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삭센다’ 만든다… 한미약품, 기술반환 당뇨치료제 비만약으로 개발 추진
일론 머스크 14kg 감량한 ‘GLP-1계열’ 의약품
GLP-1, 음식 먹으면 나오는 호르몬 유사체
“유사 성분 체내 머물게 해 포만감 지속→식욕 억제”
“한국인 최적화 GLP-1 비만약 개발 전략 수립”
식약처 임상 3상 시험계획 신청
기술수출 통해 6000명 규모 임상 진행… 안전성·잠재력 확인
GLP-1계열 의약품은 최근 비만치료제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만든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와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등이 유명한데 모두 GLP-1계열이다. 일론 머스크와 킴 카다시안 등 해외 유명인사들이 다이어트 비결로 주사제 위고비를 언급하면서 많은 화제가 됐다. 일주일에 1회 주사와 간헐적 단식을 병행해 짧은 기간에 약 14kg을 감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적의 다이어트 약’으로 여겨지면서 삭센다는 국내에 출시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위고비도 국내 출시를 준비 중인 상황이다. 위고비는 주 1회 투여하는 비만치료제로 삭센다(주 7회)보다 치료 편의를 개선한 의약품이다. 삭센다 역시 개발 초기에는 당뇨치료제가 목표였다고 한다.
한미약품은 독자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를 적용해 주 1회 투여 주사 제형 대사질환 치료제로 개발해 온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비만치료제로 적응증을 변경해 출시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임상 3상 진행을 위한 임상시험계획 승인 신청서(IND)를 제출했다. 식약처 승인 이후 상용화를 위한 개발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지난 2015년 사노피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당뇨병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이다. 이후 사노피는 약 6000명 규모 대사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5건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다가 2020년 6월 계약 권리를 한미약품 측에 반환했다. 당시 사노피는 새로운 CEO가 선임되면서 전반적인 사업계획을 재편했고 이 과정에서 당뇨치료제 관련 사업을 축소하면서 에페글레나타이드에 대한 권리를 반환하기로 했다.
후보물질 권리를 반환한 이후에도 사노피는 미국당뇨병학회(ADA)에서 그동안 진행한 에페글레나타이드 관련 임상 결과를 8개 주제로 나눠 구두 발표하면서 후보물질에 대한 잠재력을 소개했다. 해당 임상 결과는 국제학술지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등재되기도 했다. 특히 4000명 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진 심혈관계 연구(CVOT)를 통해 질환 발생 위험도 감소 등 안전성을 입증했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잠재력을 확인한 한미약품은 비만약 개발에 초점을 맞춘 개발 전략을 추진했다. 에페글레나타이드를 한국인 비만 기준(체질량지수 25kg/㎡, 대한비만학회)에 최적화된 ‘한국인 맞춤형 GLP-1’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GLP-1 비만약을 시판한 글로벌 기업들이 체중 감소 비율 수치의 우월성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지만 이는 서양의 고도비만 환자에게 유의미한 수치로 볼 수 있다”며 “한국 제약업체가 독자 기술을 통해 개발한 최초의 GLP-1 비만 신약으로서 한국인 체형과 체중을 반영한 한국인 맞춤 비만약으로 개발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개발 성공 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급여 제품인 수입산 GLP-1 비만약들이 매우 고가이고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 사태로 인해 한국 시장 상륙 시점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미약품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할 수 있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약품은 ‘경제적인 한국인 맞춤형 GLP-1’을 이번 신약 개발 목표로 설정했다.
특히 한미약품은 지난 2010년 초반까지 시부트라민 성분 개량신약 비만약 ‘슬리머’를 블록버스터 약물로 육성시킨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유명 탤런트 김희애와 함께 전국적 비만치료 캠페인을 통해 한국인에 맞는 건강한 체중 감량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한미약품은 그동안 축적한 의약품 개발 및 마케팅 역량을 기반으로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새로운 비만약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김나영 한미약품 신제품개발본부장 전무는 “상대적으로 BMI 수치가 높은 서양인 환자들을 타깃으로 개발된 외국산 GLP-1 비만치료제보다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경쟁력이 우수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잠재력이 대규모 글로벌 임상을 통해 이미 확인된 만큼 한국에서 임상을 빠르게 진행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국내 시장에 우선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의 경우 GLP-1 유사체 기반 다양한 혁신신약 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연구·개발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 GLP-1에 글루카곤을 더한 ‘듀얼아고니스트’는 미국MSD에 기술수출돼 현재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를 위한 글로벌 2b상이 진행 중이다. GLP-1과 GIP, 글루카곤 등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트리플아고니스트 역시 NASH 치료를 타깃으로 글로벌 임상 2b상에 들어갔다. 트리플아고니스트는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한국 식약처 등으로부터 특발성폐섬유증 등 여러 분야의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바 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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