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EUV 노광기 생산 40→90대로···ASML '플랜 자위트' 순항
<1> 반도체 강소국, 네덜란드의 질주 - 美도 눈치보는 'ASML'
'대당 2000억' 노광기 시장 독점
본지 펠트호번 공장 증설 첫 확인
작년 매출 10% 넘는 1.8조 투입
막대한 설비투자로 초격차 수성
6월 말 ASML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 남부의 펠트호번에서 만난 시민들은 ASML의 끊임없는 성장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실제 연구개발(R&D)부터 극자외선(EUV) 노광기 생산라인이 집약된 ASML 글로벌 본사에는 토지 조성을 위한 항타기와 각종 건설 중장비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어 공사 구간이 없는 장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회사가 지난해 설비투자에 쓴 돈만 매출의 10% 이상인 12억 8000만 유로(약 1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생산시설 증산을 위해 클린룸 공사에 착수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ASML이 자사 웹사이트에 ‘플랜 자위트(Plan Zuid)’라고 표기한 부지다. 플랜 자위트가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간 사실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ASML은 1년에 40대 내외의 EUV 노광기를 생산한다. 2026년까지 EUV 노광기 연간 90대, 2028년까지 하이-NA 20대 이상을 만들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인데 이곳에서도 일부 제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ASML은 본사만 확장하고 있는 게 아니다. 본사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떨어진 ‘데런 1000’이라는 지역에는 ASML의 4개의 새로운 사무동이 들어서고 있었다. 완공 시 약 4만 8000㎡의 면적에서 4000명의 직원들이 일하게 된다.
ASML 본사가 펠트호번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대변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ASML은 미세 반도체 회로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독점으로 생산한다. EUV 노광은 빛으로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회로를 반듯하고 깔끔하게 그려내는 공정이다. 제조 기술이 워낙 까다롭고 복잡해서 1년에 40~50대만 생산해 장비 가격이 대당 2000억 원을 웃돈다. 관리 비용 역시 다른 장비와 비교하면 상당히 많이 든다. 이 장비가 없으면 초미세 회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탓에 삼성전자부터 SK하이닉스·인텔·TSMC·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내로라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들은 이 장비를 한 대라도 먼저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사실상 세계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독점 기업이다 보니 내부 시설에 대해서는 ‘1급 기밀’ 수준의 철저한 보안이 적용됐다. 핵심 경영진과 외부 시설에 대한 취재는 허용됐지만 EUV 실물은 끝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ASML이 처음부터 세계 노광·반도체 장비 업계를 호령한 것은 아니다. 1987년 ASML이 필립스에서 분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광장비 업계에는 캐논토키·니콘 등 기라성 같은 일본 회사들이 버티고 있었다.
ASML이 일본 회사들과 달랐던 점은 ‘오픈 이노베이션’이었다. ASML은 현재 범용으로 쓰이는 불화아르곤(ArF) 방식의 노광이 득세하기 훨씬 전인 2006년부터 EUV 연구를 시작했다.
인수합병(M&A)에도 공을 들였다. 국내 기업들이 막대한 상속세, 까다로운 공정거래법 때문에 신음할 때 ASML은 거침없이 영토를 확장해나간 것이다. 실제 2013년에 미국 광원(光原) 기업 사이머를 인수했고 2016년에는 독일의 유력 광학 전문 회사 칼자이스 지분 24.9%를 사들이며 협력 관계를 다졌다. 까다로운 성질의 EUV 빛과 이들을 손상 없이 반사시키는 렌즈 등 필수 기술이 ASML의 우산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자국 소재·부품·장비 업체와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타진했다. EUV 노광기는 물론 범용으로 쓰이는 심자외선(DUV) 노광기 제조에 협력하는 ASML의 현지 파트너 회사는 5000여 개에 이른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2019년 양산 기술에 EUV를 적용하면서 ASML의 전성기가 시작됐다”며 “지금은 삼성이 오히려 ASML의 눈치를 볼 정도”라고 설명했다.
펠트호번=강해령 기자 h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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