 12년이 지난 2022년 4월,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는 이명박 정부 언론 장악 공작의 ‘지휘자’ 이름을 콕 집어 기사 제목에 불러냈다. 지난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낙점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보도 당시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였다.
뉴스타파가 누리집에 공개한 ‘이동관 언론 장악 개입 입증 공공기록물’ 자료를 보면, 국정원이 2009년 12월24일 작성한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문건 첫 페이지에는 ‘12·18 홍보수석 요청자료’라고 적혀 있다. 맨 끝에는 ‘배포: 홍보수석’이라고 적시돼 있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바로 이동관 후보자다. 이 문건은 “좌편향 피디와 진행자들이 4대강 등 국정 현안에 대한 악의적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며, 그 대책으로 경영진의 주의 환기, 좌편향 진행자 퇴출, 건전단체·보수언론 주도로 편파보도 문제제기 등을 제시했다. 이 후보자가 국정원에 ‘좌파 대청소’ 방안 마련을 사실상 지시하고 보고를 받았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국정원이 2010년 1월13일 작성한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 문건에도 ‘1·7 홍보수석실 요청사항’, ‘배포: 민정수석, 홍보수석’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문건에는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방송사가 꾸린 선거기획단에 “좌편향 기자들이 침투해 과열·혼탁 선거가 우려”된다며 “방송사 경영진과 협조, 좌편향 제작진 배제”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돼 있다.
최근에는 2017년 국정원 불법 사찰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2010년 국정원이 작성한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에 대해 “홍보수석실이 실질적인 문건 작성 지시자로 추정된다”, “홍보수석실이 국정원을 통해 엠비시 장악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이 모든 일이 ‘방송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진행됐다. 지금도 여권과 보수단체들은 ‘방송 정상화’를 부르짖는다. 정권에 불리한 보도에 ‘가짜뉴스’ 낙인찍기, 라디오 패널 ‘좌편향’ 공격, 수신료 분리징수를 통한 공영방송 겁박,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한국방송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 등이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최근 1년여 동안 한국의 언론 상황은 이명박 정부 시절로 빠르게 퇴행하고 있다. 이 정도로는 성이 안 찼던 걸까? 2017년 노조 탄압 혐의로 해임된 김장겸 전 문화방송 사장은 최근 국민의힘이 주최한 ‘공영방송 개혁’ 세미나에서 “정상화가 이렇게 더딘가”라고 한탄했다. 이 세미나에서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고지가 앞에 다다랐다”고 했다.(미디어오늘 보도) 이동관 특보의 방통위원장 지명은 그 ‘고지’가 뭘 의미하는지 웅변해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 ‘대통령이 되면 언론 자유를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취임 이후에도 틈만 나면 ‘자유’를 되뇐다. 그래놓고는 언론 자유를 무참히 훼손한 인물을 방송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히려 한다. 더욱이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 자신의 휘하에 있던 수사팀이 ‘방송 장악 문건’ 작성 지시자로 지목한 조직의 책임자였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신세계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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